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女子

by 박순영

헤어진 후에도 거의 매일 그의 메시지며 sns로 그의 행적을 찾았는데 막상 그에게서 연락이 오니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은정은 한동안 끊었던 담배 한개비를 반쯤 태우고 그의 메시지를 다시 읽는다.

"나 오늘 입원하는데 보호자는 너로 쓸거다"

영준은 그렇게 딱 한줄만 보내왔다. 헤어진게 언젠데 여태 은정을 보호자로 쓴다니...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설레는걸 감출수가 없다.

하지만 그가 준 상처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달랑 메일 한줄에 그에게 달려갈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는 심장과 눈이 나쁘다. 해서 지난여름 심장시술까지 받았고 눈은 한쪽에 피가 고여 망막에 스며들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헤어진 뒤에도 은정은 그의 이런 부실한 몸이 걱정되었지만 이별이란게 무엇인가, 매일 오가던 메시지며 전화가 단숨에 끊어지는 것이기에 물어볼수도, 알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는 아직 버리지 못한 현관께 그의 구두를 지그시 바라본다.

"그래도 집에 남자 있는티를 내는게"라고 하자 그는 단번에 알아듣고 "내 신발 갖다노라는 거지?"라며 그는 자신의 구두를 갖다 놓았다.

그것을 둘이 헤어진 뒤에도 은정은 버리지 못하고 여태 간직하고 있는것이다.


그의 말대로 자신을 '보호자'로 기입하면 병원에서 한번쯤은 확인차 전화가 올것이고 그때 뭐라고 대답을 하나 , 곰곰이 생각한다. 이번이 어쩌면 서로의 어긋남과 갈등을 봉합할 기회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로부터 진심어린 '사과'한마디 듣지 못했기에 이 양극단의 감정사이에서 그녀는 갈팡거렸다.

그리고, 만약 병원에서 둘이 재회를 하게 되면 뭐라면서 말을 꺼낼까? 그는 절대 손해보지 않는 타입이라 먼저 손을 내미는 시늉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식의 '통보'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에둘러 '이렇게 하겠다'내지는 '이래도 되냐?'는 뜻인데 은정은 딱히 뭐라 대답을 할수가 없다.



그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개인별 컬러링이 아닌 상용 벨 소리여서 단박에 병원전화임을 그녀는 감지한다. 아닌게 아니라 발신번호 밑에 조그맣게 's 대학병원 간호사실'이라고 표기가 돼있다 . 그냥 수신거부를 눌러버리면 된다는 생각과 그와의 화해, 재결합을 바라는 두가지 생각이 다시 그녀를 괴롭혔지만 그녀는 마침내 받는 쪽을 선택한다.

"이은정씨죠? 여기s대학 간호사실인데요, 하영준씨 보호자 되시죠?"라며 상대는 숨도 쉬지 않고 말을 한다.뭐라 답을 하나 은정이 고민하는데 그걸 상대는 긍정의 의미로 해석했는지 "내일 시술 받으실게 있는데 보호자 사인이 필요해요. 오실때 신분증 꼭 갖고 8층 간호사실로 오세요"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헤어진 여자를 '보호자'로 떡하니 기재한 영준도 이해가 안되지만 상대의 신원도 확실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라가라 명령하는 병원측의 행동거지도 수긍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꺼진 전화창을 물끄러미 보던 은정은, 일단은 영준을 보기로 한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더라도 일단 보고 이야기하기로 한다. 그리고는 다음날 입고 갈 옷을 미리 꺼내 놓는다.


마침 집앞에 빈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어, 이것도 운명인가보다,하고 그녀는 택시에 올라 s대학병원으로 가달라고 말한다. 워낙 유명한 병원이라 기사는 따로 네비를 치지도 않고 차를 몰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은정이 화장이 잘 됐나 보려고 가방에서 콤팩트를 꺼내자 기다렸다는듯이 기사가 룸미러로 그녀를 쏘아보며 ' 차 안에서 화장 안됩니다'라고 엄포를 놓는다. 네...하고 그녀는 서둘러 콤팩트를 다시 가방 안에 넣고는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바람도 좀 불고 있어 눈발은 마구잡이로흩날린다. 그녀의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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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는 거의 막힘없이 질주해 30분도 지나지 않아 영준이 입원한 s대학병원 입구에 와서 멈춘다. 카드로 요금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린 은정은 옷 매무새를 다시 확인하고 회전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간다.그리고는 빠르게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앞에 이르러 8층을 힘주어 누른다. 이제 곧 그와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생각하니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엘리베이터는 5층에서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이후는 논스탑으로 1층 은정 앞에서 멈추더니 양쪽문을 활짝 열고 몇사람을 토해낸다. 그들이 다 내리고 은정이 한발을 들이는데 , 이게 맞는걸까,하는 생각이 스친다.. 사과 한마디, 안부 한마디, 제대로 묻지도 않고 병원으로 불려오게 한 영준의 행위가 정당한가, 그녀는 그 지점에서 갈등하다 엘리베이터 안의 한발을 다시 거둔다.



그리고나서 은정은 면회라운지 빈 자리에 가서 살며시 앉는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화장을 고치고 있는걸

깨닫고는 흠칫 놀라 얼른 콤팩트를 닫아 가방에 쑤셔넣는다. 내가 지금 뭟 하고 있는거지? 하고 그녀는 벌떡 일어나 돌아가겠다 결심하고 회전문을 향해 나아가다 다시 멈칫한다. 그리고는 아까의 엘리베이터에 눈을 준다. 기계는 또 일군의 사람들을 내려놓고 있다. 그래, 한번은 보자...이야기라도 들어보자, 이게 그가 취한 화해의 방식일수 있다,는 마음에 그녀는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문을 닫는다.. 기계는 빠르게 논스탑으로 8층에 그녀를 내려놓는다. 저만치 간호사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간호사들의 분주한 업무가 그대로 감지된다.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그쪽으로 옮긴다. 그러자 다가오는 은정을 본 한 간호사가 "어떻게 오셨나요?"라고 묻는다. "보호..."하는데 그녀의 가슴에 둔중한 통증이 인다. 그 바람에 그녀가 가슴께를 움켜쥐자 상대는 "어디 편찮으세요?"라며 물어온다. "아뇨...층을..잘못 왔네요"하고 그녀는 서둘러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간다. "저기요"라며 그녀를 부르며 쫓아오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서 에코가 돼버린다.

엘리베이터는 내려오다 중간에 멈춰 한참을 서있는다. 뒤를 돌아본 은정은 간호사와 서너걸음밖에 거리가 안 나있는걸 보고는 옆의 비상구문을 힘껏 열어젖힌다. 그리고는 계단을 빠르게 뛰어내려간다. 평소에는 계단을 무서워하고 싫어했지만 그날만은 그럴 여지도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1층에 도착해 출입회전문으로 가는데 조금전 흩날리던 눈발이 꽤 굵어져 내리고 있는게 보인다. 순간 그녀의 가슴에서 통증이 사라지는게 느껴진다.

꼭 이런식이 아니어도 다른 방법도 있을거야 그와 재회하는 건...하면서 그녀는 회전문을 열고 나와, 줄 서있는 택시들을 지나쳐 병원 밖으로 나선다. 좀 걷고 싶다...

아마도 이 겨울 끝무렵, 아니면 초봄에..라며 그녀는 그와의 재회시기를 점쳐가며 지하철 역까지 걷기로 한다.



겨울여자.jpg google

�️ 진혜림 - A lover's concerto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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