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추천이란 군에서 간부들이 진급할 때, 해당 지휘관이 진급해야 할 인원을 추천하며 부여하는 점수다. 진급 대상자 중 30%는 ‘상’을 받고, 나머지는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중’ 또는 ‘하’를 받는다. 기본적으로 지휘추천 ‘상’을 받아야 진급할 확률이 높아진다. 군에서는 지휘추천 ‘상’을 받는 것을 “샅바를 잡아본다”라고 표현한다. 씨름에서 샅바를 못 잡으면 씨름장에도 오를 수 없듯, 진급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의미다.
내가 대위에서 소령으로 첫 번째 진급심사를 받았던 때는 2006년이었다. 지금 돌이켜도 마음이 아픈 경험이다. 당시 나는 21사단에서 교육장교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대대 군수과장에서 연대 교육장교로 보직 이동을 하며, 연대장님께 신고를 드렸다. 그때 연대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김 대위! 미안하지만 난 자네에게 지휘추천을 줄 수가 없네. 이해해 주기 바란다. 내가 빚졌다고 생각할게.”
‘이건 무슨 말씀이신가… 신고를 하면 희망을 주고 열심히 근무하도록 해주셔야지, 초장부터 이렇게 김을 빼시면 너무하신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급행열차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괜찮습니다. 부여된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육장교로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그러나 신고를 마치고 돌아서는 내 마음은 너무도 아팠다. 혈기왕성한 대위였고, 열심히 하면 뭐든지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젊은 장교였으니 더 그랬다. 그놈의 지휘추천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기를 죽이는가. 사실 연대장님을 많이 원망했다. 하지만 아직 3월이었고, 진급심사는 8월이었다. ‘내가 열심히 하면 연대장님의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고 최선을 다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나는 주말도 잊은 채 처절하게 근무했다. 연대장님의 말씀이 실수였거나, 내가 잘못 들었길 바라며, 그때의 상황을 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그리고 6월, 지휘추천의 시즌이 돌아왔다.양구의 6월은 초록빛으로 가득했고, 우거진 산림과 흐르는 맑은 물이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연대 지휘추천 심의 위원회가 열렸다. 부연대장을 위원장으로, 연대 예하 대대장과 참모들이 위원을 맡아,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하는 4명 중 누구에게 30%의 ‘상’을 부여할 지 심의했다. 그 결과를 기초로 연대장이 등급을 부여하고 서명해 제출하면 심의는 종료된다.
그해 연대 대상자는 연대 작전장교, 연대 수색중대장, 연대 교육장교(나), 그리고 연대 본부중대장이었다. 이 4명 중 2명은 ‘상’을, 나머지는 ‘중’ 또는 ‘하’를 받는다. 연대 간부들은 대다수는 연대 작전장교와 수색중대장이 ‘상’을 받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통상 연대에서 진급을 하는 핵심 직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휘추천 심의가 진행될 때도 열심히 일했다. 아니, 일하는 척을 했다. 초조하고 긴장돼서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과가 끝나고 퇴근하는 길, 평소 잘 따르던 군수과장(소령)을 만났다. 인사를 드리고 물었다.
“지휘추천 심의는 잘 끝났습니까?”
“그래, 잘 끝났다.”
“전 어떻게 될까요?”
“그건 말해줄 수 없는 거 잘 알잖아?”
심의에 참가한 위원들은 내용을 발설하면 처벌받는다.
“알고 있습니다. 그냥 물어봤습니다.”
“힘내라.”
“… 네.”
‘힘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기운이 빠진 채 퇴근했다. 집에 도착하니, 사랑하는 아내와 큰아들, 그리고 갓난쟁이 아들이 기어와 나를 반겼다. 저녁 식사를 위해 거실에 앉아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물었다.
“지휘추천이 뭐야?”
나는 군 관련 이야기는 집에서 절대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도 의외였다.
“당신이 지휘추천이란 단어를 어떻게 알아?”
“오늘 아이들과 마당에서 놀고 있었는데, 인사과장 아내분이 지나가면서 말하더라고…”
“뭐라고 하드나?”
“‘오늘 대위에서 소령 진급대상자 지휘추천하는 날인데, 교육장교네는 이번에 지휘추천 못 받았으니 올해 진급은 물 건너갔네… 빨리 내년에 보직될 좋은 자리 알아보는 게 좋겠어!’라고 말하던데? 당신 지휘추천 못 받아? 그럼 진급도 못하는 거고?”
그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분명히 알았다.
'나 혼자 감당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왜 아내까지 이런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연대장님이 원망스러웠고, 특히 인사과장과 그 가족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강한 분노가 치밀었다.
당장 달려가서 따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