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부코스키 소설 <팩토텀>리뷰

사랑은 진짜 인간들이나 하는겁니다 나는 진짜 인간들을 싫어합니다.

by 박순영

묘비명 '애쓰지 마라don’t try’로 유명한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owski 1920-1994) 는 현대 미국 언더 문학의 대부이자 이단아로 유명하다. 빈민가와 허름한 술집에서나 오가는 속어들로 이루어진 대화들은 규격을 당연시하는 주류문화에 대한 저항으로 읽힐수 있다.


부코스키는 문학뿐 아니라 대중예술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그 스스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 <팩토텀>은 <우체국>, <여자들>과 함께 '부코스키 삼부작'으로 불린다. 세 작품 모두 작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헨리 치나스키'가 등장한다. <팩토텀>은 2005년에 영화화되었다.


부코스키는 1920년 독일태생으로 세 살때 미국으로 이주한다. 2년만에 대학을 중퇴하고 독학으로 문학의 길로 접어든다.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니체, DH 로렌스, 셀린, EE 커밍스, 파운드, 판테, 사로얀 등의 영향을 받았다. 스물네 살 때 잡지에 첫 단편을 발표하지만 출판계에 환멸을 느껴 하급 노동자로 10여년을 지낸다. 그러다 12년간 우체국에서 일하며 시를 쓴다. 그가 전업작가로 들어선건 49세였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그의 장례식은 불교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팩토텀>은 헨리 치나스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그는 하급 노동직을 전전하면서도 작가로서의 미래를 포기하지않는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전장에 나가는것만은 피해다니는 병역기피자다. 그가 미국 전역을 떠돌며 20여곳의 직장을 구했다가 그만둘때까지의 87개의 에피소드로 그려져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서로 무관한듯 연결돼있고 미국 현대 도시 이면의 또다른 음울함을 시니컬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를 쓰기도 한 부코스키의 이 작품은 산문으로 쓰인 장문의 시라 할만큼 고난도의 문장력을 선보인다.



찰스 부코스키 <팩토텀>문학동네, 2007



치나스키는 아버지를 폭행하는 패륜아면서 구치소를 제 집 드나들듯 하는 부랑아기도 하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나를 LA카운티 구치소로 호송했다...잔은 강간미수에서부터 폭행, 과다노출, 공무집행 방해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고발 조치들로부터 나를 간신히 빼내주곤 했다. 평화의 교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다."


치나스키는 아버지로부터 전쟁에 나가지 않는 비겁한 놈이란 욕까지 듣는다.

“얼마나 못된 놈이면 전쟁이 터져도 나라를 위해 군대에 갈 생각조차 않으니...”



그런가하면 먹을것이 없어 남의 가게에서 오이따위를 훔치는 쪼잔한 인간이기도 하다.

“나는 그 상점 앞을 지나쳤다. 그런 다음 다시 방향을 틀어 그 상점으로 다가갔다. 출입문 앞에 야채 판매대가 놓여있었다. 판매대 위에는 토마토, 오이 오렌지, 파인애플, 그리고 포도가 진열되어 있었다...나는 오이 하나를 집어들고 주머니에 쏘셔넣었다 . 그리고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하는 자신에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오이를 꺼내서 다시 오이 더미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그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이렇게 요약한다.

“나는 내가 또라이라는 사실을 학창시절에 처음 알았다. 다른 또라이들 한둘이 당했던것처럼 나도 아이들로부터 욕설과 조롱과 야유를 들었다. 두들겨맞고 도망다녔던 다른 또라이들에 비해서 나의 유일한 장점은 무덤덤했다는 것이었다.애들에게 둘러싸여있을때도 나는 겁을 먹지 않았다. 녀석들은 결국 나를 공격하지 않았고, 대신에 공격 목표를 다른 또라이로 바꿔서 내가 보는 앞에서 그녀석을 두들겨 패곤했다”



그는 ’가난‘에 병적으로 예민하다

“빈털터리라고요?

직업을 찾고 있지요..난 흔히들 말하는 땡전 한푼없는 신세예요.마지막 남은 동전 한닢을 땅콩버터 한병과 빵 한덩어리를 사는데 써버렸죠..."


이런 성향은 잡역부로서의 현실과 작가로서의 이상사이에 깊은 갈등을 일으키는데,

“ 그러나 어떻게 생각을 멈춘단 말인가? 왜 이 난간을 닦는 일에 내가 선택되었나? 왜 나는 안에 들어가 시정의 부패를 비판하는 논설을 쓰고 있을순 없는가? ” 라며 괴로워한다.


그러면서 예술이란것도 뱃속이 든든해야 가능한거라고 고백한다.

“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굶주림은 예술을 돕지 않았다. 그저 방해만 할뿐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궁핍한 예술가라는 신화는 새빨간 거짓이다.. 모든 것이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야 사람은 더 현명해지고 동료 인간의 피를 짜내고 그를 태워없애기 시작한다. ”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흔히 그렇듯 그의 내면엔 조금이라도 권력이 생기면 휘두를것이라는 날선 각오가 서있다.

“지독한 개자식이 된다는건 할만해. 세상은 강한 자가 차지하게 마련이거든..힘없는 남자들, 여자들, 어린이들의 부서진 육신과 삶위에 나의 제국을 세울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내내 그들앞에서 나의 제국을 으스댈수 있으리라. 이 모든 것을 보여줄수 있으리라.”


그러면서도 한없이 복잡한 성격이어서 주류문화에 대한 반감을 종종 드러내는데,

“아마도 발송지에서 이 소포를 포장한 친구는 일자리를 잃을까봐 너무나 겁을먹은 나머지 도저히 부주의하게 일을 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대개 그런 인간은 삼십육개월 할부로 새 차를 산 지 일곱달 정도되고, 마누라는 월요일밤마다 도자기 교실에 나가고, 은행의 주택 융자 이자에 산채로 잡아먹히고 있는 중이며, 다섯아이 모두가 각자 하루에 우유를 한통씩은 먹고 있는, 그런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라며 가진자와 기득권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조롱한다.



이런 치나스키가 탐닉하는건 경마, 여자, 섹스, 술인데, 특히 섹스에 대한 도발적이고 대담한 묘사는 범상한 작가의 펜끝에선 도저히 나올수 없는 비속어들로 가득하다.

"내 음경이 일어섰다. 그녀는 신음소리를 내며 내 물건을 깨물었다. 나는 비명 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그녀를 뒤로 확 밀쳐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섹스와 사랑을 구별할줄 아는 분별력을 갖고 있는데,

"사랑은 진짜 인간들이나 하는겁니다.

당신도 진짜처럼 들리는데요?

난 진짜 인간을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싫어한다고요?

그런 사람들을 증오하죠”



이렇듯 방탕하고 엉망으로 사는 치나스키도 한가지 꿈만은 놓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열망인데,

“나는 내 단편들을 계속 손으로 썼다. ...글래드모어는 내 글중 상당수를 본인이 직접 작성한 반려통지서와 함께 되돌려보냈다...그렇게 나는 일주일네 네댓편씩의 이야기를 보내서 글래드모어를 계속 바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인간은 ’희망‘없인 살수없다고 고백한다.

“희망. 사람을 낙담시키는 것은 바로 희망의 결핍이다”


그리고는 단편이 채택되었다는 편지를 받게 되자,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미국 최고의 문학잡지에 실릴 나의 처녀작. 세상이 그때만큼 멋지게 보인것은단 한번도 없었다. 그렇게 희망으로 가득찬 세상 말이다”


하지만 작가가 된 뒤에도 그는 계속 하급 노동직을 전전해야 하고 그러면서 자의식은 점점 병들어가고 병적으로 예민해져 거리의 부랑아들을 보는 시선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 나머지 부랑자들은 하역용 경사로를 타고 어슬렁 어슬렁 물러나 그 끝에 가서 뛰어내리더니 골목을 따라 어느 일요일 로스 엔젤레스 시내의 불모지 속으로 걸어갔다”

부랑아들과 치나스키의 차이가 과연 무엇일까?


그러는데 유일한 의지처였던 연인 잔이 다른놈과 눈이 맞아 그를 떠나는 일이 벌어진다.

“그전날 나는 잔이 킹슬리 드라이브에 사는 뚱뚱한 부동산 중개인의 집으로 이사하는걸 도와주었다.나는 안보이게 현관 저만치 뒤에 서서 그 인간이 잔에게 키스하는겄을 지켜 보았다.그러고나서 그들은 그의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문이 닫혔다. 나는 혼자서 다시 거리를 내려왔다”


이후로 치나스키의 우울감은 눈에 띄게 깊어간다. 섹스와 사랑을 구별할줄 아는척 하던 인간이 자신의 섹스 파트너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이렇게 예민해진 그의 내면은 그 어느때보 가진자와 없는자의 구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주정부 고용 담당 직원들이 책상에 앉아있거나 그옆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엇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부랑자들보다 더 걱정스러워보이는 표정들이었다. 직원들과 부랑자 집단은 두꺼운 철사로 엮어 만든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있었다. 철조망은 바닥에서부터 천장에까지 닿아있었고, 누군가가 철조망을 노란색으로 칠해놓았다. 아주 냉담하게 보이는 노란색이었다”


빈민들의 열악하고 무기력한 삶은 계속해서 묘사되는데,

“생산직 노동자 소개소는 빈민굴 한구석에 위치해있었다. 이곳의 부랑자들은 옷을 좀더 잘 입고 있었고, 좀더 젊었지만, 무기력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리고는 <팩토텀>의 가장 잊지못할 귀절에 이른다.

"나는 카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주소와 전화번호 칸에는 이렇게 적었다. ’없음‘

그리고 교육과 노동 능력 칸에는 이렇게 적었다. ’로스엔젤레스 시립대학에서 2년. 저널리즘과 미술‘...

그리고 나는 직원에게 말했다.

’잘못썼어요. 다시 한 장 받을수있을까요? ...

나는 고쳐적었다. '고졸, LA고등학교, 발송계원. 창고계원. 막노동 인부, 타자 조금“

자신이 조금이라도 배운 식자라는 것이 하급 노동직을 구하기엔 오히려 장애가 됨을 깨닫고 이력서를 고쳐쓰는 대목이다.


이처럼 잔의 떠남은 치나스키에게 자신의 ‘가난’을 더 한층 깊게, 부조리하게 느끼게 만드는 사건으로 계속 그려지고,

" 손을 폈을 때 손바닥안에 보이는 것은 검은 얼룩 하나와 이상한 모양이 작은 날개 두 개가 전부였다. 무無"라고 적고 있다. 사랑을 잃음으로서 그는 '무'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러나 결국 그를 다시 맞아주는 존재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나체 무용수들의 사진이 현관앞 유리에 진열되어있었다. 나는 성큼 다가가서 입장권을 샀다. 새장 안의 여자는 사진보다 훨씬 나아보였다..우리는 살색 거즈 틈새로 그녀의 거웃을 볼수 있었다. 밴드는 그녀의 엉덩이를 정말로 후려갈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그걸 세울수 없었다“





이렇듯 치나스키는 스스로 말하듯 고독한 존재고, 한여자, 한 장소에 , 한직장에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다. 그런가하면 겉으로는 여성을 섹스의 대상으로만 여기지만 잔이 떠나고 나서 그의 허무감은 이루 말할수가 없다. 아버지를 패는 패륜아, 더 낮은 임금쪽으로 옮기는 불합리한 인간, 주류문화에 저항하는 반항아, 자기가본것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탁월한 작가이자, 깊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모순으로 뒤범벅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인것이다.



《우체국(Post Office)》(1971), 《팩토텀(Factotum)》(1975), 《여자들(Women)》(1978), 《호밀빵 햄 샌드위치(Ham on Rye)》(1982), 《평범한 광기 이야기(Tales of Ordinary Madness)》(1983), 《할리우드(Hollywood)》(1989), 《펄프(Pulp)》(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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