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그리고 한 해의 문장

혼밥, 그리고 한 해의 문장

경상국립대학교 가좌 캠퍼스 교직원 식당에서

나는 혼자 점심을 먹는다.


말을 아끼는 자리,

숟가락이 먼저 말을 건네는 시간이다.


흰쌀밥 한 공기,

맑은 국, 제철의 반찬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이 식탁은

오늘을 마무리하기에

딱 필요한 만큼의 성실함으로 차려져 있다.


육천 원이라는 숫자는 계산대에서 멈추지만

그 안에 담긴 하루의 무게는

오래 씹힌다.


값은 작고, 의미는 크다.

이런 점심은 늘 삶의 정중앙에서

“괜찮다”는 말을

조용히 건네준다.


혼밥은 고독이 아니다.

정돈이다.


타인의 속도에 맞추지 않아도 되는 호흡,

생각이 제 발로 걸어 나오는 틈.

숟가락이 국을 떠올릴 때마다

한 해가 스스로를 정리한다.


부족했던 날들은 국물처럼 맑아지고

넘쳤던 말들은 김처럼 사라진다.


식당 한편에 배너 하나가 서 있다.

두 줄 시인, 최상일.

“잘라내도 자라나는 그리움 하나.”


이 문장은 벽이 아니라 창이다.

잘려 나간 자리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마음을

말이 아니라 여백으로 가르친다.


그리움은 소유가 아니라 생장이다.

버려도 다시 돋는 감정,

삶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


올해의 마지막 점심.

숫자로는 끝이지만

감정으로는 이어진다.


우리는 늘 마지막을 먹고

다음을 살아간다.

그래서 한 끼는 끝이 아니라 약속이다.


밥은 내일의 문법이고

국은 오늘의 쉼표다.


창밖으로 캠퍼스의 오후가 지나간다.

겨울의 빛은 얇고 정직하다.

말을 보태지 않아도 충분한 풍경 앞에서

나는 천천히 수저를 내려놓는다.


큰 서사는 없지만

작은 진실은 있다.


성실하게 먹고

조용히 바라보고

고맙게 일어서는 일.


육천 원의 행복은

사치가 아니라 태도다.

자기 삶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약속,

오늘을 끝까지 살아내겠다는 서명.


그렇게 나는

한 해의 마지막 점심을 마친다.


잘라내도 자라나는

그리움 하나를 남겨두고,

내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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