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농부학교 수업일지
11월 23일, 김장 담그기 2일째입니다.
김외순 선생님의 김장 특강을 듣고 교육장으로 돌아와 양념 버무리기를 했습니다. 김장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먼저 책상 위에 커다란 김장용 매트를 펼쳐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두 포대나 되는 무거운 양념을 쏟았습니다. 어제저녁에 선생님 댁에서 만든 양념입니다. 하룻밤 동안 양념이 숙성되면 맛이 더 깊어지고 풍부해진다고 합니다. 매트 주위에는 10여 명의 학생들이 고무장갑을 끼고 빙 둘러 서 있습니다.
양념 위에 별도로 준비한 무, 쪽파, 미나리, 갓 등을 모두 올렸습니다. 역시 어제저녁에 채를 썰어 준비한 재료들입니다. 모두가 달려들어 양념과 채소들을 섞기 시작합니다. 20분 가까이 힘을 들여 충분히 섞었습니다. 재료들이 잘 섞이지 않으면 김치 맛이 제각각이고 제대로 된 맛이 나지 않습니다. 이때 싱거우면 굵은소금을 조금 뿌려서 간을 맞춥니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소금물을 뺀 배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금물이 빠진 배추 잎 공간으로 김장 양념이 들어가고 거기에서 발효가 일어납니다. 20여 명이 움직여서 김장을 하는데 모두가 바쁩니다.
드디어 물기가 충분히 빠진 절인 배추가 왔습니다. 양념 위에 배추를 수북이 쌓아놓고 버무리기 시작합니다.
배추 잎사귀를 하나하나 벌려서 그 안에 김칫소를 넣고 바릅니다. 전라도에서는 이때 손에 쥔 김칫소로 배추 잎사귀에 양념을 바른 뒤(즉, 옷을 입힌 뒤) 배추 잎사귀의 줄기 부분 사이사이에 김칫소를 집어넣습니다. 김외순 선생님의 방식은 다릅니다. 김칫소를 배추 안에 넣지 않고 배추 잎을 들치고 그 사이를 골고루 바를 뿐입니다.
전라도에서는 김칫소를 배추 안에 넣고 그것을 가장 바깥에 있는 배추 잎으로 감싸서 김칫소가 바깥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꽁꽁 단속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배추 잎으로 배추를 감싸지 않고 그냥 저장 용기에 가지런히 넣습니다. 그리고 배추 위 사이사이에 김칫소를 얹어 놓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김치 발효가 최대한 천천히 일어나고 발효 맛이 깊어지게 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김치 안에서 자라는 유산균은 압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혐기성 발효를 하기 때문에 밀봉이 필요합니다. 밀봉하지 않으면 산소를 좋아하는 다른 세균들이 번식하여 김치 맛을 해칩니다. 그러므로 저장 용기에 김장 김치를 담고 맨 위에 비닐이나 김치 겉잎으로 배추를 덮어줍니다. 아니면 비닐 봉지에 김치를 담고 봉지를 묶은 뒤에 그것을 저장 용기에 담는 방법도 있습니다. 배추 보관은 용기의 80% 정도를 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발효를 하면서 배추가 부풀어 오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보통 영하의 날씨가 시작되는 12월 중순 경에 김장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장 후에는 추운 곳에 보관하여 김치가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과정을 거치게 합니다. 그 상태로 겨울 내내, 즉 2달에서 3달 동안 보관합니다. 봄이 되고 날씨가 풀리면 냉장고로 옮깁니다. 영상 3도, 4도 정도가 유산균이 번식하는데 가장 좋은 온도입니다. 유산균은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온도가 올라가면 신맛을 내거나 쓴맛을 내는 유산균들의 활동이 왕성해져 김치 맛이 변질됩니다.
선생님이 제안한 양념 만들기 방식은 이러한 보관법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는 아마도 경상도 남부 지역의 김장 전통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의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하면 전통적인 풍미가 가득한 김장 김치의 맛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리 전문가 선생님의 김장이기 때문에 역시 맛이 중요합니다.
김장을 마치고 선생님은 남은 김치 속을 가지고 겉절이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참깨를 뿌리고 설탕을 추가했습니다. 선생님의 김장 양념은 아직 단맛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단맛은 김치가 익어가면서 서서히 우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모든 작업이 끝났습니다. 책상과 의자를 펼치고 방금 만든 김치와 겉절이를 올렸습니다. 한쪽에서는 밥을 준비하고 돼지고기 수육을 만들었습니다. 잘 절여지지 않았던 배추 잎과 남은 김칫소도 커다란 접시에 놓았습니다. 싱싱한 굴도 준비했습니다. 막걸리도 나오고 교육장 선생님이 제공한 특별한 약주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김장 담그는데 수고한 2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마을 잔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맛있고 풍성한 음식상이 순식간에 만들어지다니 김장 담그기가 마술 같습니다.
김장을 담그고 나누는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소중한, 그러면서 살아있는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어제와 오늘 2일 동안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직접 체험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배추를 김치로 바꾸는 기막힌 마술도 배웠습니다. 동전을 지폐로 바꾸는 마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