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초조한 마음>에 나타난 '연민'

전쟁은 내게 도피처이자 구원이었다.

by 박순영

이 작품은 인간의 감정중 가장 미묘한 ‘연민’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연민의 정의는 '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또는 상대의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감정'이다. 츠바이크는 이 연민을 두가지로 나누는데,

'연민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그중 하나는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으로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며, 함께 고통을 나누는 대신 남의 고통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한다.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 연민으로, 이것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라고 적고 있다.


이렇듯 ‘연민’백과사전격인 이 작품은 연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행해지는 인간의 나약함 ,위선을 극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1881-1942) 오스트리아 유대계 가문에서 태어나 빈에서 수준높은 교육과 예술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후 시인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뒤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당대 지성,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다. 작가 로맹 롤랑,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그문트 프로이트등과 친교를 맺다가 1차 대전의 발발로 자신이 그토록 자부심을 느낀 유럽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는 여러곳을 떠돌다 브라질에서 두번째 아내와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광기와 우연의 역사> <어제의 세계>그리고 유일한 장편 소설인 이 <초조한 마음>을 들수 있다. 그 외에도 그는 수많은 소설과 평전, 시, 희곡등 을 남겼고 사후 다수 영화화되었다.


<초조한 마음>은 츠바이크가 나치를 피해 오스트리아를 떠난뒤 1939년 스톡홀름과 암스텔담에서 출간되었다. 인간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 예술성과 대중성을 다 인정받은 작품이다.

<초조한 마음>에 앞서 그의 다른 두 대표작을 간단히 보면,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키케로에서 메흐메트 2세, 발보아, 헨델, 루제 드 릴, 웰링턴, 나폴레옹, 괴테, 서터, 도스토옙스키, 등 서양지성사라 할수있고 츠바이크는 현실적으로 성공한 사람보다는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았던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간다고 쓰고 있는데 그만큼 인물의 내적 고뇌와 갈등, 당시 시대정신을 밀도있게 파헤친다.

<어제의 세계>는 1914년 발발한 1차 대전에 대한 회고록이다. 그 어떤 동기나 명분도 없는 전쟁이라 비난함으로 평화주의자인 츠바이크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면엔 파리와 함께 유럽 문화와 예술의 수도 역할을 해온 수도 빈에 대한 애증이 깔려있다 할수 있다.


츠바이크의 작품은 대개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주인공은 언제나 내적, 외적 상황 때문에 다가온 행복을 놓친다. <초조한 마음>에 이런 작가의 성향과 특징이 잘 드러나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초조한 마음>문학과지성사,2013



소설의 배경은 1차 대전 발발 직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접경지역이다. 헝가리 주둔지로 발령받은 안톤 호프밀러 소위는 부유한 실업가인 케케스팔바 저택으로 초대를 받아 가고 그곳에서 다리가 자유롭지 못한 그의 딸 에디트를 만나게 된다. 그녀가 불구임을 모른채 춤을 청한 뒤 낭패감을 맛본다.

“...나는 테이블로 다가가 정중하게 절을 하며 춤을 청했다. 당혹스러운 눈빛이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녀의 입은 말을 하려다 멈춘 듯 반쯤 열린채 굳어져 있었다.”


그러자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그녀에게 연민을 베풀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불행을 생각할때마다 밀려오는 고통스러우면서 강렬한 연민이 내 안에서 뜨겁게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를 생각하거나 바라볼때마다 연민과 함께 샘솟는 애정을 느끼며 나는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 결과 에디트는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둘을 지켜보던 에디트 주치의인 콘도어박사는 호프밀러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새로운 치료법에 의한 자극이 무뎌지면 그에 따른 반응이 온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재빨리 치료법을 바꿔야합니다. 우리 의사들은 치료가 되지 않는 환자에게는 계속해서 이런 속임수를 쓴다는겁니다”

문제는, 호프밀러 역시 자신의 에디트에 대한 감정이 자신의 당혹스러움을 감추려는 비겁한 술수임을 알고 있다는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나쁜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사악함이나 잔인함이 아닌 나약함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


그러면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이렇게 토로한다.

“에디트가 말하면서 이따금씩 물거품이 이는듯한 밝은 웃음소리를 낼때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에디트가 모르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 우리가 그녀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불구라는 이유로 만인에게서 거짓 연민을 받으며 살아온 에디트는 이런 기형적 사고를 갖게 되는데,

“무슨 소리예요!...당신 휴가 문제는 아빠가 30분만에 해결해줄거예요. 아빠는 국방부에도 아는 사람이 많아요. 상부에서 지시가 떨어지면 당신은 원하는 바를 얻을수 있을거예요”

즉 그녀는 돈과 권력이면 만사가 다 해결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싸구려 연민의 결과물인것이다.

그런데 호프밀러의 최대 약점은 바로 ‘돈’이었다.

“돈이야말로 나의 약점이었다! 돈과 관련해서는 내가 불구였고 내가 목발을 필요로 했다.”


그렇다면 호프밀러 자신은 애써 감추지만 에디트가 그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을 '돈'에 대한 욕심때문에 그녀에게 '연민'을 베푼건 아니었을까, 라는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에디트는 이미 호프밀러가 자신에게 갖고 있는 연민의 실체를 알고 있다.

“당신은 내가‘혼자’라서 온다고 하셨죠? 정확히 말하면 내가 빌어먹을 의자에 묶여있기 때문이겠죠.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당신은 매일 이곳에 오는거군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몸이 불편한 가엾은 아이’를 보러 오는거군요. 당신들은 내가 없을때는 다들 나를 그렇게 부르죠? 나도 다 알고 있다고요. 당신은 단지 동정심 때문에 오는거군요...그런 ‘좋은’사람들은 매맞는 개나 더러운 고양이에게도 항상 연민을 느끼잖아요. "



이어서 에디트의 자살암시가 이어지는데,

“언젠가 이 테라스가 나에게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수 있는지는 아빠도, 의사도 , 건축가도 생각못했죠...족히 4,5층은 될거예요. 아래는 단단한 돌이고요. 이 정도면 충분하죠..보세요, 아주 쉬워요! 이렇게 몸을 숙이기만 하면,..‘



이후 둘의 극적인 키스가 이어지는데,

”나는 허리를 굽혀 에디트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갖다댔다..그런데 갑자기 이불위에 얌전히 놓여있던 에디트의 양손이 위로 번쩍 솟구친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피할새도 없이 양손으로 내 관자놀이를 꽉 움켜쥐더니 내 입술을 자신의 이마에서 떼어내 입술로 가져갔다. ..그토록 거칠고 절망적이고 갈증에 허덕이는 키스를 경험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둘은 해프닝처럼 약혼하게 된다.그리고 호프밀러는 자만감에 빠지는데,

”그날밤 나는 신이었다.나는 이 세상을 창조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자비와 정의로 가득했다. 나는 한사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의 이마는 아침처럼 순수하게 빛났고 그의 눈에는 행복의 무지개가 담겨있었다. 나는 풍요로움으로 식탁을 차렸다“


그러다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다. 에디트가 걷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녀가 걷고 있었다! 그녀가 걷는것이었다! 부릅뜬 눈을 나에게 향한채 에디트는 투명한 끈을 잡고 몸을 끌고 가듯이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에디트는 이내 고꾸라진다.

”곧 내품에 안길 것을 기대하며 팔을 격렬하게 앞으로 뻗은 것이 화근이었다. 에디트는 균형을 잃었다. 마치 낫으로 베인 듯 무릎이 꺾이면서 에디트는 내 발 앞에 쿵 쓰러졌고, 그녀가 들고 있던 목발은 큰 소리를 내며 바닥위에 떨어졌다. 그순간 충격에 휩싸인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 몸을 일으켜주는 대신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쳐버렸다“


이렇게 에디트는 다시 ’불구‘라는 자신의 ’현실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호프밀러는 에디트와의 약혼을 후회한다.

” 나는 약혼을 했지. 약혼을 당했지. 하지만 그건 무효야..에디트는 조금전에도 막대기처럼 쓰러졌잖아...그런 사람과 어떻게 결혼을 할수 있어! 그건 진정한 여자가 아니잖아1“


그러면서 에디트의 피에 아버지인 케케스팔바 (원래는 카니츠)에게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것까지 비난하는 비열함을 보인다.

결국 배반당한 에디트는 테라스에서 몸을 던져 세상의 가짜 연민으로부터 탈출 (자살)하게 된다.


그리고는 1차 대전이 발발하고 호프밀러는 에디트의 죽음으로 인한 자책과 괴로움으로부터 탈출하는 식으로 전장으로 간다.

”전쟁은 내게 도피처이자 구원이었다.범죄자가 어둠속으로 도망치듯이 나는 전쟁 속으로 도망친 것이다..나의 나약함이, 사람의 마음을 유혹한 후 도망쳐버린 나의 연민이 한 사람을, 그것도 나를 열정적으로 사랑해준 유일한 사람을 살해했다고...“


이렇듯 호프밀러는 에디트 부녀에게 기대만 잔뜩 안겨주고 무책임하게 달아난 싸구려 감상주의자이자 에디트와의 약혼을 동료들 앞에서 부정하는 비겁자로 결말난다.이 작품은 진정한 연민과 잘못된 연민 (초조한 마음)을 안톤과 에디트의 관계, 그리고 콘도어박사와 맹인 아내의 관계를 대비해 극명하게 보여주는데, 이런 의미에서 콘도어 박사 는 호프밀러가 지향해야 할 또다른 자아라 할수 있다.


이 작품은 액자식 구성으로 작가가 주인공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런 구성은 싸구려 연민과 비겁함을 '나'가 아닌'그'의 잘못으로 돌리려는 우리안의 교활함을 에둘러 표현한 것은 아닐까?





참고로 츠바이크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 불리는 유럽의 황금 시대에 활동했다. 그 시기, 유럽의 문화와 예술은 최고조에 달했고 츠바이크는 진정으로 그 시기를 사랑했다.

시기적으로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종결된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까지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유럽을 뜻한다.

표면적으로 이시기에는 유럽내 전쟁이 없고 중산층이 약진한 기간이며 예술 분야에서는 인상파, 표현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과 같은 ‘아르 누보(Art Nouveau, 새로운 예술)’ 운동과 아방가르드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구의 아시아, 아프리카 식민주의가 기승을 부렸고 노동계층이 소외당한 비극적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종종 예술적 데카당과 경제적 자유방임으로 대변되는 '세기말'과 동의어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요약하면 <초조한 마음>은 호프밀러라는 싸구려 감상주의자가 에디트의 유일한 의지처인 목발을 빼앗은 이야기이자 우리 안에 내재된 타인에 대한 무자비하고 잔인한 폭력성을 긴 호흡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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