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에서 대대 참모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때는 늦가을, 11월이었다. 추수를 끝낸 양구의 들판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빈 들에는 떨어진 벼 이삭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그 낟알을 쪼아 먹으려는 다양한 철새들이 무리지어 날아들었다.
어느 날, 대대장님과 함께 지휘관 차량에 몸을 싣고 훈련 지역 지형 정찰을 나섰다. 역시나 넓게 펼쳐진 들판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 한 마리의 새가 눈에 띄었다.
앙상한 듯 길쭉한 다리, 그리고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 듯 순백의 고운 깃털을 가진 새였다. 멀리서도 또렷하게 빛나는 그 모습에 나는 학이나 두루미, 혹은 왜가리 중 하나일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군수과장! 저게 무슨 새냐?"
대대장님이 불쑥 물으셨다.
"대대장님.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왠지 학처럼 고고한 느낌도 들고, 또 길쭉한 다리를 보니 두루미 같기도 하고... 아니면 흰색 왜가리일 수도 있겠습니다."
"흐음, 죄다 비슷하게 생겨서 뭐가 뭔지 영 분간이 안 가는구먼."
요즘처럼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모든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당시 우리는 스타택이나 벤츠폰 같은, 기본적인 통화 기능만이 탑재된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궁금증을 해소할 방법 없이 모두가 창밖의 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정찰을 이어가는데, 갑자기 운전병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대장님! 저 새는 틀림없이 학입니다."
"오! 그래? 우리 운전병이 언제부터 조류 박사가 다 되었나? 자네, 혹시 조류에 대해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나? 그렇다면 어째서 저 새가 학이라고 단정 짓는 건가?"
대대장님의 물음에 운전병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예, 대대장님! 저 새가 학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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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멋있기 때문입니다! 황량한 겨울 들판에 저렇게 새하얀 자태를 뽐내며 홀로 거니는 모습은... 정말이지 숨 막힐 듯 멋있지 않습니까?"
"음..................."
순간, 차 안에는 어색하면서도 묘한 침묵이 흘렀다. 대대장님은 아무 말씀 없이 창밖을 바라보셨고, 나 역시 그저 옅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아직까지 하얀 새를 볼 때면 으레 '학'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논리적인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운전병의 말처럼, 멋있기 때문이다. 삭막한 세상에 잠시나마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학'의 이미지로 굳어진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 나는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은 '두루미'를 달리 부르는 말이며, 날 때 목을 쭉 뻗는다는 사실을. 반면, 왜가리와 백로는 목을 S자로 구부린 채 난다고 한다. 백로와 왜가리는 황새목 왜가리과에 속하고, 학(두루미)은 두루미목 두루미과로 분류되어 엄연히 다른 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복잡한 분류 체계나 학술적인 정의보다는 그날 운전병이 읊었던 "멋있기 때문입니다!"라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했던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더 깊이 각인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을 조금 더 단순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내게 흰 새는, 여전히 멋있는 '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