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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마라톤 참가후기 - 안산, 인왕산, 북악산 코스

10km 마라톤 일곱 번째

by 임태홍

2025년 7월 20일, 일요일. 소서가 지나고 대서 이틀 전. 여름의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오늘은 서울에서 산악마라톤이 있는 날입니다. 사단법인 한국산악마라톤연맹이 주최하는 제7회 안산, 인왕산, 북악산 트레일 러닝. 코스는 연세대 정문에서 안산 정상을 거쳐, 인왕산과 북악산의 정상을 경유하여 삼청공원까지 달립니다. 공식적으로는 10.5km 코스입니다.


어제는 새벽 2시까지 비가 내렸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흐리다가 아침 10시 이후에 맑아진다고 합니다. 기온은 25도. 최고 31도까지 오른다고 하니 옷을 시원하게 입어야겠습니다. 마라톤 출발 시각은 9시. 연세대 정문에서 출발합니다.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경기도 수원 청명역에서 출발했습니다. 출발시각은 6시 30분. 버스를 타기 위해서 인도를 걸어가는데 도로 곳곳에 물이 고여있습니다. 비가 내린 뒤의 비릿한 냄새가 후덥지근한 새벽 공기와 함께 올라옵니다.


청명역 앞에서 M5107번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합니다. 시청 부근에서 하차하니 7시 15분. 지하철을 타고 신촌역으로 갑니다. 역에서 내려 급히 연세대 정문으로 가니 시간이 아직 8시도 안 되었습니다. 출발은 9시. 두리번거리며 마라톤 복장을 한 사람들을 찾습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많이 끼어있습니다.


정문 앞에 대회 준비차량 두 대가 서있고 사람들이 몰려 있습니다. 그 너머로 커다란 연세암병원 건물이 서 있습니다. 암병원 건물이 유독 커다랗게 보입니다. 아내가 암투병할 때, 이곳에 같이 온 적이 있습니다. 대학 병원들마다 암병원은 환자들이 넘치니 갈수록 대형화됩니다. 아내와 둘이 커다란 병원 안에서 수속하랴 진찰받으랴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아내가 즐겨 입던 감색 가디건을 잃어버렸습니다.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환자들이 참으로 많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언젠가는 고장이 나는 몸, 건강한 이 순간이 감사합니다.


연세대 정문 앞에 세워져 있는 용달차 앞으로 가니 번호표와 물품보관 봉투를 나눠줍니다. 기능성 반팔 셔츠도 하나 받았습니다. 오늘 몇 명이나 참가하는지 물어보니 300명 정도라고 합니다. 몇십 명 정도 참가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큽니다. 대회본부에서 사전 연락이 신통치 않아서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는데 여기 오니 여느 마라톤대회와 다르지 않게 준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가지고 온 배낭과 함께 비닐봉지에 담아서 제출했습니다. 한쪽에 쌓아두면 도착지에 미리 가져다 놓는다고 합니다. 식수를 작은 페트병 두 개 정도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배낭을 맡겨야 하니 하나만 들고 가고 하나는 미리 마십니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을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반바지를 입을까, 긴바지를 입을까? 다른 참가자들을 둘러보니 대부분이 반바지를 입었습니다. 산악을 달리는데 괜찮을까? 풀 숲이나 관목 덤불 사이를 지나는 것은 아닐까? 진드기나 다른 벌레들이 걱정이 돼서 저는 긴 운동복 바지를 입었습니다. 대신 날이 무더우니 셔츠는 반팔을 입었습니다. 하얀 토시도 준비했지만 다른 참가자들이 거의가 반팔이라 저도 끼지 않았습니다.


9시 정각이 되자, 정문 안쪽에 준비된 출발선에서 일제히 출발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연세대 정문에서 본관건물로 가는 중앙도로로 달려 나가 뛰기 시작합니다. 코스는 어떻게 진행될까? 무작정 앞사람들만 바라보고 달립니다. 본관건물 가까이 오자 앞서가는 사람들이 건물 왼쪽으로 돌아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언덕길은 차츰차츰 높아지다 폭이 좁은 산길로 바뀌었습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등산객들도 많습니다. 같이 어우러져 산을 오릅니다. 안산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안산 자락길이라고 합니다. 길옆에 꽃무릇의 분홍색 꽃이 여기저기에 피어 있습니다.


오늘 산악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유튜브에 올려놓은 산악 마라톤 영상을 몇 편 둘러봤습니다. 산악마라톤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혼자 나름대로 작전을 짰습니다. '오를 때는 걷고, 평지에서는 달리고, 내려갈 때는 천천히 조심해서 내려가자'라는 것입니다. 연습 삼아 숲 속에서 올라가면서 뛰어보니 걸어서 올라가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듭니다. 그렇다고 속도가 많이 빨라지지도 않습니다. 오늘은 10km 넘게 산악을 달려야 하니 힘을 아껴야겠습니다.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폭이 4m 정도로 널찍한 산책길이 나타납니다. 바닥에는 시멘트가 깔려있거나 매트가 깔려 있어 달리기에 좋습니다. 그러나 오르막과 계단이 계속 이어지니 천천히 걸어서 올라갑니다.


지금 올라가는 안산의 정상은 296m입니다. 서대문구에 속합니다. 서쪽으로는 홍제천과 내부순환도로가 지나가고 동쪽으로는 지하철 3호선과 통일로가 지나갑니다. 그 너머에 다음 목표인 인왕산이 있습니다. 3호선 홍제역이 안산의 정북 쪽에 있고 무악재역이 북동쪽에 있습니다. 안산은 무악산이라고도 합니다. 동쪽에 서대문형무소가 있습니다.


한바탕 비가 내린 뒤라서 숲 속은 습기가 가득합니다. 높이 솟은 나무들 덕분에 햇빛이 뜨겁지 않으니 공기가 시원합니다. 산책길 한편에 서있는 기상 안내판에 온도가 표시됩니다 25.2도. 습도는 98%입니다.


봉수대에 올랐습니다. 정식 명칭은 무악산 동 봉수대입니다. 이곳은 압록강 상류에 있는 평안북도 강계 봉수대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받아 남산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무악산에는 서봉수대도 있는데 그곳은 평안북도 의주에서 발신된 신호를 받아 남산으로 보냈습니다. 1895년(고종 32년)까지 사용된 유적지인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없어졌다가 복원한 것입니다. 봉수대는 봉화대라고도 하는데 위기상황을 연기와 횃불로 연락을 취하는 곳을 말합니다.


봉수대에서 남산을 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남산이 바로 앞에 불쑥 솟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피워 올리면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남산 위에 서 있는 남산의 타워가 각별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요즘 영화 한 편으로 남산 서울타워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습니다. 그 아래 도시 풍경이 마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한 장면 같습니다.


이 봉수대가 수명을 다한 1895년은 경복궁에서 명성황후 살해사건이 일어난 해입니다. 을미사변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러시아와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일제가 조선과 러시아의 밀착을 막기 위해 명성황후를 핵심 인물로 지목하고 살해한 사건입니다. 주 조선국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楼)가 서울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를 지휘하여 일본공사관원과 영사경찰, 낭인배 등을 행동대로 삼아 그해 10월 8일 새벽에 경복궁을 기습하여 고종의 아내인 명성왕후를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웠습니다. 다음 해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는데, 이것이 129년 전에 일어난 아관파천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난 지 80년, 한류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서울 시내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꿈을 꾸듯 너무도 비현실적입니다.



봉수대에서 내려와 인왕산을 향해서 걷습니다. 가는 길에 커다란 안내판이 나타났습니다. 안산 정상은 296m. 건너편 인왕산은 339m.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멀리 북악산은 342m입니다. 오늘의 마지막 목표지점입니다. 여기서 보니 북한산(727m)과 북악산이 확연하게 구분이 됩니다. 그동안 저는 이 두 산의 구분이 어려웠습니다. 북한산은 높이도 북악산 보다 두 배 더 높고, 서울에서도 한참 멀리 떨어져 있으며, 무엇보다도 북악산과 북한산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골짜기 정도가 아니라 커다란 분지형태의 저지대(평창동)를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북악산과 북한산은 동쪽 지점, 즉 정릉동 쪽이 살짝 이어져있습니다.)


위 사진 아래쪽에 보이는 아파트들은 안산에서 인왕산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골짜기에 가득 찬 이 아파트촌 아래로 지하철 3호선이 지나갑니다. 다음 목표가 인왕산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된다고 하며 무작정 아래쪽 평지로 내려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지가 아니라 산 중턱을 돌아가야 된다고 주장하며 전진합니다. 저는 바로 앞사람들을 따라갑니다. 험한 바위틈을 오르내리다가 하마터면 무릎이 까일 뻔했습니다. 무릎을 덮는 긴 운동복을 입어서 다행이었습니다. 10여 명이 무리를 지어서 산 중턱을 돌아가니 바로 아래쪽에 구름다리가 나타납니다. 인왕산 쪽으로 건너가는 무악재 하늘다리라고 합니다.

하늘다리를 건너가니 또 끝없이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납니다. 마라톤 코스가 아니라 가파른 등산 코스입니다. 얼마를 올라왔는지 멀리 안산의 동쪽 비탈이 보이고 그 너머로 남산의 서울타워가 보입니다.


다시 뒤로 돌아 인왕산 정상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온통 바위로 된 산, 올라가는 곳곳에 굿판이 설치되어 있고 각종 음식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무당들이 굿을 하는 곳도 있습니다.




인왕산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다 만난 안내간판입니다. 왼쪽 산은 안산, 오른쪽 산이 인왕산입니다. 안산과 인왕산은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인왕산의 전체적인 모습을 처음 봅니다. 인왕산은 안산보다 50m쯤 더 높기도 하지만 크기도 3배는 더 큰 것 같습니다. 인왕산의 오른쪽 길은 자하문로이며, 세검정과 부암동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인왕산은 북악산과 붙어 있는 줄 알았는데 인왕산 역시 안산처럼 독립적인 산입니다. 그 오른쪽에 북악산이 있는데 이 사진에서는 안보입니다.


인왕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10시 30분입니다. 오전 9시에 연세대 정문에서 출발하여 1시간 30분 만에 안산을 거쳐 인왕산 정상을 찍었습니다. 여기까지 약 6km. 오늘 전체 거리 중 절반 정도 달렸습니다. 사실상 이곳까지 평지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줄곧 걸었습니다.


338m 정상까지 왔으니 이제부터는 또 내려가야 합니다. 남산이 보이는 남쪽 비탈을 따라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갑니다. 참가자들이 많이 흩어졌기 때문에 어디로 내려가야 할지 난감합니다. 대회본부 측에서는 분홍색 표시를 따라서 찾아가면 된다고 하는데 표시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물으면서 내려갑니다. 올라오는 등산객에도 물어봅니다. 산악 마라톤 하는 우리 일행이 지금 어디로 내려갔는지 물어보면 자기가 마주쳤던 참가자들이 간 길을 잘도 가르쳐줍니다.


인왕산 정상에서 창의문(자하문)으로 이어진 성곽길을 따라 평지까지 내려왔습니다. 사진의 큰 길은 부암동과 세검정으로 넘어가는 자하문로입니다. 이 길을 건너면 창의문 안내소가 나오고 언덕 위로 올라가면 창의문이 나옵니다. 창의문이 있는 곳에서부터 또 계단을 올라갑니다. 오르고 또 오르고 끝도 없이 오르는 난 코스로 올라갑니다. 청와대에서 멀리 떨어진, 북악산 뒤편의 성곽길입니다.


북악산은 정상은 342m. 적어도 300m는 하늘을 향해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북악산은 백악산이라고도 불립니다. 산 정상이 하얀 바위산이라는 백악산. 그러고 보면 안산 그리고 인왕산도 사실은 모두 백악산입니다. 두산의 정상에도 마치 모자를 뒤집어쓴 듯이 화강암 덩어리가 덮여 있습니다. 화강암 덩어리로 만들어진 우리 산의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북악산 정상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북쪽 산비탈에 계속해서 이어진 성곽이 나타났습니다. 이곳의 성곽은 한양도성의 북쪽을 담당하는데 지금은 청와대 뒤쪽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한참 올라가다 보니 1968년 김신조를 비롯한 31명의 무장공비가 이곳에 침투했을 당시 교전이 벌어져 총탄에 맞은 소나무가 서 있습니다.


왼쪽 사진은 젊은 학생들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학생들은 무더위에 웃통을 벗고 올라가는데 뛰어서 올라가서 쉬고 또 뛰어서 올라갑니다. 계단에서 뛰어 올라가면 힘이 너무 많이 들어서 저는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걸어서 올라갑니다. 아무래도 그냥 걷는 것이 힘 소모도 적고 전체적으로 이익입니다. 결국 천천히 걷는 제가 학생들보다 빨랐습니다. 어떤 여성은 두 손과 두 발로 기어서 올라갑니다. 계단이 너무 많고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더웠습니다.


돌고래 쉼터, 백악쉼터, 백악마루를 거쳐 청운대(293m)에 들렀다가 만세동방을 구경하고 삼청 안내소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면서 신기한 모습의 부부 소나무도 보았고 계곡에서 시원한 물로 얼굴을 씻고 페트병에 물을 한 병 담아 마셨습니다. 마침 전날에 비가 내려서 계곡에는 졸졸졸 흐르는 물이 많았습니다.


삼청 공원까지 내려오니 도착 장소에 커다란 골인 아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골인 시각은 12시 24분. 연세대 정문에서 이곳까지 3시간 24분이 걸렸습니다. 직선거리로는 5km 정도밖에 안 되는데 실 거리는 20km에 가깝다고 합니다. 이날 남자 1등은 주파시간이 1시간 24분, 여자 1등은 2시간 12분이었습니다. (주1)


그런데 저는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또 위로 아래로 산 3개의 정상을 오르내리다 보니, 더구나 무더운 여름날, 체력의 한계를 통감했습니다. 다음에 또 도전하려면 다리의 힘을 더욱 키워야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뜨거운 여름날 적어도 물 2병은 필수입니다. 물병을 넣을 수 있는 간편한 상의도 필요합니다. 도착하면서 받은 빵과 음료수를 땅바닥에 펼쳐놓고, 먹고 마시면서 험한 산악마라톤 뒤에 쟁취한 휴식의 기쁨을 만끽합니다.


주1) 산악 트레일러닝으로 만나는 서울의 숨결…안산·인왕산·북악산 야호맨 질주, <대한일보>, 202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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