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퍼스널 메시지>

당신을 사랑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by 박순영


“강인혜씨?”

승강기 고장으로 비상구 계단을 허겁지겁 올라가던 인혜는 위에서 내려오던 정민과 마주친다. 인혜는 그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려한다. 하지만 정민은 인혜의 팔을 잡는다.

“어떻게 된거야? 어딨었던 거예요?”

인혜는 그 팔을 뿌리치고 걸음을 재촉해 8층 비상구밖으로 빠져나간다.


“아니 이렇게갑자기 그만두면..”

2년전 정민은 마지막 원고라며 내미는 인혜에게 쓴소릴 했다. 학교후배라며 대학 선배 윤.의 소개로 6개월 남짓 정민의 라디오 음악 프로에 원고를 쓰던 인혜가 돌연 그만 두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우리한테도 시간을 줘야지”

정민의 당시 프로엔 작가가 셋이나 됐지만 정민은 인혜의 원고만 내보냈다 . 그만큼 인혜를 편애했던 정민의 마음을 알기에 인혜는 더더욱 원고에 공을 들였다. 그렇게 인혜는 방송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평생 라디오작가를 하면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민이 어느날 밤샘 녹화를 끝내고 바래다주겠다며 인혜를 조수석에 태운 뒤로 인혜는 그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인혜씨는 시집 안가요?”

정민은 인혜가 사는 합정동으로 길을 꺾으며 물어왔다.

“할말이...할말이 있어요”

“해봐요..설마 이혼녀는 아닐테고”

인혜는 잠시 숨을 고른뒤 대답한다.

“나 이혼녀 맞아요”

그말에 정민이 잠시 차를 세운다.

“정말이예요?”

“실은 나 소개시켜준 그 사람이...”

“윤선배? 그럼...”

“내 전남편”


그말에 정민은 허탈하게 웃는다. 단순히 아는 후배라고 소개시킨게 윤.의 전처였다니...

인혜와 윤은 결혼 2년을 못채우고 이혼절차를 밟았다 . 누군가 물어오면 그냥 성격차라고만 대답했다.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고 인혜쪽에서 위자료를 요구한것도 아니고 해서 둘의 이혼은 싱거울만큼 금방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반년쯤 흐른 뒤 윤.이 연락을 해왔고 곧 재혼한다는 소식이었다. 그얘기를 들으면서도 인혜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그저 촉하한다는 얘기만 했다. 진심이었다.

인혜가 윤.의 전처였다는 말을 들은 정민은 그날 이후로 그녀를 서먹하게 대했고 가끔은 원고 트집도 잡았다. 인혜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있는데 지인 하나가 출판사를 차렸다며 일할 의향을 물어온 것이다. 인혜는 거의 고민도 않은채 그 일을 하겠다고 했고 정민에게 사직의사를 밝힌 것이다. 정민은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 이따위로 사회생활 하는 거 아니라며 핀잔을 주고 돌아섰다.


그날 방송국을 나오면서 인혜는 전화번호 부터 바꿨다. 그리고는 기존에 쓰던 이메일 계정도 없애고 그렇게 함으로써 방송과는 연을 끊었다고 생각했다. 짧지만 매혹적이었던 6개월의 시간이었노라, 언젠가 돌아볼거라며 그렇게 회전문을 나섰다.그게 벌써 2년전이었다.

인혜가 녹음을 마치고 나오는데 저만치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는 정민이 눈에 들어온다. 정민은 아직도 화가 나 있다.

“어디가서 애기좀 해요” 하며 정민이 인혜의 한팔을 끈다.

그렇게 둘은 지하 까페에 마주앉게 된다. 그러나 정민은 물끄러미 인혜만 쳐다볼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결혼은 했어요?”

정민이 반쯤 마신 물컵을 쥐며 물어온다.

“애도 있어요. 우리 나이로 두 살”

“아 그럼...그때..”

결혼때문이었다고 인혜는 대답한다.. 더 이상 정민과 나눌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럼, 하고 일어나려 하자, 정민이 “우리 이제 편하게 지내요” 하고 답을 기대하는 시선을 던져온다.

윤.의 전처였다는 말을 듣던 순간 정민의 낭패감을 인혜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서 인혜는 정민의 말에 뭐라 대꾸하지 않고 까페를 먼저 나선다.


방송을 그만 둔 뒤 인혜는 지인의 출판사를 1년정도 다니다 회사가 폐업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이런저런 잡일을 하며 지냈다. 그때마다 전남편 윤.은 도우려했지만 인혜는 그때마다 거절하고 급기야 윤.의 번호를 차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봐야 이제 서른, 얼마든지 혼자 일어설 수 있다고 판단하고 딴엔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사회는 젊은 이혼녀에게 그리 녹록치 않았다.

이력서를 내밀면 으레 물어오는 , 결혼은 하셨나요? 라는 질문에 인혜는 처음엔 당당히 이혼했다고 대답했지만, 그렇게 해서 득이 될게 없다는걸 인혜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은 인혜에겐 사회의 비정함과 냉담함만을 처절히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그러다 두어달 일한 학원에서 동료 강사 황.과 잠깐 연애감정에 휘말린적도 있지만 인혜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헤어질 관계임을. 그래서 그녀는 학원을 그만두고 나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난 늘 남자문제로 일을 잃는구나, 하고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2년만에 아나운서이자 대학동창인 란. 이 연락을 해온 것이다. 방송쪽은 다 끊어졌다 생각했기에 란.의 연락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기집애, 번호 바꾸면 내가 너 못찾어?”

란.은 오랜만에 만나 눈부터 흘기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어머니,라고 란.은 대답했다. 란.은 인혜의 본가 전화번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만날 인연은 꼭 만나게 돼있는거 몰라?” 란.은 다시 눈을 흘긴다. 그러면서 너 놀고 있는거 다 안다며 자기가 들어가는 자동차 관련 프로그램 작가를 제안했다.

“나 차 모르는데?”

“인터넷 뒤져서 쓰는거지”





나이 서른이 되도록 운전할 생각을 안하고 있었던 자신이 순간 한심하다는 생각을 인혜는 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란.과 정민이 같은 방송사라는 사실이었다. 란.의 작가일을 하게 되면 정민과 부딪치는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홰 인혜는 거절했다. 하지만 란.도 끈질겼고 그래서 2년만에 다시 방송사를 찾게 된 것이다.

녹음을 마치고 나니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란.은 시보를 해야 한다며 보도국으로 뛰어간다. 부스를 정리하고 뒤따라 나온 인혜는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구내식당에서 먹기로 하고 승강기에 올라탄다 . 그리고는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일찍 점심을 끝내고 나오던 정민과 다시 마주친다. 정민은 애써 웃어보인다. 맛있게 들어요, 라며 그가 지나가며 한마디 던진다. 우린 정말 편해질수 있을까...

2년전 정민이 인혜의 원룸까지 바래다줄때 인혜는 이젠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그러자 정민은 매일도 할수 있다,며 웃어보였다. 최소한, 인혜가 윤.의 전처라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정민은 호감을 보인 것이다..그 생각을 하며 인혜는 꾸역꾸역 점심을 먹다 급기야 체하게 되고 퇴근길에 근처 약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약국에서 드링크제를 마시던 정민과 다시 맞닥뜨린다. 우리 자주 보네, 하고는 정민은 엷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정민씨 약혼했어. 몰랐니?”

란.은 복도에서 커피를 나눠 마시며 정민의 약혼소식을 알린다. 한달쯤 됐지? 교양국 작가랑...그랬구나,하고 인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민은 자신을 결혼했다고 알고 있고 그런 정민에게도 여자가 있으니 더 이상 서로 모호한 감정놀이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애긴 잘 크구?” 인혜는 란.의 딸에 대해 묻는다. 그렇지 뭐....넘 이뻐... 너두 얼른 가서 하나 낳아, 하다가 란.이 누군가에게 눈인사를 한다. 누구? 하며 돌아보던 인혜의 눈에 정민이 들어온다. 결혼 안했구나, 라고 정민은 알아차린 눈치다.



란.은 바쁘다며 자리를 서둘러 떠나고 그렇게 복도엔 정민과 인혜만 남게 된다.

“왜 그랬어요? 결혼도 안해놓고”

“약혼, 축하드려요”

“내 말에 대답부터 해요”

“제가 좀 바빠요...”하고 돌아서는데, 정민은 2년전 왜 그렇게 떠났는지를 다시 물어온다. 인혜는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복도를 서둘러 나간다.

그리고 그날밤, 인혜는 집앞이라며 나오라는 정민의 전화를 받게 된다. 인혜는 망설임 끝에 나간다. 정민은 차에 기대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그때 했나요? 정민이 물어온다. 인혜는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럼 왜...라며 답답하다는 듯이 정민이 다시 묻는다. 인혜는 그 자리가 거북스럽다.

"괜히 나때문에..불편했잖아요 그때"

그러자 정민은 말뜻을 알아차린 눈치다.

"화가 났어요....당신이 다른 남자랑 살았었다는 사실이...다른 놈이 당신을 안았을거라는게. 그래서 좀 당신한테 고약하게 군건데..."

인혜는 차마 더 듣지 못하고 돌아선다. 그 순간 정민이 뒤에서 안아온다. 꼭 말로 해야 아냐며. 너에 대한 마음은 달라진게 아니었다고. 그제서야 인혜는 돌아서서 정민의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고 말한다. 확신이 없었다고. 정민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고...그러자 정민의 얼굴이 그녀에게로 다가온다. 비올거 같다,고 인혜가 말하지만 정민은 아랑곳없이 인혜에게 입맞춤을 해온다.


“너 못들었어? 정민씨 파혼했대” 일주일후 녹음을 마치고 나오던 란.은 인혜에게 그렇게 말한다. 결혼날짜까지 다 잡아놨다더니 뭐 그래, 하며 란.이 바삐 부스를 나간다. pd조.가 뒷정리를 부탁하며 먼저 부스를 나간 뒤 인혜는 창밖의 강물에 시선을 던진다. 교양국 작가라는 그녀에겐 미안하게 됐지만 정민이 현명했다고 인혜는 생각한다. 잘해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덜컥 결혼까지 갔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최소한 정민만은 피할수 있게 된 것이다.

부스를 정리하면서 인혜는 정민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마음 먹는다. 맘놓고 당신을 사랑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그 문자는 세상에서 가장 퍼스널한 메시지가 돼서 정민의 전화에 날아가 안착한다.


Michel Berger - Message personnel (Clip officiel)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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