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닝커피>

마지막 순간 그녀는 고통없이 이승을 떠날 수 있었으리라

by 박순영


경비원 K가 막 17동 앞을 쓸고 옆동으로 이동하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고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뭐지? 그가 돌아보는 순간, 저만치 여자 하나가 피를 흘리며 보도에 엎드린 자세로 쓰러져있고 그것을 목격했는지 7층 여자가 입을 틀어막은채 충격받은 모습이다. 조금전 비명은 아마도 7층 여자가 그녀의 투신을 목격했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K는 혼비백산해서 투신한, 투신으로 추정되는 그녀 옆으로 간다. 이미 온몸에서 피가 흐르고 K가 그녀의 목에 손을 댔을 땐 아무 반응도 없다. 여자는 죽은 것이다.


“아저씨...빨리...빨리 경찰에..”하던 7층 여자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사체와 K만 그 자리에 남는다. 112? 119?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사건사고 신고 번호란 말인가...

현장을 꼼꼼히 살피던 강력계 형사 민우는 최초 발견자인 7층 여자와 K에게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묻는다. 그리고는 이 둘은 최소한 이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느낌을 받고 11층 2호 집안 수색에 들어간다.

집 내부는 여느집과 다를바없다. 23평 거실은 2.5인 정도가 앉을수 있는 아담한 패브릭 소파가 놓여있고 TV, 레트로 오디오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방 두 개 중 하나를 열자 조금은 흐트러진 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침대정리는 자기도 늘 하지 않는 것이라 그닥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생각하면서도 집안 다른 부분은 깔끔히 정리된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이상하다.


그러고 있는데, 자살인가요?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죽은 그녀 한지원의 여고동창이라는 고은희다. 그녀는 사고 전날 밑반찬을 주러 지원의 집에 들러 하룻밤을 묵었다. 그런데 새벽에 그 사단이 난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해도 한 침대에서 자기는 불편했는지 자기는 작은방 손님용 침대에서 잤노라 대답한다. 만약 이사건이 타살이라면 누구보다 유력한 용의자가 아닐수 없다.

그리고는 지원의 전남편 최성환. 그는 현재 반도체 업체 과정으로 있고 12년전 그의 외도로 지원과 이혼한 이력이 있다. 은희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이혼후에도 이따금 지원을 만나왔다고 한다. 성환, 그는 무슨 이유로 전처를 만나왔을까, 민우는 이런저런 물음표를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리고 죽은 지원의 스마트폰에 ‘남친’이라고 적힌 유철민이 있다. 그는 현재 건축사무실을 운영중이라고 한다.

타살이든 자살이든 서른 중반의 젊은 여자가 죽었을땐 크게 그 원인이 두가지로 나뉜다는걸 오랜 형사경험으로 터득한 민우는 돈, 아니면 남자 문제라고 결론내린다. 그리고는 우선 남자 둘의 사건 당일 알리바이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우선 전남편 성환은 그 시각, 그러니까 그 새벽 자기 아파트 단지 테니스 코트에서 테니스를 친 것이 확인됐다. 그리고 현재 애인 철민은 그녀가 죽던 시간 일때문에 지방 숙소에 있었던것이 증명됐다. 그렇다면 남은건 동창 은희뿐이다. 그러나 그녀가 전날 그집에 간게 지원에게 밑반찬을 주러 간 것이 아닌가. 그런 그녀에게 살인동기나 살의가 있다고 추정하긴 어렵다.

민우는 사무실로 돌아와 깊은 상념에 젖는다. 지원과 관련 된 남자 둘의 행적과 알리바이는 이미 깨끗했고 남은건 동창 고은희뿐인데 결정적으로 그녀에겐 살인 동기라고 할게 없다. 그녀 말에 의하면, 비록 그 말을 100프로 믿는건 아니라 해도, 둘은 여고3년 내내 붙어다녀 ‘껌닥지’ ‘레즈비언’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지원을 상대적으로 나은 형편의 외동인 은희가 포용하고 필요할땐 서포트하는 그런 관계였다는게 주변의 증언이다.

혹시나 해서 민우는 지원의 정신과 치료기록까지 살펴보지만, 그런건 전혀 없다. 물론 자신에게 정신질환이나 정서장애가 있다 해서 모두가 정신과를 찾는건 아니다. 자신만해도 그렇다. 하는일이 강력범죄를 캐내는 일이어서 그런지 악몽에 시달릴때가 많고 좌절감, 우울감이 심하다는걸 스스로도 느끼지만 선뜻 정신과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쉽지 않다. 딱히 정신과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만은 아니다. 과연 상담과 치료약이라는게 어느정도까지 증세를 완환시킬까, 하는 회의가 들어서일 것이다. 의사들은 환자 개개인의 상담내역을 비밀로 부칠 의무가 있다고 하지만, 사람인데 그게 과연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지원은 정신과 치료를 받은 기록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왜, 누구에 의해서 죽은걸까? 민우는 감을 잡으려 애를 쓴다. 그리고는 이혼후에도 계속 지원에게 연락을 해왔다는 성환과 만날 약속을 잡는다. 그의 회사 근처 퇴락한 느낌의 까페에서 둘은 성환의 퇴근이후 자리를 마주한다.

“나를 의심하는건가요?”

성환은 커피를 홀짝이며 상당히 기분 나쁘다는 듯 민우에게 공격적인 어조로 묻는다.

“지금은 모두가 범인일수 있어요”

민우는 이미 절반쯤 비운 커피잔을 한손을 매만지며 대답한다. 그말은 곧, 유력한 용의자 셋중 누구든 범인일수 있다는 것이다.

“내 알리바이는 증명 되지 않았나요?”

성환이 남은 커피를 마저 비우며 말한다.

“최소한 한지원을 뒤에서 밀진 않았습니다.”라며 민우는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고 그것은 오히려 성환을 더 옭죄어온다.




민우와 헤어져 차를 몰고 귀가하던 성환의 기억엔, 자신의 외도가 밝혀지자 스스로 칼로 손목을 그었던 그날의 지원이 떠오른다. 퇴근해보니 그녀는 욕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그 안에서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은 터였다. 순간, 둘의 힘들었던 결혼과정이 떠올랐고 어려운 가정형편과 장애를 가진 남동생을 꼬투리로 잡아 자기집에서 얼마나 지원을 반대했던가가 떠올랐다. 그렇게 한 결혼임에도 자기는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지원을 배반한 것이다. 당시 그녀는 임신 6주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인해 아이는 유산됐고 지원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그리고는 병실에서 정신이 들어 꺼낸 첫마디가 , 우리 이혼해, 였다.

하지만 그말은 형사 민우에게 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전 일인가. 그리고 알리면 자신에 대한 의심만 증폭시키는 일이 될거라고 성환은 생각한다.


죽은 지원의 현재 애인인 철민은 강남에 작은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ceo다. 민우가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자 철민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던일을 멈추고 정중하게 그를 맞는다.

“상심이 크시죠”라는 민우의 의례적 위로인사에 그는 “수고많으십니다”라며 예의바르게 대꾸한다. 철민은 직접 커피를 내려 민우에게 건넨다. 그렇게 둘은 마주 앉아 한시간 여를 이야기한다.

철민은 집짓는 일 외에 인테리어분야까지 맡고 있어 그 일로 지원을 알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딱보니 이혼녀더라구요, 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지원이 그 아파트에 처음 입주해 리모델링을 의뢰한게 둘을 만나게 했고 그렇게 클라이언트로 그녀를 자주 만나면서 그녀에게 호감을 느껴 결국엔 연인 사이가 되었다고 그는 담담히 말한다.

스포티하고 도회적 세련된 매무새가 왠지 듬직하면서도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철민이다. 왜 이런 괜찮은 남자를 두고 그녀는 그런 선택을 했는지 민우는 더더욱 궁금해진다.

“혹시 한지원씨한테 부채라도?”

그말에 철민은, 자기가 알기로는 아파트 융자금이 조금 있었는데 거의 다 갚아 가는 중이었노라 대답한다. 그녀가 직원으로 있던 유치원은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었고 돈과 관련해 딱히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점점 더 그녀의 ‘자살’이라는 선택이 의문시되는 지점에 민우는 봉착한다.

“결혼계획은 있었습니까?”라는 민우의 마지막 질문에 “정식으로 청혼은 안했지만 만약 결혼이란걸 한다면 지원이와 할 생각이었고 그녀도 그 정도 눈치는 챘을 겁니다‘라고 철민은 슬쩍 젖은 눈가를 훔친다. 누가봐도 믿음직한 애인의 풍모였다.



이리 되면 용의자 셋 다 수사선상에서 제외해야 하는걸까, 민우가 고심을 거듭하는데 여고동창 고은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무슨일이시죠? 조금은 성마르게 묻는 민우의 목소리에 그녀가 당황했는지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라고 그녀가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는 그날저녁, 민우는 그녀를 경찰서 근처 까페에서 만난다.

”하실 말씀이란게...?“

”지원인 자살인거죠?“

”지금으로선요...적어도 투신 자체는 스스로 한 것 같습니다. 누가 뒤에서 밀거나 몸싸움을 했다는 증거는 없어서요“

”...요즘 와서 지원이한테 사실 고민이 있었어요. 만나는 사람, 그러니까 철민씨가 요즘 건축일이 불황이라 심심찮게 돈을 요구하는 눈치였어요“

민우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하긴 온 세계가 불황인 시대다. 건축업이라고 무사하겠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그 일로 철민을 다시 만난 민우는 지난번 반듯하던 그 모습과는 정반대의 거친 그의 모습을 대하게 된다.

”그여자가 그래요?“

”...“

”적반하장이라더니...“

”무슨 말씀인가요?“

침을 꿀꺽 삼키며 민우가 진지하게 묻는다.

”그여자예요.. 전남편, 그러니 성환인가, 하는 그 사람이 바람났던 여자가....“

”뭐라구요?“

”절친 남편을 꼬셔놓고 지가 무슨 주제에...“라며 철민은 셔츠소매를 두어번 접어 올린다.

”그럼...그 사실을“

”물론 지원이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원이가 자살시도를 한 뒤 둘은 헤어졌고 지금 최성환 그사람은 다른 여자랑 결혼한걸로 압니다 저는“

”그 사이를 알면서도 어떻게 우정이 유지됐을까요?“

”우정?...글쎄요. 그걸 우정이라고 말해야 할지...그건 아시죠? 여고시절 지원네 형편이 어려워서 은희 그 여자가 이런저런 도움을 줬다는거?“

”네...들어서 압니다만..“

”아마, 그에 대한 보답? 말이 이상하군요. 지원은 남편의 상간녀가 고은희라는걸 알면서도 모른척했습니다. 그리고 나외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최소한 내가 아는 한에서는. 지원이가 이혼하자 은희라는 그여자가 전보다 더 각별히 지원일 챙겨준걸로 알아요. 수시로 밑반찬을 해다주고 필요할땐 돈도 대주고 ..하지만 지원인 그녀의 호의에 진저리를 냈어요. 적어도 내눈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 심정 어떤건지 압니다“

”물론 나도 사업 때문에 몇번 돈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지원이가 그 큰돈을 융통할 여유가 없다는걸 알아서... 그걸 가지고...은희 그여자가 나를 범인으로?“

씩씩대는 철민을 놔두고 건축사무소를 나서는 민우의 마음이 착잡하다.




모두가 그녀를 죽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 절친이 남편을 뺏고 그 악의를 숨기기 위해 위선적 선의를 베풀고 전남편은 계속 치근거리고 현재 애인은 자신의 사업을 핑계로 계속 돈을 요구하고....

그 상황에서 삶에 회의가 안든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리라, 하며 민우는 저만치 세워둔 자기 차로 간다. 시동을 걸다, 문득 그녀의 그날 아침을 상상한다.


지원은 습관대로 모닝커피를 프렌치 머그 가득 옅게 타서 마셨을 것이다 은희가 작은방에서 자는 동안. 그리고는 베란다로 나가 그밑 아득한 높이를 가늠하고 ’성공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는 커피가 반쯤 남은 머그를 베란다 간이 스툴에 내려놓고 그 어떤 미련도, 그 어떤 그리움이나 자책도 없이 한 마리 새가 된 것이다. 즉사로 결론났으니 최소한 마지막 순간 그녀는 고통없이 이승을 떠날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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