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스타탄생>

그럼 우리 사랑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by 박순영

목요일 저녁 6시로 잡힌 고교동창회에 정민은 나가고 싶지 않았다.족히 스무명은 된다는 모임에 나가 자기가 백수라는 걸 떠벌린다는게 창피하기도 하고 건성으로 주고받는 대화의 피로감 또한 달갑지 않기 때문이었다. 단체문자방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여태 놔둔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그러나 모임 한시간전 다시금 문자가 온다. 안오면 죽인다고. 정민은 고민 끝에 대충 차려입고 지하철로 향한다. 러시아워라 차안은 그야말로 복마전을 연상시켰다. 3년간 타던 경차를 처분한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연예 기획사에 들어가자 우선 운전부터 하라고 채근해 무리해서 중고매장에서 사긴했지만 그래도 아주 못탈정도는 아니었고 정민과 함께 전국을 누빈 정이 들어 나중엔 분신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기획사가 부도로 넘어가면서 정민은 밀린 월급과 퇴직금을 모두 떼이고 당장의 생활비가 없어 그 ‘애마’를 팔아야했다...

그렇게 도착한 인사동 골목길의 전통잣집겸 호프집엔 오랜만의 얼굴들이 모여있다. 이름들은 다 기억이 안나도 얼굴은 크게 변하지 않은탓일까. 기수, 형민, 경은, 미정...정민이 들어서자 동창들은 못만난 10여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단박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점이 정민은 고맙긴했다. 이래서 어릴적 친구를 찾나보다, 하며 정민은 기수 와 경은 사이에 자리잡았다.


“너 차 안갖고 왔지?”하며 기수가 정민의 대답도 듣지않고 추가로 호프한잔을 주문한다. 의례적 안부인사가 오가다 정민이 현재 백수,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래서 안나오고 싶었다고 정민은 생각한다.

그걸 눈치챈 경은이, 그래도 인맥은 생긴거잖아,하며 정민의 팔을 툭 친다. 친분...외주제작사 기획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나름 이런저런 인맥을 쌓으면 쌓았다고 할수도 있겠지, 생각한다 정민은.

그날 동창 모임은 예상대로 스무명 남짓이 모여 온통 정신이 없었고 나중엔 죄다들 만취해 제대로 집에 가기나 갔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렇게 정민도 불콰하게 술이 올라 자취방에 들어서자 전화 문자 알림이 들려온다. 누구지? 하고 전화를 여는 순간 “잘 들어갔니?”하며 경은이 날린 짧은 문자가 눈에 들어온다.


서경은. 그녀는 늘 남학생들에 둘러싸여 있던 보통 이상의 외모를 가졌던 아이다. 지금 20대 후반에 들어서도 그 얼굴은 여전했다. 조금 나이가 든 티는 났지만 여전히 이쁘다, 고 할수 있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몸매는 마른 듯 육감적이어서 묘하게 섹시하기도 했다. 그런 경은을 정민은 사춘기에 좋아했다. 그러나 경쟁자가 너무 많았고 경은도 모르진 않았겠지만 정민은 좋아한다, 말한번 못해보고 졸업을 했고 각자의 길로 간 것이다.

“잘들어왔어”라고 짤막하게 답문을 보내자 곧바로 또다시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일좀 볼래?”내일?무슨 일일까, 하면서도 그녀를 개인적으로 만난다는 설레임에 정민은 약속을 잡는다.

경은은 자기 프로필이라며 봉투하나를 정민에게 내민다.

“이거 내 이력서랑 사진들”하며 슬쩍 정민앞으로 밀어넣는다. 무슨 이력서? 하고 내용물을 꺼내보던 정민은 오늘 경은이 보자고 한 이유를 단박에 알아차린다.

“너 알지? 나 예전에 연극했던거?”

하고 경은은 알지?를 연발한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정민은 꾹 참고 경은은 그것좀 아는 사람한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러려고 만나자고 한거야?”정민이 불쾌한 얼굴을 하자 경은은 발끈하며 “싫음 관두든가”하고 다시 봉투를 집어든다. 정민은 어이가 없다. 아니, 그녀의 속내를 너무나 잘 알기에 화가 난다. 비록 어릴때지만 정민의 마음을 읽었을 그녀 아닌가...

“줘봐” 하고 정민은 그 봉투를 다시 가져온다. 그러면서 혁기를 떠올린다. 혁기는 종편 드라마 PD였다.

“내가 오늘 낸다?”하며 경은은 이것저것 시켜댄다. 어쩌다 백수가 됐어? 하며 놀리듯 그녀가 물어온다. 회사가 망했지 뭐, 하자 이바닥이 다 불안해, 그지? 한다. 순간 경은이 피곤하다고 정민은 생각한다.

이틀후 정민은 바쁘다는 혁기를 설득해 가까스로 약속을 잡는다. 정민이 사정을 이야기하고 혁기에게 경은의 프로필을 내밀자 혁기가 픽 웃는다. 이미 익숙한 일이라는 듯. 정민은 고교동창인데 이쪽일을 꼭 하고 싶어하며 학교때 연극도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실물은 정말 이쁘다고. 혁기의 미소가 묘하게 변하면서 경은의 사진에 눈이 간다. 이쁘네...근데 나이가 좀...하더니 생각해보겠다며,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를 뜬다. 정민은 이내 후회한다. 다시 이 업계일을 하게 된다면 꼭 필요한 인맥이라면 인맥인 사람한테 결례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축 처져 집에 돌아온 정민은 어찌 알았는지 그순간 경은의 문자를 받게 된다. 전해줬냐고. 전했다는 짧은 답문을 보낸뒤 정민은 전화 전원을 끈다. 그리고는 오지 않는 잠을 청해 뒤척이며 밤을 새운다.

혁기는 그래도 답은 줘야겠다 싶어 연락했다며, 다음 기회에 한번 보죠,라며 거절 의사를 전화로 이야기한다. 정민은 예상했던 답이었기에 그닥 실망도 하지 않는다.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기에. 그 이야기를 문자로 경은에게 알리자 곧바로 경은이 답을 해온다. 지금 좀 보자고.

경은은 짙은 스모키 메이컵을 하고 블랙 원피스 차림으로 먼저 나와있다. 경은이 마주앉자, 고생했다, 하며 보조개를 파며 웃어보인다. 그순간, 이 아이 정말 이쁘다,라는 생각이 정민을 스친다. 너 나 좋아했지? 하며 경은은 주문한 레몬차를 홀짝인다. 알았어? 정민이 묻자, 경은은 ,그걸 모르겠어? 그렇게 티를 냈는데? 하며 다시 웃는다. 너 다 티가 났어, 하며 그때를 회상하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이거 하면서 이번에는 사진 몇장을 내민다. 정민은 짜증이 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는다. 이거 큰돈들여 다시 찍은거, 하며 경은은, 좀 부탁해,를 덧붙인다. 더 이상 보여줄 데가 없다고 하자 경은은, 그럼 너가져,라고 한다. 그리고는 저녁을 사겠다고 한다.

경은과 저녁을 먹고난 뒤 정민이 슬쩍 물어본다. 남자 있냐고. 그러자 경은은 단번에 아니,라고 대답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마음이 좀 풀어진 정민은 그럼, 우리 만날까? 하고 그녀의 의향을 묻는다. 해서 둘은 이제 ‘데이트’가 될 다음 만남을 약속한다. 그리고는 헤어져 집에 돌아온 정민은 인터넷 검색을 하다 예전 잠깐 밥을 같이 먹은적이 있던 영화조감독 동우가 감독으로 데뷔한 기사를 읽는다. SF와 미스터리가 결합된 멜러라 나름 반향을 일으킬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경은이 생각난다.


어렵게 동우를 만난 정민은 그녀의 이력서와 새로 찍은 사진들을 펼쳐보인다. 그러자 동우는 마지못해 그것들을 보는 척한다 . 친군데요, 하자 동우는는 이쁘네요. 근데 나이가...하면서 사진들을 가까이 들여다본다. 나이가 좀 있네? 라고 말한다. ‘비싼돈’들여 촬영한거라고 경은은 말했지만 나이는 숨길수 없는 건가보다, 정민은 생각한다. 연락할게요,하고 동우는 서둘러 자리를 떠난다. 순간 정민은 지인 둘을 잃었다 생각한다. 혁기와 동우. 하지만 경은만 잘된다면, 하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렇게 다시 만난 경은은 정민으로부터 동우의 이야기를 듣고 화색이 돈다. 쓸데없는 짓했네, 라면서도 여간 좋은게 아닌듯하다. 그날, 둘은 심야 영화를 보았고 경은이 먼저 정민의 손을 잡아왔다. 그리고는 속삭였다. 우리 여행이라도 갈까?


둘은 그렇게 차를 빌려 동해로 향한다. 서해와는 확연히 다른 동해 파도..이걸 보고싶었어,라며 경은은 감탄한다. 그러면서 운전중인 정민의 볼에 살며시 입을 맞춘다. 나도 너 좋았거든.근데 니가 대쉬를 안하니까 내가 뭘 어쩔수가 없었어,라고 속삭인다. 둘은 그날밤 모텔엥서 함께 밤을 보낸다. 돌아오는 길에 경은이 말한거 같다. 사랑한다,고




그러나 그날 이후 경은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화를 걸면 전원은 늘 꺼져있고 문자를 해도 답이 없다. 정민은 슬슬 불안해진다. 무슨일이라도 생긴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경은의 블로그를 발견하게 된다.

한번도 자기가 인터넷에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한적 없는 경은이었다. 그게 아니어도 글과 맞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러나 경은의 글은 감칠맛이 났고 그나름의 묘한 매력이 있었다. 여타 블로그와는 구별되게 경은은 이따금 단편 소설도 올리고 있었다. 의외라는 생각에 정민은 최근 소설 <스타탄생>을 읽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다.


10여년만에 만난 고교통창에서 A와 B의 이야기였는데 실명만 쓰지 않았을뿐 자기 둘의 그간의 이야기를 그대로 쓴 것이다. 그 순간, 얼마전 케이블에서 보았던 영화 한편이 정민을 스쳐간다. 글 소재가 바닥난 한 여자가 같은 작가인 대학 선배를 유혹해 그의 글을 도용한다는,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그럼 경은이...

글을 쓰기 위해. 이미 오래전에 단념한 배우에 대한 가짜 열망을 내세워 정민을 유혹하고 기망하고 그의 관계를 죄다 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그걸 한편의 소설로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는 각주가 달려있다. “이 이야기는 곧 단막극으로 만들어질 예정입니다”라고.


정민은 온몸에 경련이 이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댓글을 남긴다. “그럼 우리 사랑은 어떻게 되는거냐"고.

그리곤 오지 않은 잠을 또다시 청한다. 그리곤 새벽에 답글을 확인하러 블로그에 들어간다. 내 글 읽었구나. 괜찮지? 이번에 원작료받음 술살게,라며 나 어쩜 영화 쓸지도 몰라. 니가 내 프로필 건네준 이동우감독한테 원고 보냈는데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더라,나 기억하든데?


정민은 그 순간 눈에 들어온 자명종을 냅다 집어던진다. 3년간 기획일을 하며 어지간히 사람을 겪었다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어서 손에 닿는대로 그는 집어던진다. 그러다 조그만 벽거울이 쨍, 소리를 내며 깨진다.거기에 정민이 자기 이마를 갖다대자 거울면을 타고 정민의 피가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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