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때 내 전공은 영어였고 문학을 세부전공으로 해서 나름 영문학사를 한두번은 읽은 셈이다. 그럼에도 문학사보다 이면의 연애담에 더 끌린거같다.
대표적인 예가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예이츠와 모드곤의 이야긴데, 예이츠는 우리에게 <이니스프리의 호도>로 유명한 아일랜드 국민시인이다. 그런 그가, 연극배우인 모드곤에게 반해 사랑의 열병을 앓은 일화는 유명하다. 그녀를 위해 많은 시를 썼고 구애와 청혼도 여러번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결같이 냉담하게 그를 거절하고 밀어내고 자긴 결혼따위는 안할거라고 아예 독신선언, 지금말로 하면 '비혼선언'을 했다. 그러나 예이츠는 미국 순회 강연중 그녀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깊은 절망에 빠졌다고 한다.
참고로 예이츠는 말을 더듬고 언변도 시원찮았다고 한다. 지적인 여배우였던 모드곤이 어쩌면 예이츠의 그런면을 싫어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부언할것은, 예이츠가 그렇다고 평생을 모드곤 하나를 바라보고 산것은 아니다. 평생을 육체적 관계를 계속한 연인이 있었고 뒤늦게 결혼해 자식을 두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예이츠의 마음 가장 깊은곳엔 언제나 모드곤이 있었던 것같다.
"그대가 약속을 어겼기에 다른 여자들을 친구로 삼았지만 ..죽음이 임박하거나 술에 취했을땐 언제나 당신을 봅니다" (예이츠, 굳은 맹세,중)
살아생전엔 그리도 쌀쌀맞게 그를 대한 모드곤도 예이츠의 국장이 치러지는날 자기 아들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고 한다.
w,b. yeats
예술은 고통을 전제로 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예이츠는 비록 그녀를 갖지는 못했어도 그녀를 생각하면서 불멸의 시를 많이 남겼으니 모드곤은 그의 뮤즈로서의 보답은 한셈이다.
그런가하면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새무얼 베케트는 제임스 조이스의 딸과 연애를 하다 그녀를 무참히 버려 그녀는 평생을 실연 후유증으로 정신병동 신세를 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베케트가 '기다림'에 천착한것도 젊은날 자신이 저지른 그 행위에 대한 자책에 기인하는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영영 오지 않는 신을 기다리는 <고도>속 주인공들처럼 '그녀'역시 그렇게 베케트를 기다렸으리라는..
그외에도 여러 연애담이 있는데 이쯤 하기로 하고. 요즘 비혼이니 나홀로족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면서 사랑을 적대시하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물론 비혼에도 여러가지 유형이 있을것이다. 동거까지 하면서도 혼인신고는 하지 않는, 연인관계를 하면서도 따로 살기 등등...아무래도 좋다. 그건 개인의 자유고 선택이니. 그러나 사랑자체를 너무 비하하거나 에너지 낭비로만 여기진 않았음 한다. 에이츠는 비록 모드곤을 얻지는 못했어도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불멸의 연시를 남길수 있었고 베게트 또한 어쩌면 자기가 버린 '그녀'에 대한 회한으로 <고도>를 썼을지 모르지 않은가.
사랑이나 연애감정에 목을 맬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그런거없이 잘살수 있어,라고 단정짓는것도 어리석어보인다. 자연스레 누군가가 좋아지고 그렇게 또 자기가 좋아서 누군가 다가오면 따스히 맞아주는 아량정도는 필요하고 그래야 우리 삶이 조금은 빛을 발할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