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달빛그림자>에 나타난 '재회'

이 장면은 울면서 몇 번이나 되새긴 장면이다. 가면 안된다고...

by 박순영


요시모토 바나나 (1964-)는 일본의 진보적 사상가이자 작가인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차녀다. 그녀는 니혼대학 예술학부를 졸업하고 졸업작품으로 쓴 “달빛 그림자”가 학부장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바나나는 이작품이수록된 <키친>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키친>에 수록된 <달빛 그림자>는 그 한작품만으로도 바나나의 세계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그 안엔 삶과 죽음의 간극, 오컬트적 신비, 그리고 상처의 이야기가 쓰여있다.

어느 겨울날, ‘나’는 차사고로 애인을 잃고 ‘히라기’는 형과 애인을 동시에 잃는다. 그리곤 그 둘이 힘겹게 겨울을 나는 이야기가 주 내용인데 삶과 죽음의 경계인 ‘강’과 ‘다리’가 그 애잔함을 더한다.

거기다, 우라라라는, 오컬트적 영매가 등장해 산자와 죽은자를 재회시켜주는역할을 하는데 이 신비로운 설정 또한 바나나의 문학세계를 관통하는 주제기도 하다.


바나나의 글은 복잡다단하다. 쉽게 읽힐뿐, 글쓰기 과정을 추체험하면 세상과 삶, 인간의 미추를 적확하게 짚은 뒤 자신만의 언어와 서정의 세계로 포장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 오컬트적 영의 세계가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지상의 삶이 척박함을 환기시켜주는 것이라 할수 있다.


영화 <달빛그림자>일본, 2022


“내게 그강은,히토시와 나의 국경이었다. 그 다리를 떠올리면 거기에 서서 기다리는 히토시가 보인다. 항상 내가 약속시간에 늦어 늘 그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항상 우리는 거기서 강을 사이에 두고 헤어졌다. 마지막에도 그랬다”


이 소설의 주 독자는 청춘들이다. 죽음이라는 음울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철없고 낭만적인 청춘의 모습 또한 그려지는데,


“우리는 심한 싸움도 했고 잠시 바람을 피우기도 했다. 욕망과 사랑의 균형에 괴로워한 적도 있고 너무 어려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 일도 더러 있었다....”


그런가하면 망자에 대한 그리움이 처절하게 보여진다.


“이 장면은 울면서 몇 번이나 되새긴 장면이다. 다리를 건너 쫓아가서, 가면안된다고 ...”

사츠키는 망자 히토시와 ‘영매’인 우라라를 통해 강에서 재회한다. 환언하면, 사츠키가 히토시의 죽음을 재확인하고 온전한 이별을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런 망자체험을 통해 비로소 사츠키와 히토시의 동생 히라기는 ‘저세계 인연들’에게 온전한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1964-)

이렇듯 <달빛 그림자> 속 재회는 깔끔하고 인상적으로, 감기 기운을 빌어 몽환적으로, 그러나 삶과 죽음의 완전한 선긋기로 그려진다.


그 고통의 겨울을 지나 두 사람은 이제 봄 초입에 서있다. 강이 더욱 아름답고 세상이 온통 파란 그런 시간 앞에. 아직은 ‘그들’과 이별한 지 얼마 안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유품 (방울과 세일러복)도 점점 그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리라 믿는다.


이 작품을 처음 읽은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바나나 작품 대부분을 읽었지만, <달빛 그림자>만큼 애절하고 슬픔의 정석을 잘 보여준 작품도 없다고 감히 단언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명징한 삶과 죽음의 이야기며 청춘의 러브스토리자, 최고로 가슴아픈 ‘겨울이야기’라 할수 있다.


사츠키와 히라기가 슬픔을 극복해내는 과정은 얼마나 눈물겨운가. 그럴 힘으로 살아내라고 바나나는 우리에게 얘기하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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