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으로 복무하던 시절, 나는 전라남도 해안을 경계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해안 소초를 관리하며 경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매일 취약 시간대인 전반야나 후반야에 순찰을 실시하곤 했다. 그렇게 열심히 근무하던 어느 추운 겨울,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사건이 있었다. 200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날 나는 집에서 아내와 저녁을 함께한 뒤, 후반야에 순찰을 나갈 계획이었다. TV를 보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있던 중, 졸음이 오락가락할 무렵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00소초장이었다.
"중대장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무슨 일이야?"
(해안경계 중 '큰일'이라 하면 적 침투, 총기 사고, 밀입국 등이었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소초 상근예비역 병사가 실신했습니다."
"실신? 숨은 쉬고 있어?"
"예, 숨은 쉽니다. 그런데 아직 의식이 없습니다. 몸이 많이 굳어 있어서 지금 마사지를 해주고 있습니다."
"외상 흔적은 있어?"
"전혀 없습니다. 경계 근무 중 초소 출입문을 열어주고 복귀하지 않아서 초소 출입문으로 가보니 쓰러져 있었고, 지금은 생활관으로 옮겼습니다."
"알겠다. 내가 현장에 갈 테니 기다려. 대대장님께는 내가 직접 보고할게."
나는 즉시 대대장님께 보고한 후, 순찰용 찝차를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한참을 달리는 중에 소초장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중대장님, B 일병이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말을 하지 못합니다."
"다행이다. 곧 도착하니까 기다려."
소초에 도착해 생활관에 들어가니, B 일병이 침상에 누워 있었고 몇몇 동료들이 그의 몸을 주무르고 있었다.
"B 일병! 내 말 들리나? 중대장 알아보겠니?"
(B 일병은 말없이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손도 약간 움직였다.)
"그래, 괜찮아. 내가 지금 즉시 병원으로 후송시켜줄 테니 걱정하지 마."
(B 일병은 다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손으로 글씨는 쓸 수 있겠니?"
(그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볼펜을 건네주고, 소초장이 메모지를 받쳐주었다.)
"B 일병, 무슨 일이 있었니? 글씨로 적어봐."
B 일병은 떨리는 손으로 삐뚤빼뚤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점차 윤곽이 드러났다.
"귀 신"
헐… 순간 소름이 끼쳤다. 주변에 있던 소초원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놀랐지만, 그곳에서 24시간 생활하는 병사들은 오죽했을까. 나는 재빨리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대대장에게 다시 보고했다.
"대대장님, 보고드리겠습니다. B 일병은 의식과 호흡은 정상입니다. 하지만 아직 말을 하지 못합니다."
"왜 그런 거야?"
"귀신을 본 것 같습니다."
"말을 못 한다며? 그걸 어떻게 알아?"
"글씨로 '귀신'이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이야?"
"일단 B 일병은 지역 민간병원으로 119 구급차를 통해 후송하겠습니다. 병원까지는 제가 동행하고, 입원 수속 이후 행정보급관을 병원에 대기시키겠습니다. 이후 저는 다시 소초로 복귀해 2~3일간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동요하고 있는 병사들을 안정시킬 계획입니다."
"알겠다. 나도 소초로 가보겠다. 중대장은 계획대로 조치하라."
곧 119 응급차가 도착했다.
"환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 생활관 안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귀신을 봤다고 합니다."
"예? 귀신이요?"
"……"
더는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구급대원에게 일단 후송해달라고 요청했고, B 일병을 태운 앰뷸런스는 경광등을 켜고 병원으로 향했다. 나도 순찰 차량으로 뒤따랐다. 약 20분 후, 해당 지역의 가장 큰 종합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당직의사와 간호사들이 우리를 맞았다.
"어떤 환자입니까?"
"예, 귀신을 보고 쓰러졌다고 합니다. 현재 의식은 있고 맥박과 체온도 정상입니다. 하지만 말을 못 하고 있습니다."
"귀신이요…?"
당직의사도 구급대원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B 일병은 즉시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어떤 조치를 하실 예정입니까?"
"환자가 심하게 놀라 순간적인 경직이 왔을 수 있습니다. 외상도 없고 생체 징후도 정상이니, 우선 안정제를 투여해 재운 뒤 상태를 지켜보겠습니다. 자고 나면 말을 회복할 수도 있으니, 그때 다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잠시 뒤, 행정보급관이 병원에 도착해 상황을 인계받았다. 나는 다시 소초로 향했다.
"귀신이라…"
소초로 향하는 순찰차 안에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 하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