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병사가 우리 대대로 전입 왔다. 그는 전차 승무 주특기를 받고 후반기 교육까지 마친 숙련된 인원이었다. 중대별 전차 승무원이 부족했던 터라,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반가웠다. 신병 전입 신고를 받으면서, 전차병으로서 지켜야 할 안전 수칙과 더불어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 중대장을 포함한 간부나 대대장에게 말해달라고 당부하며 그의 대대 전입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3주 뒤, 중대장이 A 병사에 대해 보고했다.
"대대장님, 이번에 전입 온 A 병사의 아토피 피부염이 심해져서 전차 승무원 임무 수행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며칠 전차에 태워 훈련시켰는데, 피부염 증세가 매우 악화되었습니다."
전차 내부는 아무리 깨끗이 청소해도 야지 기동과 포사격 때문에 먼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내 둘째 아들 역시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고 있어 남 일 같지 않았다. A 병사의 피부가 붉게 변하고 진물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일단 대대 의무실 말고, 군 병원 피부과로 보내 진료받게 해라. 아토피 피부염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잠도 못 자고 하루 종일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다음 날, A 병사는 군 병원에서 외진을 받고 바르는 약을 처방받았다. 당분간 증세가 호전될 때까지 전차 탑승은 중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2주가 지나도 A 병사의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중대장은 전차 승무원 한 명이 임무 수행을 못 하면 앞으로 전차 정비부터 주특기 훈련까지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하며 이렇게 건의했다.
"대대장님! 어차피 증세가 완화된다 해도 다시 전차에 탑승하면 피부염이 또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중대본부로 보직을 조정하고, 공석이 된 전차병 직책에 신병을 빨리 받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합니다."
지당한 말이었다. 나는 인사과장에게 중대장의 건의대로 A 병사의 보직 조정을 규정에 맞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A 병사는 중대 행정병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이후 간간이 중대장으로부터 A 병사가 잘 적응하고 있으며, 아토피 피부염은 완전히 호전되지는 않지만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나는 주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보장해 주라고 당부했다.
두 달이 지났을 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00대대장인가?"
"예, 그렇습니다. 누구십니까?"
"00 여단장 000 준장이다."
전혀 모르는 분이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00여단은 우리 군단 내 부대도 아니었다.
"자네 대대에 A 병사가 있지? 몇 달 전 전차 승무원으로 왔다가 중대본부로 보직 변경시켜준 그 인원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 병사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내 사촌인데 아토피 피부염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서 부모님들 걱정이 심한 상태야."
"안 그래도 수시로 확인하며 병원 진료 여건을 보장하고 보직도 조정해 주었습니다."
"고맙네. 그런데 혹시 대대본부로 보직을 조정해 줄 수 있겠나?"
"대대본부로 말씀이십니까? 혹시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니, 중대본부보다는 대대본부가 아토피 치료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어이가 없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전화를 하고 있었지만 속은 부글거렸다. A 병사의 건강을 고려해 보직을 바꿔주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대대본부로 또 변경해 달라는 것은 충분한 사유가 될 수 없었고, 공정하지도 않았다. 경험상 이런 경우는 길게 말할 필요 없이 그냥 '검토해 보겠다'고 하면 끝난다.
"알겠습니다. 검토해 보겠습니다."
나는 중대장에게 알지도 못하는 상급자에게 전화받은 사실을 알려주고, 혹시 A 병사가 힘든 점은 없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중대장은 A 병사와 면담 후 내게 결과를 보고했다. 특이사항 없이 잘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00여단장의 전화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며칠 뒤, 전화 한 통이 다시 걸려왔다.
"나 군단 인사참모인데, 너희 대대 A 병사 관리를 좀 잘해야겠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A 병사가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는데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한다고 부모가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니는 모양이야. 그냥 보직을 조정해 주는 건 어때?"
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군단 인사참모에게 그동안 A 병사에 대해 조치했던 경과를 모두 보고했다. 인사참모는 내가 조치한 사항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대대본부로 추가 보직 조정이 가능하면 검토해 보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은 뒤, A 병사를 불렀다.
"A 일병, 혹시 지금 힘든 점이 있니? 너에 관련된 외부 전화를 계속 받고 있다. 혹시 문제가 있다면 말해봐라."
"없습니다. 지금 중대본부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대대본부로 보직을 바꿔달라는 말이 나오는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A 일병을 집무실에서 내보내고, A 일병의 어머님께 전화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저는 A 일병의 대대장입니다. A 일병에 대해 몇 가지 논의드릴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어머니에게 최근 발생했던 일들을 전했다. 어머니는 죄송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A 일병에 대한 문제를 말한 적이 없는데 아마도 애 아빠가 그랬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자꾸 상급자들에게 전화가 오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고, 이런 상황들이 A 일병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어머님도 알겠다고 하셨다.
얼마 동안은 이상한 전화가 오지 않았다. 나는 이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나, 군단 참모장(준장)인데, 너희 대대에 A 일병이 있지? 힘든 것 같은데 왜 보직 조정을 시켜주지 않는 거냐?"
"참모장님, 혹시 제가 이런 동일한 내용의 전화를 상급자로부터 세 번째 받고 있는 사실을 아십니까? 저는 굉장히 지휘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을 육본 감찰실에 보고해도 되겠습니까?"
나의 단호한 태도에 군단 참모장은 당황한 듯했다. 그는 부담을 주기 위해 전화한 것이 아니라 부대 관리에 조언하려고 전화했다는 취지로 말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은 1주일 후에 발생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