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by 박순영

지금 시즌 3을 방영중인 휴먼메디칼 드라마 재방을 보고 있는데 "쌤, 우리 퇴근하고 맥주 한잔 해요"라는 대사를 듣고 있자니 떠오르는 일이 있다.


오래전 문학이론쪽으로 나가보겠다고 대학원을 다닌적이 있는데 학기말이면 꼭 마주치는 타학과 학생이 하나 있었다.

드라마 제목을 대면 다 알만한 드라마 작가이기도 한 그는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 학기말이면 모습을 드러냈는데 나와 약간의 친분도 있고 해서 수업이 끝나면 "맥주 한잔 해요"하고는 자연스레 근처 호프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와는 모든것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반년만에 보는 얼굴인데도 바로 어제 만난 사람처럼 친근했다. 조금의 비즈니스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어울림, 그런것이었다. 같은 작가면서도 드라마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고 대신 교수들 뒷담화나 수업에 관한 이야기, 그러다 개인사도 술술 털어놓었다.


당시 그가 유부남만 아니었어도 어쩌면 연애로 발전할수도 있는 그런 관계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했어도 잘 살았을 것 같은.


요즘도 간간이 포탈에서 그의 이름을 쳐보곤 하는데 당시 그의 꿈이었던 영화연출은 이루지 못했지만 대신 작은 드라마 제작사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온다.

"나 박 아무갭니다"전화하면 분명 기억해내고 "술한잔해요"라고 나와줄 사람인걸 알지만 내가 먼저 연락할 일은 없을것 같다. 그 기억에 조금의 스크래치도 내서는 안되기에.


그날도 학기말 마지막 수업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둘다 술이 불콰하게 올라 조금은 비틀거리면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갔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말없이 하늘의 달을 쳐다보았다. 술 기운 때문인지 그겨울 밤하늘에 걸려있는 그 달은 손을 뻗으면 잡힐듯 가깝게 여겨졌다.그러면서 어쩌면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우리 둘 사이의 그 친근함이 조금은 운명적이라고.


이글을 쓰다보니 또다시 모디아노가 떠오른다. '우린 헤어지기 위해 만난다'는 그의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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