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의 전차 조종수

by 사선에서

여단 예하 전차대대의 혹한기훈련 간, 육군참모총장님이 방문하신다는 지시가 하달되었다.


나는 참모총장님께서 훈련장에 도착하셨을 때부터 향발하실 때까지의 동선을 계획하고, 그 동선에서 무엇을 보고드릴지 판단한 뒤 결과를 여단장님께 보고드렸고 바로 결심을 받았다.


참모총장님이 다락대 과학화 훈련장 헬기 패드에 내리시면 통제소로 이동하여 과학화 훈련 시스템 보고를 받으시고, 이후 전차 훈련장으로 이동해 K-1E1 전차에 직접 탑승하시어 기동훈련을 참관하시도록 계획하였다. 나는 1주 전부터 총장님 동선을 따라 수차례 걸어 다니며 확인했다. 또한 보고 멘트를 정리하고, 전차에 오르실 때 사용할 계단 설치까지 실제로 점검했다. 며칠이 지나 마침내 총장님이 방문하셨다.


계획대로 헬기와 차량이 이동했고, 1차 보고 장소인 통제탑에서도 훌륭하게 보고가 이루어졌다. 총장님께서는 많은 격려와 함께 통제탑에서 훈련 중인 장병 20여 명에게 일일이 코인을 하사하셨다. 이어서 전차 탑승 장소로 이동하셨다. 나는 미리 이동해 그곳에서 총장님을 안내했다.


총장님을 부축하여 전차에 오르시도록 도왔고, 전차장석에 탑승하신 후 전차장이 옆에서 승무원 헬멧 착용을 도왔다. 그러나 착용 직후 차내 무전 시스템을 확인하는데, 갑자기 전차 조종수가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헬멧 차내 통화가 갑자기 안 됩니다.”


원래 잘 되다가 꼭 중요할 때 문제를 일으키는 법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당황하지 않고, 계획과 어긋난 상황의 파도를 타듯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나는 총장님께 “출발 전 잠깐 최종 장비 점검을 실시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며 시간을 벌었다. 눈치 빠른 전차장은 그 시간 공백을 활용해 총장님께 K-1 전차에 대해 설명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나는 조종수에게 헬멧을 벗고 다시 연결해 보라고 지시했다. 조종수가 헬멧을 벗자, 순간 눈앞에 낯선 장면이 펼쳐졌다.


‘헉, 왜 이렇게 머리가 길어?’


순간 온몸이 굳어졌다. 모든 것을 확인했는데, 승무원들의 두발 상태까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사라면 아무리 초급간부라도 총장님 방문에 대비해 스스로 단정히 두발 정리를 하는 게 기본 아닌가. 그런데 이 정도면 완전히 장발 수준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지금 당장 머리를 자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전에 미리 점검하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하는 사이, 다행히 헬멧의 통신 기능은 정상 작동했다. 곧 총장님이 탑승하신 전차는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선두 전차가 불꽃을 뿜으며 전차탄을 발사해 표적을 명중시키자, 총장님은 손뼉을 치며 무전으로 격려하셨다. 복귀 후에는 전차 승무원들 모두에게 코인을 수여하며 칭찬해 주셨다. 다행히 조종수는 헬멧을 다시 벗지 않았다.


총장님께서는 훈련에 임한 장병들에게 “대단히 고생 많고 자랑스럽다!”라며 엄지를 들어 보이신 뒤 헬기로 복귀하셨다. 나는 곧장 전차 훈련장으로 내려가, 총장님을 모셨던 전차를 찾았다. 승무원이 두발정리를 하지 않은 이유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대장이 해당 전차 앞에서 승무원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나는 대대장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대대장! 승무원들 두발 정리 상태를 좀 확인하지 그랬나?”


“왜, 무슨 문제 있었습니까?”


“아까 총장님 타신 전차 조종수가 헬멧을 벗었을 때 보니 장발이던데…”


“아~ K 하사 말입니까?”

“그래. 큰일 날 뻔했어.”

대대장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참모님, K 하사는 여군입니다.”

“여군?”


K 하사는 우리 여단에서 유일한 여군 전차 조종수였다. 대대장이 나름 신경 써서 선발한 인원이었는데, 나는 그것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온몸이 싸늘해지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다. 이번 경험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나는 그날, 작은 부분이라도 끝까지 확인하는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깊이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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