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치유의 이야기
이 작품은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상처는 시간조차 파괴하지 못하는 마성을 지닌것이며 인간은 그 안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런던이 아닌 애버튼이라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조차 인간사이의 정이나 배려보다는 서로에 대한 억측과 과거사를 빌미로 한 비아냥이 판치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세상에 ‘진정한 낙원'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TV 토크쇼 진행자로 이름을 날리던 뷰는 교통사고로 일을 그만두고 한적한 시골마을 애버튼으로 내려와 그곳에서 정원사로 일하는 여자 재즈를 만난다. 둘은 15살의 나이차가 나고 살아온 환경이나 내력이 달라서 감히 애정을 꿈꾸기 어렵지만 결국 ‘상처’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연인이 된다.
뷰의 첫결혼은 이기적인 아내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일에서도 사고로 슬럼프에 빠져있는상황이다. 재즈는 모친이 같은 마을의 유부남과 야반도주를 한 뒤 같이 죽음으로서, 그런 엄마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살아가고 있다.
아이러닉한것은, 그런 일이 근엄과 순결을 상징하는 목사 가문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성종교에 대한 작가의 회의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덫들은, 결국 재즈가 뷰를 따라 런던으로 옮겨가게 됨으로서 부분적으로나마 제거해소된다.
이렇듯, ‘상처’를 모티브로 로맨스적 전개를 해나가면서도 소설은 또한 추리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것은, 재즈 엄마에게 남편을 뺏겼던 마들렌이라는 여자의 존재인데 뷰를 처음 본 순간 그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뷰가 사랑하는건 마들렌이 아닌 재즈인 것이다.
마들렌은 재즈에게 계속 모욕적인 메모를 남기고 재즈는 그 메모의 주인공이 자기가 믿었던 마들렌임을 알고는 충격에 빠진다.
이 지점에서 ‘상처’의 문제가 다시 부각되는데,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 해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은 같을 수 없고, 마음의 향방 또한 같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무겁게 끌고 가지 않는다. 화해와 용서,라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마무리 짓고 두 주인공에게 해피엔딩을 안겨줘 ‘라이트노블'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래서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어둡고 탁한것이 아닌, 설레이고 밝은 것이다. 마치 런던을 향해 떠남으로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된 재즈의 심정처럼 .
요약하면 이 소설은 로맨스라는 틀 속에 추리적 요소를 가미해 지루하지 않고, 상처받은 여자 마들렌의 복수 행각에 초점을 맞춰 “The Vengeance affair” 라는 제목 (원제)를 달았지만 그런 비루한 인간사를 극복하는 것 또한 또 다른 의미의 ‘당당한 복수’라는 증폭된 메시지를 깔고 간다.
그리고 재즈의 직업이 정원사라는 것도 주목할만 한데, 여기선 일종의 치료사로 해석될 수 있다. 여타의 아픔과 수치스런 과거로 인해 비틀거리는 현재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군상이 모여있는 애버튼이라는 정원을 떠나지 않고 , 힘들지만 정성들여 손질하고 물과 영양을 주며 희망의 씨앗을 뿌려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층 더 복잡할 런던이라는 대도시에서 훨씬 더 성숙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을 예견케하고 그로서, 상처와 치유라는 테마는 한껏 그 스케일을 넓혀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