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와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비롯한 일군의 지식인들에 의해 한국전당시 미군의 민간인 폭격사건이 자주 조명되고 있다. 그 중심축이 되어준 책이 양영제의 르포소설 <두소년>이 아닌가 한다.
이 소설은 1950년 8월 3일, 욕지도에서 이야포를 지나던 피난 화물선을 미군기가 조준사격한 사건이 주를 이룬다. 이사건은 책의 전반에 배치되고 그 이후는 사건 이후 한국전의 이러저러한 비극적 상황들이 디테일하게 그려진다.
작가 양영제는 이 소설을 전작 <여수역>과 마찬가지로 르포형식을 빌어 썼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증언과 녹취, 다양한 문서, 문헌을 참조했다는 뜻이다.
평자 신기철에 따르면, ‘당시 미군은 민간인들이 인민군의 보급품을 수송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를 구분않고 이런 조준사격까지 가능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즉 ,적 수중에 떨어질수 있는 ‘잠재적인 적군’으로 간주한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에 있어 ‘노근리’ 같은 경우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르포소설 ‘두 소년’에서는 경위가 사뭇 다르다. 피아간에 교전도 없고 전선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여수 안도 이야포 해상에 강제정박 당하고 있는 피난선에 미군폭격기가 갑자기 날아와서 정밀 폭격한 것은 뭔가 많이 이상하다. 작가는 당시 이 지역으로 후퇴해 있던 한국 영암경찰과 나주경찰에 주목한다.
소설의 스토리는 이북출신으로 서울에 정착했던 홍씨일가가 전쟁을 피해 집을 떠나 남하하는 형식의 디아스포라diaspora 형식을 따르고 있다. 부모와 5남매 일가족은 이야포 미군의 조준사격으로 결국 형제와 누이만 남게 되고 그 누이역시 전쟁의 후유증과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고 만다.
이렇듯 이 소설은 전쟁으로 인해 한 가족이 어떻게 고향을 등지고 해체되고 부랑아 신세로 전락하는지를 자세히 그리고 있다. 혈육의 시신마저 찾지 못해 그 원혼을 이야포에 묻어야 하는 그 아픔과 고통역시 처연하게 그려지고 있다.
“너 왜 우니?”
“부모를 잃어버려서요”
"어디서?”
“안도에서요”
두형제 홍춘복, 홍춘송은 안도소년 유상태를 만나게 되고 그 10대 소년들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상은 마치 카니발이라도 벌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킬 정도로 중의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작가 양영제는 전작 <여수역>에서처럼 이 작품에서도 특유의 서정성을 극한까지 밀어부친다.
“그림같은 풍경이었다. ..거대한 불씨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아 신비함 마저...하늘 높이서 가늠하듯 솟구치는 불꽃은 바다 넓이를 재보려는 듯 번져나가며 이야포를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작가 양영제는 이렇게 무고하게 죽어간 150여명의 원혼들에게 지금이라도 미국정부는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야포 사건을 베트남전에 빗대어 이야기하는데, 우리의 국익만을 앞세워 타국의 전장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다량 살상한것에 대해 우리 역시 속죄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로 베트남에서는 죽음이 의례를 통해 인정받지 못하면 여기저기도 아닌 세계에 머물게 되는데 그곳을 ‘드엉’이라 부른다. 사건 70여년이 흐른 후에야 조촐한 추도식이나 위령제로 만족해야 하는 이야포의 많은 원혼들은 이야포를 드엉삼아 여전히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들어 ‘과거사정리 위원회’와 일군의 지식인들이 주를 이루어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 정부와 미군에 탄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이작품을 통해 정작 말하고자 하는건 따로 있는듯하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전 발발의 적확한 인식이 아닐까. 한국전 발발과 관련 가장 널리 회자되는건 물론 중국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의 남침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해방이후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하의 남한상황과 이데올로기 내분에 의한 결과, 그리고 미소중 같은 강대국이 자국의 실리를 위해 일으킨 대리전등이 그것이다. 이런 이유들중 작가가 생각하는건 작품초반 유상태가 베트남참전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대목은 아닐까? “쫄따구는 죽으러갔고 하사관은 소 장만하러 갔고 장교는 집 장만 할라고 갔지 미쳤다고 남에 나라 지키러 갔간디? ”
요약하면 남의 전장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 자국의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좀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미국에게 한국전은 당시 오랜 경제공황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였다. 경제불황이 계속되자 미국은 기존의 자유방임적 경제정책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수정자본주의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그 중심에 경제학자 케인즈가 있었다. 미국은 이런 케인즈에게 군복을 입혀 한국전에 파견했다. 그 결과 미국은 실업의 늪에서 벗어나고 이야포 피난화물선에 퍼부은 것과 같은 포탄을 비롯한 군수물자 산업은 다시 활기를 띄고 군수공장들은 구인난에 허덕일 정도로 완전고용이 이루어졌다. 우리가 베트남전으로 경제 몫을 챙긴 것처럼 미국은 한국전으로 또다시 강대국으로 거듭나게 됐다. 거기에 해방 이후 혼란했던 이남의 정치사가 한국전의 또 다른 빌미가 되었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영구분단은 미국의 기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인해 계속 방산이익과 실업인구를 줄일 수 있고 또한 중국 소련에 대비한 최전선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기 때문이다. 또한 계속되는 한국 내 방산비리와의 유착은 한국 국방력의 영구 약화를 가져와 한국의 미군 의존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촉매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강태공의 핫 스팟이 된 안도 이야포에 이런 역사적 비극이 묻혀 있다고 생각하면 헛헛해진다. 그러나 어느날인가, 한국전 발발의 적확한 원인규명과 미국의 민간인 조준사격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져 바다깊이 수장된 원혼들이 해원하는 날이 온다면 , 작가의 바람대로 이야포는 “수면을 바라보는 눈이 어리어리할 정도로 몽환에 빠져드는 ” 그런 여수 앞바다로 진정 거듭날 수 있으리라 조심스레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