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통속하거늘...

by 박순영

나의 사춘기는 라디오 심야프로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음악프로를 즐겨 들었고 지금 나의 대중음악지식이란 그당시 접했던 팝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들이 전부다.


책을 보다가도 tv를 보다가도 내가 듣는 프로가 시작될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주파수를 맞추고 오프닝 음악이 흐르길 기다렸다. 그렇게 두시간동안 나는 상상여행을 한 셈인데, 팝을 들을때는 퇴락한 브루클린 어딘가를, 샹송이 흘러나오면 파리의 뒷골목을 떠돌았다.


당시엔 엽서로 신청곡을 받는게 다반사였고 나는 거의 매일 엽서를 써서 보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단골팬으로 당극해 자잘한 선물도 자주 타곤 했는데 해당 프로의 로고가 새겨진 펜류가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나를 따라하던 한 친구는 통크게 자전거를 타내서 한동안 나는 질투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연말이면 명동 어디쯤에서 '예쁜 엽서 전시전'이라는게 열려 수천 수만장의 청취자 엽서가 전시되고 그중 이쁜 엽서에는 제법 푸짐한 상금과 상품도 주어졌다. 물론 나는 한번도 타본적이 없지만..그 전시회가 열릴때면 친구들을 '인솔'하고 개선장군이라도 되는양 명동으로 향하곤했다.


그때, 난 평생 들을 음악을 다 들은 셈이고 그것은 대학시절까지 이어져 미팅 상대자에게 음악얘기만 줄창 해대 질리게 만든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그리도 음악에 미쳐 돌아가자 부모님은 무리해서 m오디오 세트까지 사주셨다. 우리 형편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그 명품을...그렇게 나의 사춘기는 조금은 호사스럽게 흘러갔고 지금의 나의 '허세'도 어쩌면 그것에 기인하는걸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명품 오디오가 어딨는조차 모른다. 버렸는지 창고에 처박았는지...

시간과 함께 모든건 변질됐고 퇴색됐다. 나의 음악에 대한 열정도 물론 사그라들었고 그 자리를 쓰레기같은 삶의 편린들이 채웠다.



쓰레기,란 말이 좀 심하다면 '통속'정도로 해둘까? 그래서 난 박인환의 그 구절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통속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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