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엑셀>

정말 꼭 잡아야 돼!

by 박순영

동석은 머뭇거리다 주머니에서 자그만 케이스를 꺼낸다. 효주는 단번에 그것이 반지임을 알아차리고 긴장한다.

“짜식, 뭘 그렇게 긴장해?” 하면서 동석은 케이스를 열어보인다. 효주의 예상대로 자그만 보석이 박힌 반지가 들어있다.

“결혼하자 우리”

그러나 효주는 뭐라 당장 답할 말이 없다...

“뭐야 무안하게 ”하며 동석은 케이스를 효주쪽으로 밀어놓는다. 효주는 이 반지를 어떻게 하나, 생각에 잠긴다.

“이번엔 한 보름 걸릴거야. 말미 주는거야. 생각해봐 ”하며 그가 테이블 위에 얹혀있는 한손을 살며시 잡는다. 남자의 손인데도 섬세하기 이를데 없다.



동석은 효주가 번역일을 하는 출판사에서 처음 마주쳤다. 동석은 해외파트에서 에이전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출판사에 입사하기 전에 직접 자그맣게 문학 에이전시를 하다 그만 두고 지금 이 출판사 해외파트로 옮겨왔다고 한다.

알고보니 동석은 효주의 대학 선배였다. 그러나 교정에서 마주친 기억은 전혀 없다. 다만,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였다.

번역일로 담당자를 만나러 들어간 편집부에서 처음 동석을 만나 커피 한잔 나눈게 전부였는데 며칠뒤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후배니까 내가 밥 사도 되지?”


그말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류를 효주는 간과하지 않았다. 자기한텐 서진이 있다. 흔들려선 안된다고 효주는 다짐했다. 하지만 동석은 그후로도 끈질기게 만나자고 연락해왔고 결국 둘은 대학캠퍼스에서 만났다.

“야, 학교 많이 변했다. 그치?”하며 새로 증축된 건물들을 보며 동석은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낯설다는 티를 내고 있었다..그렇게 선후배 사이를 가장해 둘은 점점 자주 보게 됐고 그럴수록 서진에게 미안해지는건 어쩔수 없었다.


서진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온다. “나 지금 인천 공장 가야돼. 약속 미루자."하고 효주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전화를 끊는다.

서진은 효주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갔던 인터넷 방송에서 작가와 PD 로 만났다. 둘은 시사를 겸한 음악 방송을 같이 했고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그러다 서진이 퇴사한다는 말이 돌았다.


“어떻게 나한테도 얘기를 안했어?”하며 효주가 뵤루퉁해하자 “나랑 색깔이 안맞아서”라며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 방송은 일종의 보수를 표방했고 한참 젊고 진보를 추구하는 서진에게 맞지 않았으리라. 서진이 그만두면서 효주도 함께 사직했고 번역일을 찾아보았다. 서진은 친구 둘과 함께 벤처를 창업했지만 뜻대로 안돼 폐업하고 지금의 “A”에 입사했다. 마케팅 담당으로.



"A”는 일종의 패션브랜드로 과거에 이름을 날렸다는 S가 대표로 있었다. 그러나 세월의 무상함은 어쩔수 없어 그녀는 세간에서 점점 잊혀져갔고 더 이상 협찬의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간간이 오페라나 뮤지컬에 옷을 선보이긴 했지만 팔리는건 거의 전무하다시피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임금 체불 현상이 발생하고 직원이 줄어들면서 서진은 온갖 잡일을 다 하게 됐다. 그래서 원단 오더에서 생산 공장, 물류까지 거의 혼자 도맡아 하게 되었다.


S는 서진에게 늘 “미안하다”면서 쥐꼬리만한 임금을 줄뿐이었다.

“그 회사 꼭 다녀야 돼?” 답답해하던 효주가 볼멘소리를 하면 서진은 “내가 인수하려고”라고 답했다. S역시 그럴 마음이라고 서진은 추측하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일까? 서진은 자기 회사를 갖고싶어했다.

이러다보니 일주일에 한번 서로 얼굴보기도 힘들어졌다. 그래도 서진은 새벽녘이면 늘 문자를 날려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언젠가부터 효주는 그의 문자를 받아야 잠이 들수 있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살아. 우리 인제 30이야” 하고 경혜가 쥬스를 홀짝인다. 대학 졸업과 함께 일찍 결혼해 벌써 둘째를 임신한 안정된 경혜의 삶에선 벌써 연륜이 묻어나기도 한다.

“나같음 고민할 것도 없겠다. 선택지는 하나네” 하며 은근 서진을 정리하라는 뜻을 내비치는 경혜를 효주는 이해할수 있다.

‘그 언젠가’를 향해 무작정 길도 없는 길을 헤매는 서진보단 안정된 직장에 충분한 호감을 표시하는 동석이 훨씬 낫다는 건 효주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서진을 정리하는 일만 남은걸까, 효주는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문득 생각난 듯. 화장대서랍에서 동석이 준 반지 케이스를 꺼낸다. 내일은 말하리라.


“웬일이야?”하며 모처럼의 휴일이라 늦잠자던 서진이 눈부셔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2평 남짓한 서진의 방. 둘이 함께 방을 구하던 생각이 스쳐 효주는 뭉클해진다. 가진게 없던 서진은 어떻게든 월세가 싼 집을 찾았고 부동산 중개인은 나중엔 짜증을 내기까지 했다. 그런돈으론 서울에선 못산다고. 그러다 중고장터에 매물로 나와있는 이 방을 둘은 찾아냈고 중개인 없이 직접 계약을 한 것이다.

“뭐야, 앉지 않고”

서진이 침대를 정리하면서 ,아침을 준비하는 효주에게 말을 한다. 효주는 장 봐온 식재료를 정성껏 씻어 국을 만들고 나물을 무치고 샐러드를 준비한다. 그리곤 웅 소리를 내는 미니 냉장고를 열어본다.

“야, 반칙이다. 그건 좀” 하며 서진이 냉장고문을 닫는데 효주의 눈에 눈물이 차 오른다. “잘 먹으라고 했잖아”하는데 서진이 뒤에서 그녀를 안아온다. 잘 먹고 있다고...


처음엔 둘이 같이 살기로 했던 이 방.

그러나 효주 부모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고 사실 둘이 살기엔 턱없이 작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서진 혼자 살다가 부모 허락이 떨어지면 좀 넓은 방을 찾아 서로 합치기로 얘기가 돼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날이 올까, 효주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나 밥해주러 온거야?”하며 서진이 효주를 돌려세우며 묻는다. 바보, 왜 울어...울보...하며 서진이 효주의 눈물을 닦아준다.

그러자 효주는 서진은 , 그냥 잠깐 들른거야,라며 차리던 밥상을 마저 차린다.

둘은 아침을 같이 먹으면써도 아무 말도 없다.아니, 말이 필요없다. 서진은 ‘맛있다’를 연발하며 밥 두그릇을 말끔히 비운다.



“너 그러다 동석 선배 놓친다”라며 경혜가 전화로 걱정한다.

보름이라고 했다 이번 출장은. 그 안에 마음을 정해 답을 달라고...

이제 남은건 일주일...

효주도 마음이 급해진다. 내일은 어떻게든 서진에게 이야기하리라,다짐한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고 효주는 시간부터 확인한다. 밤 11시가 넘어있다. 왠지 효주는 불안하다.

예상대로 전화는 K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걸려온 전화다.

“민서진씨 보호자 되십니까?”


효주는 택시를 잡아타고 응급실로 향한다. 거스름돈도 마다하고 안으로 뛰어든다. 저만치, 서진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보인다.

“보호자 대라는데 너밖에 없잖아. 서울엔”

그말에 효주는 통곡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천만 다행이야. 기계에 발이라도 끼었음 나 장애인 될뻔”

“그만”하며 효주가 손으로 그의 입을 막는다.

“며칠 입원하고 통원치료하래. 다행 아니냐?”

언제 이 남자한테 그 얘기를 할수 있을까, 효주는 침상에 고개를 박고 울먹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다쳐 누워있는 사람한테 어떻게 ‘이별’을 이야기한단 말인가.

동석으로부터 국제전화가 걸려온다. 동석은 별다른 말 대신 , 잘 지내냐고 묻는다. 그가 듣고싶은 말은 그게 아니라는걸 알기에 효주는 마음이 불편하다. 대강 전화를 마무리하고 서랍에서 다시 그 반지를 꺼내보인다. 단순히 환경이 안정됐다는 이유만으로 동석에게 끌리는게 아닌 이상 이 사람을 택해도 좋으리라, 그녀는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날, 효주는 서진의 병실을 찾는다. 그곳은 6인용이고 저마다 몸 여기저기 붕대를 두르고 있는 환자들로 가득하다. 서진은 저만치 안쪽에 누워있다.

“모레 퇴원하려고”

“그래도 돼? 의사가 된대?”

“일이 많아” 하며 서진이 한숨을 내쉰다

약해져선 안된다는 생각을 효주는 한다.. 그리고는 “할말있어” 하고 운을 뗀다.

“왜 이렇게 심각해?” 하자 효주는 또다시 눈물이 그렁하다...

그순간 전화 진동음이 들린다.

누구지? 하며 서진이 자기 전화를 확인한다. 회사네, 하며 통화버튼을 누른다. 잠시 대화를 한 뒤 그가 침대에서 내려오려 한다

“뭔데? 어딘데?” 효주가 묻는다.

“지금 인천 공장에 문제가 좀 생겼대”하며 서진은 서둘러 사복으로 환복을 한다.

“ 이 몸으로? 지금 인천간다고?”

“그럼 어떡해 사람이 없는데”하며 서진이 서두른다.어느새 효주도 그를 거들고 둘은 간호사실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루만 외출하기로 한다. 그렇게 둘은 병원 주차장에 주차돼있는 서진의 낡은 차로 서둘러 간다. 그래도 왼발인게 다행이네? 이쪽으로 페달은 밟잖아, 하며 서진이 오른다릴 들어보인다 . 바보, 라며 효주는 낮게 중얼거린다.



서진과 효주는 앞자리에 나란히 탄다. 그리고 서진이 시동을 걸며 덧붙인다 , 꼭 잡으라고. 내달릴거라고.

효주는 말해야 한다 생각한다. 차가 출발하기 전에...그러나 그말은 또다시 발화 되지 못한채 효주 내부 깊숙이 가라앉는다.



둘은 어느새 경인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웬일이야 뻥 뚫렸네, 라며 서진이 효주의 한손을 잡아온다. 효주는 그 손을 빼낸다. 그러자 서진이 물끄러미 효주를 쳐다본다.

“나 실은...”

“응. 얘기해”

“사실은...”

그러나 효주는 차마 말을 끝내지 못한다. 효주는 잠시 조수석 창을 열고 바깥 공기를 흡입한다 .그리고 숨 을 고른다. 됐다,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리고는 서진이 정면을 응시하는 동안을 틈타 동석에게 문자를 보낸다. 안되겠다. 미안하다고.

그녀는 서진을 타박한다. 좀 천천히 달리라고.


그러자 서진이 애틋하게 키스를 해온다. 효주는 그의 입술이 떨린다는 걸 느낀다. 고맙다, 하는 서진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가득 찼다. 효주는 미안해 견딜수가 없다.

“자, 정말 꼭 잡아야 돼”“하곤 서진은 엑셀레이터를 더 힘껏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