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란다에 나가 긴 한숨을 들이마셨다. 내뱉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양구 산골의 밤하늘은 유난히 별이 밝았다. 시원한 공기가 내 폐 속까지 스며들어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듯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지휘추천 없이도 진급하는 모습 보여줄게. 당신 남편, 대충 살지 않았다는 거 알지?"
"그래, 잘 알지. 근데 너무 부담 갖지 마. 이번에 진급 못해도 괜찮아. 다음에 하면 되잖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밥 먹어. 난 아무래도 괜찮아. 파이팅!"
고마웠다. 그런데도 나는 눈물이 흘렀다. 억울했다. 잘못한 것은 없는데, 많이 헌신했는데, 그런데 왜?
다음 날 아침, 출근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두고 보자. 분명히 내가 보여줄 테니…."
가장 먼저 육군본부 진급과에 사이버 상담을 신청했다. 그곳에 이렇게 적었던 것이 생각난다.
"저는 오늘까지 정말 열심히 근무했습니다. 아주 많이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지휘추천 ‘상’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제 11년 군 생활 전체를 덮어버릴 만큼 중요한가요? 너무 억울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얼마 후 육군본부 진급과장이라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 김 대위. 야전에서 고생이 많아. 자네 말처럼 11년 군 생활이 더 중요하지. 지휘추천은 그저 한 부분일 뿐이야. 그러니까 계속 정진하길 바란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지. 하긴, 나라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공허했다. 허무했다. 그저 시간이 지나길 바랐다. 진급 발표가 나면, 이후 보직은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8월이 되었다.
8월이 되자, 연합연습에 필요한 증원 인원이 상급부대에서 하달되었다. 연대에서는 대위 1명을 대전 BSC로 파견을 보내야 했다. 연대의 실무자 중 대위는 작전장교와 나, 교육장교뿐이었다. GOP 연대의 작전장교는 자리를 비울 수 없었으니, 결국 내가 가야겠구나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준비하던 중, 연대장님이 대위급 중대장 포함 6명을 불러 점심을 함께하셨다. 그리고 연합연습 파견자를 고민 중이라고 말씀하셨다.
"제가 가겠습니다."
"아니야. 다른 인원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 중대장을 보낼까 생각 중이야."
"중대장은 병력 관리해야 하니, 보내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8월 말에 대위에서 소령으로의 진급 발표가 있는데…"
연대장님은 내가 파견을 가는 것도 아쉬운데, 타지에 가서 진급발표시 탈락하면 더 마음이 아플까봐 걱정하시는 듯했다. 고맙기도 했지만, 씁쓸함이 더 컸다. 젠장… 잊으려 애썼는데.
내가 자원하자 연대장님은 승인하셨고, 결국 8월 3주간 연합연습 파견을 갔다. 그리고 한창 연합연습이 한창이던 8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16시경, 소령 진급 발표났다.
훈련장내 시뮬레이션 센터 안에서 당시 우리 군단의 책임장교였던 중령 장교 한분이 자기 부하의 진급 여부를 확인했고 이어서, 내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김 ○○ 대위라고 보병 장교 명단에 있나 찾아봐."
1초…
2초…
3초…
4초…
5초…
피가 마르는 듯했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시뮬레이션 센터 안의 훈련인원 12명이 모두 책임장교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명단에 김00 이름 있단다. ."
훈련장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나는 어리둥절했고, 주변이 하얗게 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먼저, 양구 산골짜기에서 외롭게 두 아들과 지내고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진급했다. 내가 뭐라 했어? 지휘추천 없이도 진급하는 거 보여주겠다고 했지? 약속 지켰다!"
아내도 기뻐했다. 그리고 곧 연대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축하한다. 지휘추천을 안 줬는데 네가 진급하니 왜 이렇게 내가 미안한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연대장님께서 잘해주셨기 때문에 진급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해 우리 연대에서는 4명의 진급 대상자 중 3명이 소령으로 진급했다. 지휘추천 ‘상’을 받은 연대 작전장교, 연대 수색중대장, 그리고 지휘추천 ‘중’을 받았던 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 11년간의 성실하게 잘 관리되어 온 군 생활이 이번 진급의 기반이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진급과장이 해준 말, "11년의 군 생활이 더 중요하고, 지휘추천은 한 부분일 뿐"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연합연습을 마치고 복귀하자마자 대대 작전과장으로 보직 명령을 받고 이동했다.
진급 발표 이후, 연대 인사과장 처와 내 아내가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교육장교네는 좋겠네… 1차로 진급하고…"
참고로 인사과장은 소령 진급을 4차로 했다고 한다.
혹시 당신이 이번에 지휘추천 ‘상’을 받지 못했더라도, 받지 못할 것 같은 구도에서 근무하고 있더라도, 너무 쫄지 마시길.....
모든것이 진인사대천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