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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PE Oct 28. 2024

4. 유럽

4-7. 푸엔히롤라

눈을 떴을 땐 컴컴한 밤이었다. 낯선 이의 집에서 이렇게 잠들어버리다니 이다지도 무방비할 수가 없다. 손을 더듬어 핸드폰을 어디 있는지 찾았다. 시간을 보니 저녁과 한밤 중 사이 시간이었다. 문은 다행히 잘 잠겨 있었고 낮에 풀었던 짐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약간은 안도하며 문을 열고 방에서 나갔다.


 그는 거실에 앉아있다가 나를 보고 일어났다. 그리고 크게 미소 지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가씨 이제 피곤한 건 좀 풀렸어?"


그리고 경악스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나갔다.


"어때, 내가 말한 마사지에 좀 관심이 있어? 정말 이상한 게 아니니 의심하지 않아도 돼. 받으면 피로가 풀릴 거야."



마사지라니. 얼핏 낮에 와인을 마시며 자신의 마사지를 받아 볼 생각이 있는지 말한 게 기억났다. 순간 온몸의 잔털이 쭈뼛 서고 소름이 돋았다. 나는 지금 철장 안에 갇힌 새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설사 청한다 해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란 말이다. 온갖 시나리오들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불이 난 건물의 회색 연기처럼 피어났다. 이 집의 분위기, 그의 인상, 말끝마다 붙이는 묘하게 친밀한 애칭들.. 결정적으로 마사지까지 모든 것을 종합하면 그는 정상의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아야 한다면 카우칭 앱에서 보았던 그를 향한 호의적 리뷰들을 믿는 것뿐이었다. 그는 아마 손님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특이하지만 친절한 호스트일 것이다...............







"미안하지만 난 지금도 너무 피곤해요. 그냥 자고 싶어요"







그가 대답하기까지 찰나의 순간 귓가엔 심장소리가 방망이 쳤다.








"네가 원하지 않으면 전혀 받을 필요가 없어. 어서 가서 다시 자, 귀염둥이"



한고비 넘겼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직 남아있는 긴장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이 까무룩 들었고 일어나 보니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늦게까지 잠을 자다니 무슨 정신인거지.



섣불리 침대에서 나가지 못했다. 한참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방에서 나가 거실로 향했다. 뜻밖에 금발의 여성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날 발견하자마자 쏜살같이 내게 다가왔다.



“당신도 카우치 서핑으로 온 사람이죠? 여기 언제 왔어요?”



“저는 어제 왔어요”



“지금 호스트는 나갔어요. 근데 그는 어떤 사람이에요?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하는데 정말 이상해요. 호스트도 그런데 이 집도 정상이 아니에요”



“거부 의사를 밝히면 다시 권하진 않는데 그래도 역시 이상한 것 같아요. “



“그렇다면 지금 나랑 같이 나가요. 호스트에게는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하고. “




“너무 좋아요! “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함께 집을 떠났다. 버스를 타는 가는 동안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자기는 마드리드에 살고 있으며, 주말 동안 친구들과 휴양을 즐기러 이곳에 왔다고 말하였다.



“친구들보다 하루 일찍 도착해서 카우치 서핑으로 신세 질 곳을 구하다가 그 집에 가게 된 거죠. 오늘 새벽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상했어요. 그런데 마사지까지 제안하니 더더욱 이상했고요. “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날이 밝으니 그가 볼일 좀 보고 오겠다며 나가더라고요. 마침 그때 당신과 마주쳤고, 이렇게 같이 나오게 됐네요. “



“나오자 해주셔서 감사해요…. 전 아무 생각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뭘요. 별일 없었다는 게 중요하죠. “



버스가 시내에 다다르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제 여기서 내릴게요. 여행 동안 행운을 빌어요. “



그녀가 내리고 얼마 안 있어 나도 내렸다. 모로코로 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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