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천변에서 노견을 한마리 보았다. 입가에 흰털이 수북해서 내 나름 노견이라 생각했다. 녀석은 주인을 따라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며칠전에도 걸어오는걸 봤는데 걷는 자체가 무척 힘들어보여서 '아이구, 저분도 얼마 안남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개는 주인과 함께 나이들어왔으려니 한다. 처음부터 노견을 입양했을리는 없을테니.
마지막 힘을 다해 주인과 보폭을 맞추는 그 개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부디 오래 살길 빌어주었다.
개만큼 주인에게 충성하는 동물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개만도 못한' 이라는 욕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개만큼만 돼도' 얼마나 좋은가. 그러면 인간세상에도 휴머니즘의 꽃이 피어날텐데...
내게 개를 키우라던 사람이 있었다. 내 삶이 너무 메마르다고.그런데 말이 쉽지,일단 나는 털날리는 것부터가 싫고 잘 만지지도 못하고 유지비도 없다.언젠가 검색을 해봤더니 개 하나 키우는게 사람 사는것만큼이나 들고 개가 아플 경우 병원비는 의료보험 적용이 안돼서 부르는게 값이라고 한다.
지방에 사는 언니는 그래서 예방주사도 약만 사다 직접 놔준다고 한다. 동물병원에서는 돈 10이 든다고...
그렇다면 천변에 개를 끌고 나오는 이들은 다 부자라는 얘긴데...
문제는 그렇게 키우다 싫증나거나 여력이 없어지면 곧바로 유기시켜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버려진 개의 심정이 한번이라도 돼보긴 했을까?
위에서 말한 노견이, 자신의 건재함을 자주 보여주길 바랄뿐이다. 자기는 버림받지 않고 말 그대로 평생의 반려로 주인곁을 지키고 있음을...
그러다 어느날 오랫동안 그녀석이 안보이면 유기된게 아니고 편안히 갔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