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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PE Oct 13. 2024

4. 유럽

4-4. 리옹을 떠나며

 리옹을 스쳐 바르셀로나로 내려갈 때 역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바르셀로나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야간 버스를 타면 이동도 하도 숙소도 해결할 수 있었다. 가난한 학생에게 딱인 선택지였다. 다만 또다시 어두운 밤을 홀로 보내야 하는 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일단 두려움은 다가올 그 순간 나에게 떠넘기고 당장은 묻어두기로 했다. 숙소에서 체크아웃한 후 주변을 구경하다가 버스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 할 일 없이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어느새 얼굴에 닿는 바람이 시원하기보단 서늘해졌다. 늦가을은 어둠을 빨리 몰고 와서일까 버스를 타기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었다. 어둠은 신기하게 옆에 있는 사람을 경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캄캄해질수록 버스터미널에 홀로 있기 무서웠다. 낮에 떠넘겼던 두려움이 코앞까지 왔는데 정면으로 맞설 깡은 없었다.



밝은 불빛과 사람들을 찾아 근처 건물로 들어섰다. 백화점 같은 곳이었는데 시간이 늦어 상점들은 문을 닫고 맨 위층 영화관만 문을 열었었다.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상영작들을 훑어보는데 새로운 마블 시리즈가 개봉한 것을 발견했고 그건 '닥터스트레인지'였다. 버스터미널보다는 영화관이 훨씬 안전하다 싶어  표를 끊었다. 자막은 없어도 영어가 나올 테니 대충은 이해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프랑스 더빙을 끊은 건 영화가 시작해서야 알았다.






아직도 컴컴하지만 버스터미널에는 심야 버스를 타러 온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 틈에 끼어 버스 앞으로 줄을 섰다. 버스기사는 승객이 버스를 타기 전 예매자의 이름과 신분증의 이름이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차례가 돼서 여권을 꺼내 보여주자 기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표를 끊은 사람의 이름과 네 여권의 이름이 일치하지 않아. 그러니 넌 여기에 탈 수 없어."



이름이 일치하지 않다고? 그가 들고 있는 기계를 보니 눈에 들어오는 한글 석자가 있었다. 아뿔싸, 어쩌다 탑승자 이름에 영문명을 넣지 않은 실수를 한 걸까. 그렇지만 이 버스를 꼭 타야만 했다. 한밤중에 혼자 남겨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동일한 사람이라고 계속 말했다.



그러나 버스기사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억지로 버스에 탑승하려고 하자 그는 거칠게 밀어냈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버스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창문에서 우리의 몸싸움을 지켜보는 승객들을 발견했다. 아무 일도 없던 듯 버스가 떠나자 그들도 고개를 돌렸다.



너무 무서웠다. 곧 버스터미널은 문을 닫을 것이고 거처를 정하지 않으면 거리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덜덜 떨면서 주변 숙소를 검색했다. 주변 숙소는 거의 다 비싼 호텔들. 이 와중에도 가격을 따져야 했다. 그나마 저렴한 비즈니스호텔이 한 개 있었다. 밤거리를 쏜살같이 달려 도착해 방에 들어갔을 땐 녹초가 되었다.



이 날 울면서 쓴 일기가 있다.



'나는 바보 같고 그때 바라만 보던사람들은 너무 밉다. 동양인이라 버스 기사가 무시하는 게 보였다. 백인이었다면 버스 기사가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무례하게 대했을까? 기사도 승객들도 너무 싫다. 그런데 제일 별로인 건 나 자신이다. 나약하게 울기 싫은데 울기만 하다니. 단단해지고 싶다."








다음날 아침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향했다. 다행히 별일 없이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는데, 눈물 몇 방울이 또다시 주르륵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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