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victory >
”격이 맞아야지. 안그래?“
경수가 올때가 됐는데 안 온다는 생각이 든다. 나경은 이런 생각을 하다 매직기를 손님의 귓불에 대고 만다.
“앗 뜨거!”
손님은 움찔하며 소리친다.
“손님 죄송해요”
“대체 정신을 어따 팔길래...”하며 그녀는 다시 의자에 몸을 바짝 누이며 눈을감는다.
석달전, 헤어샵 문을 열자마자 예약도 없이 경수가 들이닥쳤다.
“지금 되죠?”하고는 나경의 대답도 듣지 않고 빈자리 아무데나 앉았다. 사실 그날 일찍부터 퍼머 예약이 잡혀 나경은 그 소릴하려고 했으나 경수는, “넘 짧지않게, 알아서”라고 이미 주문을 했다. 할수없이 나경은 경수의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며 가위질을 시작했다.
그렇게 이발을 마친 경수는 다짜고짜 만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남자손님의 경우 15000을 받는터라 나경이 주저하자, “안받아요?”하고 그가 카운터에 지폘를 내던지고 휭하니 나가버렸다.
헤어일을 하며 경우없고 무시도 많이 당한터지만 그때마다 나경은 상처를 입었다. 서비스업은 그야말로 간, 쓸개 다 빼고 하랬는데 난 그게 안되는구나...하면서 나경은 경수가 던져놓은 만원짜릴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는 일주일후 새벽, 분리수거 배출요일이돼서 나경은 한주동안 받은 택배 상자며 요즘 맛들인 피자박스,콜라 페트를 분리해 놀이터 근처 수거장으로 나갔다.그때 어디선가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경비원과 실랑이하는 남자의 소리가 들려왔다.
“페트랑 플라스틱 분리해야 하잖아요!”
경비의 그말에 남자는 “에이씨....것도 벼슬이라고!” 하면서 방금 플라스틱과 뒤엉켜 버린 페트 서너개를 꺼내 두리번거린다.
그때 나경과 경수의 두눈이 마주쳤다. 아, 저 남자...나한테 적선하듯 만원지폐를 던지고 간....경수가 같은 단지 주민이라는 사실이 나경은 께름직했다.
그리고는 며칠후, 미장원 쉬는 날이라 나경은 신혼 은혜의 집에 가기위해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데 무언가 뒤에서 쿵 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경은 그 순간 뒷목을 부여잡았다. 누군가 뒤에서 차를 박은게 틀림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차에서 내려 뒤로갔다.그러나, 자기 차를 박은 그 차는 이미 주차장 입구를 향해 속력을 내고 있었다...네이비색이라는 것, 번호판은 끝 두자리 53만 보였고 그렇게 나경은 그차를 놓쳤다. 그일로 나경은 목근육이 놀란걸 치료하기 위해 2주간 동네 정형외과를 다녀야했다.
그리고는 그 차주가 경수인걸 알게 된건 그로부터 며칠후 퇴근한 나경이 장을 봐서 터벅터벅 단지로 들어서는 순간 5동 앞에 차를 대려고 안간힘을 쓰는 예의 그 차를 보고나서였다. 운전이 서툰지 네이비색 그 차는 한번에 주차를 하지 못하고 몇 번씩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면서 버벅대고 있었다.
저러다 사고나지 싶어, 나경은 대리주차를 결심하고 그 차로 다가가다 그 차가 바로 자기차를 들이받은 그 차임이 기억났다. 네이비색에 끝자리가 53인걸 확인하는 순간 나경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경수는 웬 여자가 자기 차 옆에서 알짱거린다 여겼는지 비키라고 손짓하며 짜증을 냈다. 나경은 화가 나서 아예 그 차를 가로막아버렸다.
“뭐 하는 짓이예요?”
아직도 주차를 완료시키지 못한 경수가 차에서 내려 나경에게 뚜벅뚜벅 다가왔다.
아, 그 남자....그 남자였어. 돈만원을 미용실에 던지고 나간...
이 남자와는 악연이구나, 싶은 생각이 나경을 스쳤다.
“그러심 안되죠. 지난번 지하 주차장에서..”
라고 하자, 경수는 뜨악해지며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알고도 그런거였어...들이받은걸 알면서..”라며 나경은 소름이 끼쳐왔다. 운전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접촉사고를 내는 일이 종종있길래 ,들이받은걸 모르고 갔으려니, 자기편한대로 상대를 헤아리려 한게 너무도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아, 그때 그...”
그러면서도 경수는 사과를 하지 않는다.
“미안하다, 안 다쳤냐, 물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그땐 좀 바빠서....그래도 보니, 뭐 다친거 같진않고..”
하며 경수는 몸을 돌려 저만치 자기 차로 가려한다.
나경은 순간적으로 경수의 한팔을 나꿔해며 쏘아붙인다.
“사과안해요? 지금이라도 내가 신고하면,”
하자 경수의 갸름한 얼굴에 비굴한 미소가 번져나간다. 할테면 하라는 식이다...
그런 경수와 하룻밤을 같이 보낸 뒤 나경은 아직 잠이 덜깬 경수의 이마 머리칼을 가지런히 해준다.
“더 자...”하며 그가 등을 보이고 돌아눕는다.
알고보니 경수는 바로 옆동 4동에 이사온 새내기 주민이었다. 그동은 모두 12평으로 채워졌고 대부분이 1인가구인 그런 동이었다. 시세보다 저렴해서 월세유동이 많은 그런 동이기도 했다. 아마 경수도 그런 사정으로 입주했으리라 나경은 생각했다.
접촉사고를 낸 경수가 대신 맥주를 대접하겠다는 말에 나경은 자기안의 홧덩어리가 스르륵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았다.경은의 가슴이 떨렸다.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그렇게 단지 바로 바깥에 위치한 치맥집에서 둘은 생맥주와 닭다리를 나눠먹으며 통성명을 했고 뒤늦게 경수는 경은이 얼마전 자기 머리를 커트해준 미용사임을 기억해냈다. 남자 이발비는 15000이라는 말에,“그럼 난 특가로 해주면 되지”하며 슬쩍 나경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사나흘에 한번꼴로 경은 퇴근시간이면 미용실 문을 열고 그가 들어오곤 했다.
경수는 문학, 영화, 미술 평론등, 다양한 장르의 평을 하는 평론가이자 이따금 대학 강의도 나가는 대학강사라고 했다. 아, 나랑은 안되겠구나, 나경은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경수의 접근은 빈번해지고 강렬해졌다. 그렇게 어느날 둘은 나경의 20평 아파트에서 처음 몸을 섞은 것이다..
“나 고작 미용산데 괜찮아?”
경수의 잠이 완전히 깬걸 확인하고 나경은 나직이 물었다. 그러자 경수는 피식웃으며 그녀의 머릴 헝큰다. 바보야...라며....
그리고는 자기가 이혼했고 딸은 전처가 키운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나경은 묵묵히 듣는다.
“근데 자기 언제부터 운전 한거야?”
“얼마 안됐어”
경수가 씩 웃으며 다시 나경을 안으려한다. 지난밤 두 번정도 그에게 안겼던 나경의 몸은 이제 자연스레 그를 받아들인다.
“급해서 그래. 한 1000안될까?”
제법 거센 비가 내리던 밤, 퇴근하는 나경을 기다렸다는 듯이 경수가 어둠속에서 튀어나오며 다급하게 말했다.
“나 기다렸어? 들어오지 그랬어”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딸 아이가 아프대 많이. ”
“...딸은 전처가 키운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전처도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 이따금 단편정도 쓰는 벌이라...”
결국 아이 병원 치료비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경은 하루만 시간을 달라하고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며 곰곰 생각했다. 돈 이야기, 함부로 꺼내는거 아닌데, 저 정도면 어느정도 미래를 약속하자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녀는 그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그날밤 곧바로 돈 1000을 그의 계좌로 이체한다 . 그러자 곧바로 고맙다는 문자가 온다.
그러나 이후로 경수는 미용실을, 그녀의 아파트를 찾지도 않고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 궁금해진 나경이 그의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누르자 낯선 여자가 눈꼽을 떼며 심드렁하게 문을 연다. 누구시죠?
그 낯선 여자의 입에서 얼마전에 세입자가 바뀌었다는 말에 나경은 하마터면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을뻔 한다..
그가 강의를 한다는 그 대학 이름을 얼핏 들은거 같아 나경은 휴일을 택해 그 학교로 향한다. 그리고는 바로 정문에 진입하는데 낯익은 네이비색 경수의 차가 마주 오는게 보인다. 경수도 나경의 차를 알아보았는지 주춤하는 기색이다.
둘은 차를 파킹시키고 교정 한구석에 자판기 커피를 쥔채 나란히 앉는다.
“애가 아프다는거, 진짜였어?”
“무슨 얘기야?”
“왜 나한텐 알리지도 않고 이사간거야? 최소한”
“그까짓 돈 1000, 떼먹을까봐? 걱정마. 갚을테니까..”
“지금 돈 이야기가 아니잖아 ,우리...”
하는데 경수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통화창엔 “미진”이라는 두글자가 선명히 뜬다.
“자기 여자 있었어?”
나경이 불안해서 물어본다. 그러자 경수가 픽 웃으며 짧게, 명료하게 대답한다.
“그럼 내가 너랑 결혼이라도 할까봐서?
나경은 순간 무언가 단단히 꼬였음을 느낀다. 그렇게 수시로 자기 샵을 드나들고 잠자리에서 그리도 강렬하고 깊게 자기를 안던 그런 경수가 더 이상 아니었다.
전화벨은 아직도 울리는데, 경수는 ”미진“이라는 여자와 밀당이라도 하는지 받지를 않는다.
”격이 맞아야지. 안그래?“라며 그가 손에 쥐고 있는 휴대전화를 비웃듯 나경의 코앞에 좌우로 흔들어댄다.
”내 돈은 그럼...“
”똥밟았다 생각해. 미용사들 한달에 돈 1000은 돈도 아니라던데.“ 하고는 그가 마시지도 않은 커피잔을 놓고 일어난다.
”아니지?딸애가 아팠던게?“
”알아서 뭐하려구..“
그는 그렇게 말하며 휴대전화 통화버튼을 누르더니, ”응, 자기?“하며 통화를 시작한다...
그의 모습이 석양에 한점으로 점점 작아져 가는걸 보다 나경은 고개를 떨군다.
학과장 최는 단단히 화가 나서 경수에게 노트북 화면을 보여준다. 경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순간, 믿기지 않는 조횟수와 익명으로 제보된 글이 한자한자 눈에 들어와 박힌다.
”이 대학 미술사학과 이경수강사로부터 돈과 몸을 강탈당하고 결국 버려진 여잡니다“라고 글은 시작되었다. 일반인은 들어오지 못하게 돼있는 게시판을 어떻게 열고 들어왔는지부터가 경수는 궁금했다. 두세줄 읽고는 글쓴이가 나경이라는게 확실해지자 경수의 얼굴에 경련이 일기 시작한다.
”오늘 강의 휴강하고 남은 학기 대체 강사쓰기로 결정했으니 그만 가봐“
학과장은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투로 말을 끝맺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린다. 경수는 무릎까지 꿇었지만 그 어떤 애원도 소용이 없었다.
”삼촌 고마워요...“
퍼머 손님머리에 중화제를 바르고 잠시 틈이 난 사이 나경이 전화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무슨 좋은 일?“ 손님이 헤어잡지를 펼치며 묻는다.
”좀 힘든 일이 있었는데 삼촌이....나 어릴때부터 후원해준 지금은 대학교수인 ...그 삼촌이 해결해줬어요“ 라고 나경이 대답한다. 그리고는 문득 유리문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전에 없이 아름다운 햇살이 비추고 있다. 정오의 거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