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새끼 쥐다!” 텃밭 일을 하던 우리 반 아이 하나가 소리쳤다.
“어머머머” 좁은 텃밭 고랑을 밟으며 뛰어갔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비명을 질렀다. 사람에게 절대 들키지 않은 습하고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숨어 살고 병균이 득실득실 댈 것 같은 생쥐, 그림책에서는 부지런하거나, 귀엽거나, 인자한 동물 친구로도 등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검은 쥐다. 그런 쥐가 이렇게나 작고 귀엽다니! 나는 귀여움에 몸부림을 치며 흥분했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보며 오히려 차분하게 행동했다.
“선생님, 새끼 쥐 처음 봐요?”
‘선생님은 모든 것을 알아야 하지 않나요?’하는 눈빛을 보내며 나에게 물었다. 보기 쉽지 않다는 핑계와 함께 귀여움의 탄성을 질렀다.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손으로 들어 올려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었다. 잠자리도 못 잡는 나는 2학년 우리 반 아이들이 듬직했다.
반대편에 있던 아이들이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있다며 소리쳤다. 나는 또 놀라서 달려갔다. 나도 이런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배추흰나비의 한살이에 관한 과학 교과 내용이 있었는데 도시에서는 실험하지 못하고 사진과 영상으로만 수업을 했었다. 여기는 텃밭에 나가니 널려 있었다. 애벌레라 하면 소름부터 돋는데 텃밭에 있는 이 애벌레는 귀여웠다. ‘아이들이 기르는 배추이니 마음껏 먹고 번데기로도 변해주렴. 나도 보고 싶구나.’ 하며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살아있는 교육의 현장이었다.
5월, ‘호박이 넝쿨째’라는 그림책을 읽고 우리는 호박을 키워보기로 했다. 호박씨를 심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라는 과정과 수확 후 해 먹을 수 있는 음식까지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그림과 글밥이 적절히 있는 그림책이다. 바로 호박죽이 될 것 같은 커다랗고 노란 호박 그림을 보고 아이들은 “맛있겠다!”하고 외쳤다. 우리도 그림책처럼 호박을 키워 호박죽을 만들어 먹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무조건 “네!”다. 텃밭 관리를 도맡아 해 주시는 주무관님께 부탁드려 씨앗을 구해 왔다. 아이들은 모두 6명, 6개의 씨앗과 아이들 이름이 적힌 팻말을 준비하여 밭으로 갔다. 주무관님은 공동 텃밭이 아닌, 반대편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은 곳에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각자 씨앗 하나를 키워야 하기에 아이들은 주인이 된 것처럼 잘 키워보겠노라 진지한 표정이었다. 간격을 넓게 주고 아이들은 소중한 씨앗 하나를 심었다.
“선생님, 팻말은 씨앗이 다칠 것 같은데 쫌 앞으로 띄워서 꽂아도 돼요?”
이렇게 진지하게 심고 있는데 한 명이라도 싹이 나지 않거나 죽을까 불안했다. 나는 그날 이후 출근하자마자 텃밭에 가서 싹이 났는지 확인했다. 2개가 아직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괜히 심자고 했나, 각자 하나씩이 아니라 함께 기르는 거라고 할걸.’ 나는 몇 번을 후회했다. 아이들도 쉬는 시간마다 텃밭에 싹을 확인하고 왔다.
“선생님, 제 것은 싹이 안 나왔어요.”
‘나도 불안하구나.’라고 말할 뻔했다. 다행히도 이틀 후에 모두 싹이 났다. 시골 공기와 기름진 땅, 그리고 우리의 정성과 바람으로. 아이들은 각자 빈 페트병을 준비하여 매일 아침에 물을 주었다. 잎이 나고 꽃이 필 때까지 몇 번 아이들과 그림을 그려 식물 일지도 완성해 보았다. 꽃이 시들 때쯤 꽃받침 아래 통통하고 작은 호박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꽃이 떨어지면서 주먹만 한 호박이 크는 것을 보니 나도 신기했다.
아이들도 나도 호박을 잠시 잊고 지냈다. 어느 날, 주무관님이 교실로 오셨다.
“선생님, 호박 많이 컸어요. 가보세요.”
우리는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던 호박을 잠깐 잊은 것을 미안해하며 텃밭으로 달려 나갔다. 호박은 보이지 않고 넝쿨 더미가 되어 어마어마한 잎과 잡초들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누가 심은 호박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달려가 잎과 줄기 사이에 꼭꼭 숨어있는 호박을 발견했다.
지금부터는 보물 찾기가 되었다. 호박이 모두 연두색이거나 초록색이었다. 분명히 우리는 호박죽을 끓여 먹을 때 쓰는 커다란 노란 호박을 상상하며 심었는데 말이다. 당장 엄마에게 전화해 물어보니 호박을 따지 않고 오래 놔두면 늙은 호박이 된다고 했다. 나는 다시 우리 호박을 보니 된장찌개가 생각이 났다.
“우리 한 개씩 집에 가져가서 엄마 드리자! 호박죽은 못 해 먹겠다.”
‘호박이 넝쿨째’ 수업의 마지막은 호박죽을 먹는 것이다. 며칠 뒤, 나는 늙은 호박을 시장에서 사 왔다. 아이들은 새알을 빚고 나는 호박을 서걱서걱 썰어 달콤한 호박죽을 끓여 먹었다. 우리가 남겨둔 호박이 나중에 정말 늙은 호박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주무관님이 모두 따가셨다고 한다.
그해, 늦가을 은행나무의 잎이 진해 질 무렵 눈송이가 흩날리듯 은행 나뭇잎이 떨어졌다. 단층의 작은 학교 뒤에 우뚝 솟아 있는 은행나무는 마을에서 제일 키가 컸다. 노란 잎이 소복이 나무 아래 쌓였다. 밟으면 사각사각 거리며 발이 푹푹 들어갈 정도이다. 2학년 통합 시간, 우리는 은행나무 아래서 수업을 했다.
일기예보를 직접 해보는 시간이다. 학급 인원이 6명인 우리 반은 우드락을 이용하여 큰 직사각형을 만들고 그 안을 뚫어 텔레비전을 만들었다. 얼굴에 대면 딱 가슴팍까지 왔다. 주변을 매직으로 색칠하고 귀엽게 안테나도 달았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하여 아이들은 조심히 옮겼다. 다음으로 만들 것은 마이크이다. 키친타월 심이 손잡이이고 스티로폼 볼이 마이크 윗부분이다. 마이크의 상징인 격자무늬를 볼에 그리면 그럴싸했다. 각자 구름, 비, 해를 A5에 그림 그리고 미리 준비해 준 대본을 가지고 연습했다. 아이들은 밖에 나갈 생각에 속력을 냈다.
6명이라 카메라맨, 컷 사인을 보내는 사람, 우드락 텔레비전을 들어주는 2명, 기상캐스터 역할을 돌아가면서 했다. 큰 은행나무 아래 있는 나무 테이블과 의자 위에 올라가 일기예보를 했다. 긴장하며 대본을 읽는 아이들은 꽤 진지했다. 늦가을이라 코가 살짝 빨개져도 6명이 모두 일기 예보를 맞힐 때까지 우리는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1학기 말 아이들과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발표했다. 한 아이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한 일기예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다. 몇몇 아이들은 호박 키운 이야기를 했다. 교사인 나에게도 지금까지 마음속에 간직한 추억이 되었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책상에 앉아 있는 10시간보다 밖에 나가 눈으로 귀로, 소리로, 촉감으로 느끼는 세상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아이의 역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