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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봄 이야기

by 박순영

이 영화는 뭐라 딱 한두문장으로 요약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일단 제목에서의 '호랑이'가 의미하는 바도 어찌보면 애매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야 할 즈음에 따라붙는 에피소드도 그렇다.

그럼에도 작가를 업으로, 내지는 글쓰기의 체험을 해본 이들에게는 충분한 공감대를 끌어내는 영화라 하겠다.


경유는 예전에 글을 쓰던 작가? 혹은 작가지망생?이었는데 이제는 주거도 일정치 않고 연인에게 버림받은 오갈곳 없는 백수일 뿐이다. 그녀가 그를 버리는 과정이 너무나 잔인하고 교묘해서 경유에게 관객은 감정이입을 할수밖에 없다. 그렇게 버려진 그는 가까운 친구집에서 묵을 생각을 하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아 대리기사를 하면서 근근이 연명을 하는데, 어느날 우연찮게 옛여자 유정의 대리콜이 온다. 그것이 유정의 계산된 밑밥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우연이었는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그렇게 재회한 뒤, 유정은 그에게 다시 접근하고 결국 경유는 그녀와 밤을 지내게 되는데...그리고 그녀가 그를 다시 만난 이유가 밝혀진다. 영화는 여기까지는 무난하게 전개된다.



약간은 컬트적 요소가 가미된 이 멜러드라마는 작가에겐 치명적 오점인 '표절'의 문제와 그 과정, 속내를 드러내보여 그나름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제 아무리 '신춘문예'라는 관문을 통과했어도 일정량의 성과물이 없으면 '도태되고 마는'문단의 혹독한 현실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쫓기듯 글을 써내야 하는 입장에서 과연 관객은 유정의 행위를 질타만 할수 있을까하는 작은 의문부호를 남긴다. 물론 그녀가 선택한 방법이 옳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를 굳이 '성장스토리'로 요약한다면, 연인에게 무참히 버림받고 재회한 옛여자에게 알뜰히 이용당한 경유가 결국엔 정신이 번쩍 나는 '호랑이'에 쫓기다 자살시도를 하는 임산부를 구함으로써 잊고 있던 삶의 돌파구, 자신의 무기인 '글쓰기'로 돌아간다는 것이라 할수 있다. 일련의 시련을 겪으면서 그의 내면은 있는대로 망가지고 세상의 무시와 세상이 던지는 굴욕감에 삶의 가치는 있는대로 추락했지만 결국에는 그런 자신이 두생명 (임산부와 태아)을 구해낸 '대단한 존재감'을 지닌 존재임을 확인하는 순간, 즉, 호랑이로 말미암아 그는 삶의 새로운 현현 epiphany을 체험했다 할수 있다. 호랑이는 이런 의미에서 , 그것도 우리를 탈출한 겨울 호랑이는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는 매개로 해석될수도 있다. 혹독한 계절 ,안온한 우리를 저버리고 뛰쳐나온 그 호랑이는 이렇게 경유에게 진정한 의미의 '봄'을 선사한다. 그렇게 해야만 삶은 지속될수 있음을, 평온을 깨는 지점에서 비로소 도약할수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부분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채 끝난다. 그렇다고 열린 결말로 매듭지음으로써 나머지 부분을 관객의 몫으로 돌리는 방식도 아닌 아마추어리즘이랄까, 조금은 그런 아쉬움을 남긴다. 상업영화라기엔 독립영화적인? 뭐 그런.



호랑이는 그렇다쳐도, 왜 겨울손님이 호랑이보다 무서운가는 '산에서 마주쳤을때 제일 무서운게 사람'

이라는 맥락에서 풀이하면 어떨까? 인간만큼 간악하고 요사스럽고 배은망덕한 존재도 없다. 이별과 재회,모두에서 배반당한 경유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건 어쩌면 호랑이보다도 인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되레 영화속 호랑이는 '더러운 인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경유를 구원해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대상을 이용하고 알뜰하게 착취하고 기만하려 할까? 이것은 인류가 출현한 이래 계속돼온 수백만년, 그 이상된 의문점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인간은 다시 또 인간에게로 향한다. 상처와 배반의 기억을 안고도 뚜벅뚜벅 인간에게로 향하는 것은 존재가 너무나 고독해서, 내지는 삶이 너무도 처연해서는 아닐까?




타이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a tiger in winter>, 한국 2018

감독 이광국

주연 고현정 이진욱

러닝타임 1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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