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드 리쇼 소설 <고통 >에 나타난 육체의 문제
모욕당한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거의 매 문장마다 ‘고통’이 언급되고 있는 이 작품은 앙드레 드 리쇼(André de Richaud 1907-1968)의 소설 데뷔작이다. 적나라한 인간의 욕망과 적포로와의 애정행각이라는 파격적인 이야기를 그려내 출간과 함께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으로 알려져있다. 이렇듯 리쇼는 세간의 관심속에 등단했으나 평생을 문단 중심에 서진 못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도 하나의 금기로 작용하는 '육체의 강박'이라는 주제때문은 아닐까? 모랄로 켜켜이 가려져있는 육체는 존재의 고통을 유발시키고 관계의 불안정성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참고로 1930년대 대부분의 프랑스 문학이 멘탈을 추구했음을 상기할때 이 작품은 이런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데 그만큼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대담하게 그려낸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리쇼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데, 부친이 1차 대전때 전사하자 모친은 리쇼를 데리고 멀리 이사한다. 그리고는 독일군 포로와 사랑에 빠져 리쇼로 하여금 평생 트라우마를 갖게 만든다.
<고통>은 D.H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을 연상시킬만큼 모자간의 미묘한 신경전과 애증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들이 소녀의 몸을 만지고 있자 엄마인 테레즈는 소녀의 뺨을 후려침으로서 아들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눈에서는 아무런 욕망도 엿보이지 않았다...소년은...소녀의 배를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소년의 입술은 침이 살짝 흘러 반짝거렸다...그녀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이성을 잃고 소년을 꾸짖고 소녀의 뺨을 수도없이 후려쳤다. 조르제는 얼굴이 붉어진채 당황해서 부엌으로 내려가버렸다. 소녀도 울면서 자기집으로 돌아갔다”
테레즈는 전장에서 죽은 남편의 부재로 철저하게 육체적으로 고립돼있다.
“그녀 내부에서는 뜨거운피가 점점더 당당하게 제 몫을 요구하며 돌고 있었다...그녀는 고통스러운 가슴을 상처처럼 부여안고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면서도, 추잡하기 짝이없는 책들을 읽으면서 자신의 감각을 자극하며 방황했다. 어떤 남자를 보면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성기를 상상하곤 했다. 그녀는 오직 사랑만을, 사랑의 행위만을, 열정의 고통만을 생각했다. 그녀는 열렬히 ’사랑을갈구‘했다. 제 2의 청춘기에 사로잡힌 것이다...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다른 많은 여인들은 어떻게 지내는것일까?”
이렇듯 자신의 고독을 온통 아들인 조르제에게서 보상받으려던 테레즈는 마을에 독일군 포로인 오토가 들어오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평생 단정한 요조숙녀행세를 해야했던 테레즈는 이제 비로소 욕망의 대상을 찾은것이다.
“어머니와 아들의 내밀했던 관계는 꽤 소원해져있었다.두사람은 극진한 사랑에서 약간은 적대적인 무관심의 상태로 돌아갔다. .이제 테레즈 들롱부르는 오직 자신과 자신의 연인만을 위해 살고 있엇다.“
그리고 온마을은 테레즈를 ‘독일놈 갈보’라고 손가락질한다. 테레즈는 남편없는 외로움과 거기서 분출되는 욕구를 오토를 받아들임으로서 해소한것뿐인데 타인들은 그것을 부역질한것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마을에 소문이 파다했다...사람들은 하나둘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테레즈는 광기어린 짐승으로 변한다.
“모욕당한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마을 여자들에 대한 욕설과 폭설이 이어졌다...고통으로 미칠 지경이 되어버린 여인을 보는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그녀는 분노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을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토가 동료들과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끝이나고 테레즈는 자신이 임신한것을 알게 된다. 그 고통은 아들인 조르제에게 전이되는데,
“ 어머니가 아이를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르제는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의 어머니는 곁에있는 아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을 모독하고 남편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이는 더 이상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렇듯 모친의 쾌락은 아들에겐 또다른 ’고통으로 작용한다. 그리고는 오토가 마을을 떠나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자 테레즈는 기절하고 마는데,
”마침내 아이는 소매없는 검은색 망토 차림으로 토넬 아래 자갈 위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여명이 덧문을 긁어댈때까지 조르제는 두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테레즈는 마치 도살당한 짐승처럼 깊은잠에 빠져있었다“
앙드레 드 리쇼 <고통>문학동네,2012
그렇게 세상의 위선과 모럴을 조롱하고 자신의 육체와 욕망에 충실했던 테레즈는 계단에서 구르면서 램프를 건드려 불타 죽는걸로 생을 마감한다.
”끝나버렸다...그리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왔다. 그런데 발을 헛디딘 것일까...그녀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졌고, 담요가 걸려있는 난간에 램프가 계속 부딪쳐 깨졌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길게 내질렀고, 그 비명은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리쇼는 이렇듯 남편없는 한 여자의 아들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오토라는 3자의 개입으로 그 관계가 틀어지는데서 오는 관계의 고통, 그리고 육체가 욕망을 이루었을때 오는 이별과 홀로됨의 고통을 계속해서 대범하고 극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섬세하고 여린 아들 조르제와 육체의 욕망에 충실한 엄마 테레즈의 갈등과 애증은 흔히 계부와 보들레르의 관계에 비교되기도 하는데 직업군인었던 계부가 몽환적 기질의 보들레르와 소통했다고 볼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작품은 알베르 카뮈에게도 영향을 끼쳐 그로하여금 소설을 쓰게 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찬 인간존재에 대한 공감에 기인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