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dic sunshine

by 박순영

나도 한때는 누군가의 '선샤인'이었던 적이있다. 지금이야 자기 애인을 이렇게 부르는 레트로한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


그는 미국 흑인 변호사였고 곧잘 메일에서 나를 그렇게 불렀다. 정말 내가 그의 태양이었는지는 나중에 확인한 바 아닌걸로 드러났지만.


하지만 내가 정작 끌린 이는그보다는 스웨덴인 c였다. 그전에 난 지독한 실연을 당하고 허한 마음에 y채팅 룸에들어가 이름이 마음에 들면 그냥 클릭을 해서 말을 걸던 시기였다.


스웨덴 예술이며 영화를 좋아하던 나는 그의 국적이 swedish라고 표기 된것만 보고 그를 선택했다. 그렇게 그에게 말을 걸자 그는 한참 뜸을 들이대더니 '우리 메일로 하는게 어때'라며 무뚝뚝하게 나왔다.그러면 뭐할러 채팅방엔 들어와 있을까 싶어 나는 그냥 무시하고있다고 며칠후 <영화 <엘비라 마디간>이야기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한 사흘 텀을 둔 끝에 단 한줄의 답문이 영어로 날아왔다. "나는 이따금 한국에 출장을 가는 은행원이다.만나서 반갑다"


서구인치고 이렇게 퉁명스러운 사람을 처음 대했고 조금은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이메일은 천천히 우릴 친구로 만들어갔다.


그는아침에 출근해서 업무메일을 비롯한 메일답장을 하고 점심시간에 한번 더, 그리고 퇴근무렵에 마지막 확인을 하는 매우 규칙적인 패턴을 갖고 있었다. 나는 당시 학교 강사일을 하고 있을때였고 지금즘 그의 메일이 와있겠구나,하면 빨리 집에 가 메일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 감정은 자연스레 연애모드로 흘렀다. 그렇게 내 마음을 흐르는대로 둔 것은 언젠가 본 그의 프로필 덕이기도 했는데 결혼상태가 공란이었기 때문이다. 이혼했거나 싱글이려니 했던 것이다.



그는 어릴때부터 영국유학을 비롯해 대학도 미국의 명문대를 나온 전형적 엘리트였다. 대단히 귀족적인 얼굴에 다부진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의 사진을 받던 날, 나는 정말 기절할 정도로 탄식을 내질렀다...이렇게 아름다운 남자가 존재하는구나,하고. 외양은 무뚝뚝해도 상대를 배려할줄 아는 젠틀맨이었고 우린 그렇게 온라인 연애라는것에 빠졌는데 어느날, 그가 "사흘후에 한국에 가"라고 운을 떼어왔다. 한국과 중국을 한꺼번에 돌아보는 해외출장이 잡혔다는 이야기였다. 난 당연히 "저녁먹자"라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사흘후 명동 어느 호텔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그는사진보다는 키가 좀 작았지만 눈매가 선하고 자기 표현으로는 '나이들어가다보니 갈색으로 변한'금발이 멋진 남자였다. 찻잔을 감싸쥐는 그의 두손이 파르르 떨리는걸 보면서 이 사람도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 다음날 우린 당일치기로 부산을, 그 다음날은 호수공원을 둘러보았다. 2인용 자전거를 타면서 호수를 돌던 그 초겨울 아침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의 다음 행선지인 중국으로 떠나는날 점심을 함께 하며 '이혼했어?'라고 묻자 '응. 아이가 둘 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가보다,하고 우린 메일로 다시 만날것을 기약하고 여의도 어디쯤에선가 헤어졌다. 그리고는 며칠후, 받아 놓은 번호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매우 반갑게 받아주었다. 전화번호를 아는데 굳이 번거롭게 메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나는 그후에도 두어번 더 전화를 한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 통화를 하는 날 그는 마치 화난듯 "I can't talk"이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우리 사이에 균열이 가는 느낌을 받았고그에게 여자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 시간으로 늦은 밤인데 그 시간에 같이 있을 정도의 여자라면...그리고는 다음날 나는메일로 결별을 알렸다.



그 연애의 후유증은 너무나 깊었고 나는 마치 그와 결혼했다 갈라선 느낌이었다. 그러다 근래 와서sns를 하기 시작한 나는 무심코 그의 이름을 검색했고 그러자 세월의 옷을 입은 그가 해안에서 애견과 함께 자전거를 달리는 모습이 프로필에 떠있었다. 여전히 서글서글한 눈매에 다부진 체격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는 것 외에는 예전과 그대로였다. 해서 나는 고심끝에 "나를 기억하냐. 오래전에 우리 부산도 가고 그랬다"라고 dm을 보냈더니 몇시간 뒤"네 소식을 들어 반가워"라는 답장이 날아왔다. 그리고는 한두번 더 메시지가 오갔다.



그이 sns게시물을 보다보니 이런 구절이 있어 웃은 적이 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죽은 다음 내가 비싸다고 뻥친 내 자전거를 와이프가 곧이곧대로 믿고 팔아버리는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의 유창하고 네이티브한 영어가 그대로 묻어나는 그 글귀를 보면서 예전에 받아보던 그의 메일이 너무나 그리웠다. 주말이면 바다로 몰고 나갈 자기 배를 수리하기에 바쁘다던 그에게 '바이킹의 후예 맞구나'라며 놀려대던 그 시절이...


그가 기혼인걸 알게 된건 그와 헤어진 직후였다. 그가 잊히질 않아 y프로필에 들어가 그를 찾아봤더니 공란이던 결혼상태를 스웨덴어로 'gift'라고 적어놔 사전을 뒤져 '기혼' 임을 알아내고는 헛헛했다.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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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로맨스 사기를 당했다고 할수도 있겠으나 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가 나를 가스라이팅 한것도,이용한것도 아니다. 내가 먼저 선택을 한 것이고 그는 응답했고 그러다보니 정이 들어 자기의 결혼상태를 말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와서 며칠 동행을 할때도 그는 깍듯이 예의를 차렸고 비용도 정확히 자기 몫을 냈다. 나는 그가 들려주던 북유럽이야기, 엘비라 마디간의 여주인공을 그즈음 레스토랑에서 봤는데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더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죄다 기억한다. 우리가 끊어질 즈음 그가 들려주던 스웨덴 동화 이야기까지..



올 연말에는 그가 먼저 보내오는 dm을 받아보고 싶다. 그 유창한 영어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네오는 그를 그렇게라도 만나고 싶다. 헤어지는 메일에서 "너는 썩은 사과야"라고 악담을 퍼부었음에도 그는 나를 기억했고 반갑게 맞아주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우리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탔다는 소식을 전하자 동료들과 함께 환호했다는 그에게 나는 아직도 감사한다. 해서 어쩌다 우리와 스웨덴이 붙는 스포츠라도 접하면 나는 은근 스웨덴을 응원한다...



이렇게 누구나 잠시나마 서로에게 따스한 햇살이던 시기가 있는 듯하다. 언젠가 스웨덴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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