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급심사위원들의 관점
대한민국 직업군인들의 근무평정 기간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근무평정표에 어떤 내용이 기술되어야 진급에 도움이 되는 걸까?”
근무평정 작성 지침을 보면 ‘150자 5줄을 넘기지 말 것’, ‘사실에 입각할 것’ 등 형식적인 안내만 있을 뿐,
진급심사에서 실제 어떤 내용이 유리한지에 대한 핵심은 알려주지 않는다. 나 역시 30년의 군 생활을 했지만 , 이에 대한 뚜렷한 답은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진급심사위원의 눈길을 사로잡은 근무평정표 기술 내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답변은 다양했지만, 공통된 핵심은 분명 존재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중 ‘평정표 기술 내용’이 진급에 미치는 영향과 그 안에서 우열이 갈리는 결정적 요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간부들의 진급심사 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근무평정 점수다. 즉, 근무평정 점수가 낮으면 진급 선발이 힘들다는 뜻이다. 그래서 육군본부 진급심사위원으로 선정된 인원들은 진급 대상자들의 근무평정 결과를 아주 면밀히 살핀다고 한다.
근무평정에서 가장 지배적인 요소는 역시 종합 평정 / 의견란의 등급이다. 등급은 '탁월' '우수' '보통' '미흡' 이렇게 4등급으로 구분된다. 이중 '탁월'은 피평정대상의 총원에서 30%만 '탁월' 등급을 받는다. 예를 들자면 10명 중 3명만 '탁월'을 받고 나머지 7명은 '우수''보통''미흡'이란 등급을 받는다.
딱 봐도 알겠지만 '탁월'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흔히들 종합등급의 '탁월'을 받는 것을 '평정받았다'라고 말한다. '탁월'을 많이 받으면 그만큼 진급하기가 쉽다. 왜냐하면 진급심사위원들은 수많은 심사 대상자 중 '탁월' 등급을 다른 이들보다 많이 받은 인원은 우선 선발 대상자로 분류한다. 이미 야전에서 경쟁을 뚫은 인원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야전에서 평정 대상자가 1명인 인원은 특별한 경쟁이 없어도 '탁월'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단독 피평정자는 더욱 면밀히 확인한다고 한다. 그리고 의외로 혼자서 받는 1/1평정에서 '탁월'을 받지 못하는 이가 많다고 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
육본 진급심사위원으로 선발되었던 동료에게 물어보니 '탁월'을 받은 이의 평정표 내용은 당연히 긍정적인 내용으로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탁월'을 줬는데 부정적인 내용을 기술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탁월' 등급을 받은 인원의 평정표 기술내용은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부터는 잘 나가는 그들을 제외하고 이제 남은 '우수''보통''미흡'을 받은 나머지 70%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도 지휘관 시절 많은 부대원들의 근무평정표를 작성했는데 이때 '탁월'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정말 특별한 문제나 결격사유가 없으면 '우수' 등급을 부여했다. 진급심사를 다녀온 이들도 공통적으로 '우수'등급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평정권자와 문제가 있거나 징계 등 결격사유가 있는 이는 '보통' 또는 '미흡'인데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즉, '우수'등급을 가진 인원들 중에서 앞서 말한 '탁월' 등급을 받은 이들이 차지한 진급 공석을 제외한 나머지 공석을 가지고 치열한 경쟁을 한다. '보통''미흡' 등급은 미안하지만 경쟁에 끼지도 못한다고 한다. '우수'등급을 받은 인원이 너무 많아서 짧은 진급심사기간 동안 그들의 우열을 가리는 것도 매우 힘들기 때문이라고 심사위원을 경험한 인원들은 공통적으로 말했다.
물론 진급심사 간에는 지휘추천, 경력, 잠재역량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복잡적으로 고려한다. 이런 것들까지 설명하려면 너무 복잡해지니 평정표에 한정되어 말하도록 하겠다.
'우수' 등급을 받은 수많은 이들 중 진급 대상자를 선발할 때 평정표 기술 내용이 아주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즉, 등급이 같은 인원 중에서 더 잘하는 인원이 누구 인가를 평가할 때 상급자가 기술해 준 근무평정표 종합의견란의 기술 내용은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러면 근무평정표의 종합의견란에 어떤 내용이 기술돼야 할까?
1. '부정적인 내용'이 기록되면 절대로 안 된다.
'일은 잘하나 자기 관리가 부족함'이라든지 '좀 더 노력이 필요함', '준비성이 부족함' 등 과 같이 부정적인 기술은 치명적이다. 수많은 '우수'등급의 경쟁자들 속에서 이런 부정적 기술이 포함된 평정표는 본 심사위원은 더 볼 것도 없이 바로 다음 사람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2. '무미건조한 내용'이 기록되면 안 된다.
'잘하는 간부임''성실함' '노력하고 있음' '부여받은 임무에 충실함''솔선수범하고 있음' 등 피평정자의 특징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말이 아닌 부정적인 내용을 쓰고 싶으나 그래도 부하니까 불쌍해서 그저 그렇게 기술하는 내용은 마찬가지 진급 심사위원들이 'PASS'한다.
3. '정성'이 포함되어야 한다.
과거 육본 진급과에서 근무했던 동료에게 물었다.
" '매우 잘하는 간부'와 '정말 잘하는 간부'라는 문구가 있을 때 어떻게 심사 간 유리하게 판단될 수 있지? 나는 개인적으로 같은 뜻이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평정표 기술내용을 가지고 우수한 인원을 선발할 수 있는지 궁금해."
" 국어사전의 '부사'의 차이로 평정표 기술 내용을 분석하지 않아. 예전에 어떤 상급자가 자신의 부하에게 어쩔 수 없는 사유로 '탁월' 등급을 부여하지는 못하고 '우수'등급을 준 인원이 있었어. 그런데 그 평정표의 기술 내용은 진급과 실무인원들이 보기에도 '정성'이 느껴지도록 작성이 되어 있었어. 예를 들자면...
'내가 고민하는 상황을 누구보다 먼저 의논하고 싶고, 다른 부대에 가서도 또다시 함께 근무하면서 군의 미래를 생각하고 전투력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지는, 같은 부서 내 선배로 인해 '탁월' 등급을 줄 수 없어 다른 보상을 위해 나의 직책을 걸고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 진정한 전우임. 특히 작전기획능력은 전군 최고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증함'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돼. 그냥 단순히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평정권자가 피평정자를 얼마나 아끼고 또 잘해주고 싶은지가 고스란히 나타나잖아? 실제 이런 정성이 표현된 평정표 소유 간부가 진급심사 간 선발된 경우가 많이 있었어."
"그런 내용을 진급심사위원들이 하나하나 다 읽어보는가 보구나?"
"대부분 치열한 경합이 되면 자세히 읽어. 그리고 만약 평정표 내용을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진급과 소속 간사가 '평정표 기술 내용도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라는 의견을 내면 심사위원들이 면밀히 살펴보고 투표를 하기도 해. 그러면 대부분 정성이 가득한 평정표를 가진 인원이 선발이 되는 거지.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이상의 대화에서 보면 알겠지만 진급심사위원의 눈길을 사로잡는 근무평정표 기술 내용의 답은 '정성이 포함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이렇게 정성 들여 근무평정을 작성하지 않은 것 같다. 각종 '잘한다'라는 수사 어구가 가득한 내용을 기술했는데 시작부터 잘못 배워서 그런 것 같다. 하긴 이런 것을 누가 말해주기나 했나.....
다음 편에서는 최근 야전에서의 근무평정 작성 실태를 알려주고 많은 간부들이 실수하는 것과 이를 해소하는 방법을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