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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PE Oct 20. 2024

4. 유럽

4-6. 푸엔히롤라


스페인에서 모로코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곳은 타리파, 모로코와 지브롤터 해협을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최남단 항구도시이다. 한 시간 정도 배를 타면 모로코에 도착할 정도로 모로코와 매우 가까운 곳이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 바로 타리파로 건너가 모로코를 가기엔 스페인을 너무 일찍 뜨는 것 같아 아쉬웠다. 중간 도시인 말라가를 거쳤다 모로코로 넘어가기로 했다.



말라가는 해변이 아름다운  휴양 도시였다. 밤새 북적거렸던 바르셀로나에 비해 한적한 말라가는 조용히 산책하기에 좋았다. 저녁 무렵 해변가에 서있던 검은 실루엣의 야자수 나무들 뒤로 비치는 노을이 아름다웠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야자수 뒤로 정착해 있는 배들이 풍경에 등장했다. 밝은 낮보다는 어스름한 노을질 무렵이 기억에 남았던 곳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말라가의 이 여성 도미토리에는 나 밖에 없었다. 앞 방은 혼성 도미토리였는데 그 방엔 인기척이 느껴졌다. 방엔 낡은 목재로 만든 이층 침대가 3개나 있었으나 혼자 방을 썼기에 크게 의미가 없었다. 매트리스 역시 약간 오래된 느낌이 있었으나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틀간 머무르면서 펼쳐놓은 짐을 주섬주섬 챙겨 캐리어에 넣고 잠근 뒤 퇴실을 하기 위해 방문을 나섰다. 이때 마침 앞 방 문도 열렸다.



"어머 한국인보니 반갑네. 근데 여기 데드버그가 너무 많지 않아요? 온몸이 가려워서 혼났네요."



그 말을 들으니 괜히 몸이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그래요? 이 방은 없었나 봐요. 저는 괜찮은 거 같은데."



간단하게 몇 마디 나누고 숙소를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근처 작은 휴양 도시 푸엔히롤라였다. 굳이 이곳을 가는 이유는 처음으로 홀로 카우치서핑을 하게 될 호스트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앱에 올려진 호스트의 사진은 좋은 인상의 것은 아니었다. 그의 눈은 매우 크고 쌍꺼풀이 짙었는데 어딘가 정신을 뺏긴 듯 살짝 풀려있었다. 본인 사진 외에 올린 몇 장의 집 사진 곳곳에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나올법한 향로가 있었다. 손이 여러 개 달린 불상들도 보였다. 묘한 느낌을 주는 집이었다. 리뷰를 읽어보니 특이한 분 같기는 한데 악의적인 의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호스팅이 가능한지 메시지를 보냈더니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고민이 되지만 기회가 있을 때 카우치 서핑을 많이 경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강렬한 햇살을 맞으며 기차에서 내렸다.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건물 뒤로 반짝거리던 바다가 보였다. 뜨기 어려운 눈꺼풀을 붙들고 지도를 보며 호스트의 집으로 찾아갔다.

일층에 마주나와 있던 호스트는 나를 보자 반갑다고 포옹했다. 그의 커다랗고 진한 눈, 큰 키에 살집이 있는 체구는 알 수 없는 거부감을 주었다.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한낮인데도 그의 집은 밝지 않았다. 조명을 켜지 않아 집안을 비추는 건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뿐이었다. 베란다에는 낮은 사각형 탁자와 소파가 있었다. 호스트는 복도 끝으로 걸어가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의 뒤를 따라가며 복도 끝에 작은 방이 하나 있음을 알아챘다. 방문을 열며 그가 말했다.



“사랑스러운 아가씨, 당신은 여기 방을 쓰면 돼. 편히 쉬어”



그는 나가고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방에 남겨졌다. 문을 바로 잠갔다. 이 집은 정말이지 이상했다. 목재 불상과 향로는 사진에서 이미 봤지만 실제로 보니 더 어지러웠다. 거실로 나와보니 그는 베란다에 놓인 식탁에 각종 치즈와 하몽을 올린 그릇을 놓고 있었다. 와인이 담긴 잔은 이미 식탁 위에 놓여있었다. 나를 보자 그의 입꼬리가 크게 올라갔다.



"배고플까 봐 준비했어. 어서 와서 같이 먹자."



거절하기에는 이미 다 차려놓은 수고가 미안해서 배가 고프진 않지만 조금은 먹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점심을 먹고 왔던 터라 금방 배가 불렀다. 내가 잘 먹지 못하자 그는 정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절대로 억지로 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얼마 안 있어 취기가 올라왔다. 분명 몇 모금 마시지 않은 것 같은데 꽤나 술이 독했던 건지 아니면 그동안 쌓인 피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뇌가 멈출 것만 같지만 간신히 정신을 붙들었다. 한계에 다다르자 그가 말하는 와중에 벌떡 일어났다.



"너무 피곤해요. 좀 쉬러 갈게요."



그가 미소를 지으며 뭐라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대충 인사하고 바로 방에 들어갔다. 침대에 쓰러져 정신을 잃기 전에 문을 잠그는 걸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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