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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태홍 Jan 18. 2024

대천항 산책 - 박대를 만나다

12월 7일, 겨울이 시작된 지도 한 달이 되었습니다. 

밤에는 영하의 날씨이지만 낮에는 여전히 영상의 날씨입니다. 오늘은 겨울바다에 가보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장항선 노선을 보니 대천역이 바다에 아주 가깝습니다. 대천 하면 대천해수욕장이 있고 여름에는 보령머드축제로 유명한 곳입니다.


대천역에 내리니 역 광장 바로 앞에 말끔하게 단장된 정류장이 있습니다. 대천항과 해수욕장으로 가는 버스가 15분 만에 한 대씩 있습니다. 주변에 다른 건물들은 보이지 않고 단출하게 정류장만 있으니 한적합니다. 대천과 보령을 따로따로 알고 있었는데 1995년에 대천시와 보령군이 합해져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버스에 올라 15분 정도 타고 가니 곧바로 대천항이 나옵니다. 버스에 내려서 수산시장 쪽으로 갑니다. 정말 기차역에서 아주 가까운 항구이고 수산시장입니다.


수산시장을 둘러봅니다. 시장 바닥에 노란 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이 줄은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할 때 넘어서면 안 되는 줄이라고 합니다. 그걸 모르고 줄을 넘어서니 생선 파는 아가씨가 다가와 무엇이 필요한지 집요하게 물어봅니다. 줄 바깥으로 물러서서 걸으니 적극적으로 물어보지 않고 쳐다보기만 합니다. 이것저것 생선들이 많습니다. 바지락이며 조개, 꽃게도 있습니다. 갑오징어가 많습니다. 곧바로 회로 먹을 수 있는 광어, 숭어, 오징어, 그리고 참돔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서 2층으로 올라가면 회를 쳐서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김장이 한창입니다. 수산시장 사람들의 김장이니 혹시 김칫소에 생선이 많이 들어있을까 하고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다른 것은 없습니다. 작게 썰은 생선도 보이지 않고 대신 파 조각과 무채, 그리고 갓 등 채소가 아주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양념 덩어리는 거의 보이지 않고 모두 채 썬 재료들에 양념이 남김없이 섞여있습니다. 김장하는 곳을 뒤로하고 2층을 한 바퀴 돌아보니 횟감을 가져오면 상 차리는데 기본이 3만 원입니다. 횟감에 따라서는 추가요금이 붙을 수 있다고 합니다. 혼자서 먹기에는 부담 있는 가격입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수산시장 안쪽을 둘러봅니다. 어떤 것이 막 잡은 것일까? 인근 바다에서 잡은 고기는 어떤 것일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횟감은 양식이 많다고 합니다. 수입산이라고 표시된 생선들도 많습니다. 중국에서 수입한 것, 일본에서 수입한 물고기도 있습니다. 가리비는 대부분 일본산입니다. 나중에 뉴스에서, 우리나라에 가리비는 아직 수입되지 않은 것으로 보도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주1) 시장에서는 이미 일본산 가리비가 유통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시장 상인에게 막 잡은 생선을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판장으로 가라고 합니다. 판장이면 공판장을 말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공판장은 어물 한 상자 이상을 사야 한다고 합니다. 공판장에서 일어나는 생선 경매를 본 적이 없으니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상인이 가리키는 쪽으로 갔습니다. 수산시장에서 서쪽으로, 바닷가 쪽으로 더 들어가는 곳입니다. 5분 정도 걸으니 바로 나옵니다. 대천항이 펼쳐져 있고 수십 척의 배들이 항구에 가득 들어와 있습니다. 항구 안쪽에 큰 건물이 있는데 이곳이 수협 위판장이라고 합니다. 수협에서 위탁하여 판매하는 곳이라서 이렇게 부릅니다. 그런데 문을 닫았습니다. 경매를 보려면 아침 일찍 와야 한답니다. 8시에 경매를 시작하는데, 이곳에서는 때에 따라 다르겠지만 꽃게, 광어, 새우, 멸치, 꼴뚜기, 밴댕이, 아구 등이 거래된다고 합니다.(주2) 다음에는 일찍 와서 경매를 구경하고 싱싱한 생선을 사야겠습니다.

 

판장을 뒤로하고 인근 시장으로 갔습니다. 판장 옆에 기다랗게 건어물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군데군데 식당이 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횟집인데 생선 구이가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가격표에는 생선구이가 20,000원이라고 적혀 있는데 주방장이 안 된다고 합니다. 나오려고 하는데 주인이 붙잡습니다. 박대 고기라도 괞찮죠? 이렇게 묻습니다. 그래서 다시 앉아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박대 고기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어떻게 생긴 생선일까? 드디어 한 상이 나왔습니다. 김치와 시금치, 멸치무침과 곰삭은 총각김치가 있습니다. 붉은 색깔의 동치미도 나왔습니다. 무가 보라색입니다. 과일무로 만든 동치미 같습니다. 그리고 박대 1마리와 전어 2마리가 나왔습니다. 박대를 보니 길이가 40cm 가까운 길쭉한 생선입니다. 박대 구이 맛을 보니 간이 전혀 안 되어 있습니다. 전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업원이 발라준 박대 구이를 조금 집어서 밥과 함께 먹어보니 아무래도 싱겁습니다. 잘 익은 김치와 함께 먹어보았습니다. 뭔가 서로 어울리지 않고 쓴 맛이 납니다. 식당에 들어오기 전에 과자 파는 가게에서 서비스로 준 전통 과자를 몇 개 먹었는데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있으니 종업원이 깜빡했다며 고추냉이가 담긴 간장 한 종지를 들고 옵니다. 그것에 박대를 찍어 먹으니 비로소 맛이 살아납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은 회 전문 음식점입니다. 생각이 났습니다. 이 박대는 회를 먹을 때 가끔 서비스로 나오는 생선입니다. 몸 통이 얇아서 먹을 것이 별로 없는, 길쭉하게 생긴 생선입니다. 횟집이니 일본식 구이를 내놓은 것입니다. 간을 하지 않고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 먹는 것입니다. 


언젠가 일본 시부야에서 일본인 친구들과 횟집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2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 회를 먹는데 초고추장이 나오고 마늘과 상추가 나왔습니다. 일본 친구들 말이 그 집은 한국식 횟집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날 생선을 먹을 때 보통 초고추장을 찍어 먹습니다. 그럼 고추가 전래되기 전에는 어떻게 먹었을까요? 된장에 찍어 먹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런 풍습이 전해져 왔을 것입니다. 그럼 간장에 찍어 먹었겠지요. 그리고 풍미를 더하고 비린 내를 없애기 위해서 산초 가루를 풀어서 먹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산초가루 대신 고추냉이를 넣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추냉이의 원산지가 우리나라입니다. 와사비와 고추냉이는 엄밀하게 말한다면 같은 식물은 아니지만 아주 비슷하고 가까운 친척 관계입니다. 와사비는 원산지가 일본이라고 합니다. 일본 아스카 시대부터 그 기록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스카 시대의 귀족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옛 사람들은 고추냉이를 간장에 풀어서 날 생선을 찍어 먹다가 붉은 고추가 들어와 고추장이 생기니까 그 방법을 버리고 초고추장을 만들어 생선을 먹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박대 구이를 잘 먹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건어물 가게를 가니 박대고기 말린 것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사방에 박대고기가 많습니다. 기념으로 반건조 박대 고기 6마리에 2만 원을 주고 샀습니다. 3만 원을 채우면 1만 원 상품권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1만 원짜리 홍어 말린 것을 샀습니다. 영수증을 들고 인근 복지센터에 가니 어느 시장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을 줍니다. 해양수산부에서 기간 한정으로 특별히 추진하는 수산물 판촉 행사라고 합니다. 아마도 일본 수산물 수입 때문에 어민들 반발이 심하여 이런 행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한심한 정부입니다.  


박대는 참서대과 물고기로 모래나 갯벌 바닥에 삽니다. 어려서는 눈이 정상으로 위치하고 있지만 성장하면서 한쪽으로 눈이 몰린다고 합니다. 몸 한쪽은 갈색이고 다른 쪽은 흰색입니다. 아마도 얕은 서해 바다 바닥에서 한쪽으로 누워서 사니 눈이 한쪽으로 몰리고 몸 색깔이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못생겼다고 문전박대를 받아 박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박대 몸이 종이장 같이 엷어서 엷을 박 박(薄) 자를 써서 박대라고도 한답니다.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주로 많이 잡히며 껍질은 묵을 만들어 먹고, 반 건조시켜 구이며 탕을 만들어 먹습니다. 비린내가 적은 이 물고기는 성질이 급해 그물에서 건지면 바로 죽어버리기 때문에 주로 말려서 사용한다고 합니다.(주3) '동해에 가자미, 서해에 박대'라고 합니다. 저는 가자미만 알고 있었는데 제가 사는 가까운 곳에 박대가 살고 있으며, 이 지역의 유명한 생선이라고 하니 박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 뜻하지 않게 박대를 만난 겨울바다 여행이었습니다.



주1) <SBS뉴스>, 「중국서 퇴짜 맞은 일본 가리비…한국 온다더니 결국」, https://www.youtube.com/watch?v=BgOW2fmigao2024.1.9.

주2) 보령시, 「수산물 경매 현장 속으로~ 바다 향기 가득한 대천항」, https://blog.naver.com/boryeongsi/221599130177, 2019.7.31. 

주3) 조한중, 「정말 구분이 안 되는 '박대'와 '서대'」, <브런치스토리>, https://brunch.co.kr/@han56230/50. <더농부>, 「동해에 가자미가 있다면 황해엔 박대가 있다. 못생겨서 문전박대당한 '군산의 소울 생선' 박대」, https://m.blog.naver.com/nong-up/221813625179, 20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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