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계실때는 비오는 날은 문 닫는 날이었다. 엄마는 습기로 '찌덕찌덕'해진 방바닥을 극도로 싫어하셔서 문을 꼭 닫고 계셨다. 나는 시원한 비바람을 쐬겠다고 문을 열고 그러면 엄마는 닫고...이제는 그런 실랑이를 할래도 할수가 없다 엄마가 안계시므로...
엄마는 참전 여경이셔서 호국원에 안장되셨다. 그것도 18구역이라고 한 20분 올라가 있는 높은 구역, 맨 윗칸에. 지금 나는 예전 엄마방을 침실로 쓰고 있어 아침이면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뜨곤 한다. 그래도 엄마 생의 유일한 낙이었다면 남향방을 줄곧 쓰셨다는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 엄마집이 따로 있는데도 기간이 맞지않아 몇년 세를 살 때가 있었다. 집에 묶어놓지 않으면 돈이 샌다고 생각하셨는지 늘 30평대로 전세를 옮겨다니셨고 그러다보니 방 하나만 남향이고 나머지 둘은 북향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천하의 불효자인 나도 남향큰방만은 늘 엄마몫으로 해드렸다.
비비안고닉이 평생에 걸친 모녀간의 애증을 <사나운애착>에 그려냈다는 말을 듣고, 이세상 모든 모녀에게는 야릇한 심리가 작용하나보다 했다.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경계하고 동지면서 적인 뭐 뭐그런 관계랄까.
하지만 늦둥이로 나를 보셔서 그런지 엄마는 나를 딸이라기 보다는 손주쯤으로 여기고 한없는 내리사랑을 주셨다. 40이 넘어서까지 대학원을 가느니 마느니 박사과정등록을 했다가 변덕을 부려 등록취소를 하질 않나, 이 모든 나의 투정도 어쩌면 받아줄 사람이 있어 가능했다는 생각이 이제사 든다. 그때 엄마 계실때 공부를 마쳤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여전하다. 굳이 돈때문이 아니라 든든한 아군이 있을때 진격을 했어야 한다는 그정도의 뉘앙스다.
이렇게 비오는 날은 엄마가 계신 야외 납골당도 비에 흠뻑 젖을 걸 생각하면 엄마가 조금은 시원하실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틀전인가 브런치 다른 유저의 글 중에 시어미니의 임종을 지키는 글을 읽고 뭉클한 적이 있다. 왜 다들 돌아가실땐 눈뭄을 흘리는지 모르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엄마의 임종순간을 지키지 못한 나는 엄마도 눈물을 흘렸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마 흘리셨을거다. 여러가지 심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오는 눈물일듯 싶다. 그리움과 미련,단념과 회한....
나역시 그럴까? 언젠가 죽음이 나를 데려갈때 나또한 한줄기 눈물을 흘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