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육군대학 생활)

by 사선에서

육군대학 시절 이야기다.


장교들에게 육군대학은 소령으로서 영관장교의 길을 시작한 뒤, 앞으로 더 높은 계급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중령, 대령으로 진급하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반대로 성적이 좋지 못하면 영관장교 생활의 시작부터 동기들에게 뒤처진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가 더욱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치열하게 공부에 매달린다.

(**물론 지금은 육군 교육기관에서 성적을 공개하지 않고 합격·불합격제로 운영한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군 조직은 분명 어딘가에 개인을 평가할 기준을 마련해 두기 때문이다. 내가 육군대학에서 공부하던 당시에도, 언젠가 합불제가 도입되더라도 상위권 성적을 받는 것이 다음 계급으로 진출하는 데 유리하다고 모두가 말했다. 지금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입교했던 2008년은 유난히 치열했다. 특히 육군대학 기본과정은 4개월 동안 공부해 최종 성적이 상위 40% 안에 들어야만 이어지는 정규과정 8개월에 입교할 수 있었다. 만약 40% 안에 들지 못하면 곧바로 짐을 싸서 야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야전에서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기본과정만 수료하고 돌아온 장교에 대해 ‘공부 못하는 장교’라는 인식이 존재했다.


더 큰 문제는 가정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한 아내는 동기 모임에서 다른 남편들은 모두 정규과정에 합격했는데 자기 남편만 떨어졌다며 이혼을 요구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도 그 여파는 잔인했다. 당시 내 아들도 00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기본과정 성적 발표 후 일주일쯤 지나 담임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음 달 우유 신청은 아빠에게 꼭 물어보고 신청해야 한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아들이 퇴근한 나에게 물었다.


“아빠, 선생님이 다음 달 우유 신청해도 되는지 아빠한테 물어보래요.”


“그래, 신청해라.”


나는 대답하고 나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분명했다. 아빠가 정규과정에 합격해야 아들이 앞으로 8개월 더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있고, 그래야 우유를 신청할 수 있다. 반대로 불합격하면 우리는 곧바로 야전으로 전출 가야 했고, 아들도 전학을 가야하기 때문에 우유를 신청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아빠로서 가슴이 찢어지는 순간일 것이다. 훗날 친한 동기와 석별의 술잔을 나누던 자리에서, 그 동기가 자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더 맛있고 신선한 우유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전학시켜 줄 테니, 다음 달 우유는 신청하지 마라.”


이런 결과를 맞이하고 싶지 않았기에, 당시 우리에게 육군대학 기본과정은 마치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과정과 같았다. 어떤 이는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학교에서 자며 공부했고, 모두가 각자 방식으로 상위 40% 안에 들기 위해 몸부림쳤다. 체력은 떨어지고, 피곤에 찌들어 잠과 싸우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성적의 대역전을 위해 끝없는 투쟁을 이어갔다.


나 역시 어느 날 그런 처절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퇴근해 집에 와 밥을 허겁지겁 먹은 뒤, 아내에게 “학교 가서 공부하고 올게”라고 말하고 아파트 현관을 나섰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소리치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몸을 숨기고, 또 다른 아이는 열심히 찾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가득한 모습을 보며 부러움이 밀려왔다.


‘저 아이들은 참 행복해 보이네. 난 언제쯤 웃을 수 있을까….’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주변을 확인했다.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조정하며 후방을 살폈다. (당시 차에는 후방 카메라가 없었다.) 출발하려는데 전방 2시 방향에 앉아있는 아들이 보였다. 손을 흔들었지만 아들은 내가 있는 운전석을 보지 않고 차 뒤쪽을 바라보는 듯했다. 순간 섬뜩한 느낌이 스쳤다.


‘왜 아들이 차 뒤를 보고 있지?’


불길한 예감에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뒤쪽을 확인했다.


“헉!”


차 뒤에는 어린 남자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숨바꼭질을 하다가 몸을 숨긴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차 뒤에서 놀면 위험하니 다른 곳에서 놀라고 말한 뒤 돌려보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들에게 물었다.


“왜 아빠한테 차 뒤에 아이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


“예? 무슨 말씀이세요?”


“너 아빠 차 뒤를 계속 보고 있었잖아.”


“아닌데요? 저는 아빠 차 뒤 안 보고 건너편 아파트 앞에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었는데요.”


“그래?”


나는 아들이 있던 자리에서 차 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위치에서는 내차 뒤에 아이가 숨어 있던 곳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사각지대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만약 그때 그냥 출발했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도대체 왜, 그 순간 나는 아들이 차 뒤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P.S. 오늘도 각군대학, 병과학교, 계급별 교육과정, 양성교육기관에서 불철주야 공부하고 있는 우리 군 간부들을 응원한다. 지치고 힘들더라도 꼭 힘내길 바란다. 다만 공부보다 더 소중한 것을 잃지 않도록, 잠시 시간을 내어 항상 주변을 살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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