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가에서 우는 남자>

온다고 했는데...

by 박순영


민혁은 등을 보이고 강가에 앉아있는 저 여자가 아마도 울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일까...

그러면서 차 속도를 줄여본다. 내려서 물어볼까? 하다 괜한 오지랖이라 생각돼 가던길을 계속 간다.

민혁의 대학동기 서진은 K읍에서 조그맣게 내과를 운영중이다. 말이 내과지, 동네가 작다보니 유일한 병원이었고 과를 초월한 여타 진료까지 도맡아 보고 있다. 심지어는 아이까지 받는다고 한다.

오랜만에 마주 한 둘은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한다. 의대를 졸업하고 대학에 자리를 잡은 민혁은 한편으로는 마음만은 편한 서진이 부럽다. 서진 역시 앞날이 기대되는 의대생이었다. 하지만 서진은 대학병원 생활을 접고 이곳 K읍에 자리를 튼 것이다. 다 귀찮다,는게 그 이유였다.


민혁이 대학에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이루말할수 없는 굴욕과 인내의 시간이었고 그렇게 어렵게 자리잡은 다음엔 그 자리를 지키키 위해 피나는 노력과 로비를 해야했다. 그까짓 ‘대학병원 교수’타이틀 하나를 위해. 지도교수들 사이 알력에 희생되는 젊은 의사들도 허다했다. 서진은 그 모든 것에 염증을 느껴 일찌감치 자기만의 삶을 선택했던 것이다.


“짜식, 그래 마눌님 잘 계시구?”

서진이 커피를 내주며 묻는다. 민혁의 아내 혜경은 서울 강남에 피부과를 내고 있는 전문의다. 혜경을 알게 된건 서진을 통해서였다. 혜경은 첫눈에도 어려움없이 살아온 티가 역력했다. 장인 역시 피부과 의사였고 그래서 둘다 의사였던 민혁과 혜경은 큰 어려움 없이 결혼에 이르렀다. 그런 혜경을 서진이 잠시 마음에 두었다는것쯤은 지금은 농담처럼 나누는 이야기가 되었다.

“넌 언제까지 혼자 지낼거야?”

민혁이 묻자, 다 귀찮아.라며 서진은 자기 커피를 마신다.

“근데 오다가 보니까..”

“응?”

“아니, 저쪽 강가에서 웬여자가 울고 있더라구”

“그러게..나도 몇 번 봤는데...가서 물어도 대답을 안해”

하고 서진은 남은 커피를 다 마신다. K읍을 거쳐 L시 대학병원에 볼일이 있던 민혁은 그날밤을 서진의 집에서 함게 보내고 다음날 일찍 L씨로 향한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강가에 들르자 그녀는 여전히 거기서 울고 있다. 말을 붙여볼까, 하다 민혁은 포기하고 계속 차를 몰아 L시로 향한다.

“미친 여잔가보네”하고 민혁의 아내 혜경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왠지 그녀의 우는 뒷모습이 계속 잔상으로 남아 민혁이 경혜에게 이야기를 했던 겄이다. 민혁은 다가온 세미나 준비를 위해 그날밤을 꼬박 새운다. 그러나 왠지 그녀의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무슨 사연이 있어 그녀는 그렇게 울고 있던걸까...

그러다 민혁은 그녀를 잊는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병원 메카니즘과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는 욕망들이 얽히고 설켜 그녀를 생각할 틈이 없다.


그러다 그해 가을 문득 서진이 떠올라 안부메일을 보낸다. 서진은 병원을 증축했다며 자랑스레 사진을 찍어보낸다. 그러면서 축하주라도 나누자고 한다. 2층이라고 해봐야 보잘것없는 허름한 시골건물을 지나지 않는다. 마침 연휴라 민혁은 다시 K읍으로 차를 몬다. 그리고는 그 강을 지나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래쪽을 살펴보자 예상대로 ‘그녀’는 등을 보인채 울고 있다. 누굴까, 무슨 일일까..저녁 무렵 병원문을 닫고 서진과 술을 마시면서도 그녀의 대한 생각은 민혁을 떠나지 않는다.



“왜 그러세요?”하고 상경길에 민혁은 용기내서 그녀에게 다가가 묻는다. 그러자 그녀는 텅빈 시선을 강에 던지고 “온다고 했는데”라고만 대답한다. 이 여자 , 진짜 미친 여자 아닌가? 라는 생각에 민혁은 움찔인다. 그러면서도 “누구를 기다리세요?”하고 묻자 그녀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본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이라고 민혁은 생각한다. 제가 지나면서 몇 번 봤는데 계속 울고 있어서요...몸에도 안좋아요. 그만 , 하고 민혁이 그녀를 일으키려 하자 그녀의 표정이 순간 사나워지면서 민혁의 손을 뿌리친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다시 강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다시 울기를 계속한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꽤 오래 민혁의 머릿속을 맴돈다. 환자를 볼때도, 퇴근시간을 지나서까지 진료실에 처박혀 모니터를 들여다볼때도 그녀는 계속 머리에 남는다..그러다 그녀의 두 눈매가 눈에 익다는 생각을 민혁은 뒤늦게 하게 된ㄷ다. 아득한 시간 너머로 기억을 더듬는다. K읍....K읍....하다 민혁은 표정이 굳어진다.

이제는 너무 오래 돼서 정확한 시간개념도 없어진 그곳을 언젠가 자신이 찾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그해 여름 본과 4학년때 단체로 의료봉사를 간적이 있다... 그때 K읍은 태풍 피해를 입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파손된 집들이며 자그마한 교회는 이재민으로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유독 시선을 끄는 한 소녀가 있었다..그녀...그여자...그러면서 강가에서 울던 그녀의 큰 눈매가 그녀와 닮았다고 민혁은 생각한다.


귀갓길 민혁은 하마터면 차 사고를 낼뻔한다. 그녀를 생각하다...간신히 정지신호를 보고 차를 급정거시킨 후에야 자신이 그녀와 했던 약속이 떠오른다. 돌아오겠다고 했던..

.그녀는 당시 70 노파와 살고 있었고 그 노파는 폐렴이 심했고 아직 학생이었던 민혁의 눈에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보였고 그 예상대로 노파는 민혁이 내려간 뒤 일주일도 안돼 숨을 거두었다. 장례를 치를 여력도 없어보이는 그녀를 위해 동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장례를 치러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그녀의 외조모는 화장해서 야산에 뿌려졌다. 그때 그녀가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가 생생히 떠오른다.

친구들이 다 서울로 올라간 다음에도 민혁은 이틀 정도 더 K읍에 남아 그녀를 위로하면서 시간을 같이 보냈다. 처음엔 도통 마음을 열지 않던 그녀도 점차 민혁을 받아 들이고 급기야는 그녀와 노파가 살던 그 좁디 좁고 곰팡내 나는 그 방에서 둘은 같이 밤을 보냈다. 그리고는 이틑날, 그강가에서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민혁은 K읍을 떠나왔다. 기다리겠다며 울먹이는 그녀를 뒤에 남기고.



그리고는 시간에 부침하던 민혁은 그녀를 점점 더 잊게 되고 K읍을 찾지도 않았고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러다 지금의 혜경을 서진을 통해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편리한 사랑의 흐름을 타 결혼에 이르고 아이 둘을 낳고 지금까지 별탈없이 살게 된 것이다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진은 자신의 책장 한 구석을 미친 듯이 뒤진다...그리고는 그녀와 남겼던 그 오래전 사진 한 장을 책속에서 발견한다. 얼마전 초상을 치른 그녀는 있는대로 여윈 모습이지만 새로 시작된 사랑의 설레임이 그대로 미소에 그대로 반영돼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어깨에 한팔을 두르고 있는 젊은날 민혁 자신의 모습...



민혁은 그 다음주 강의가 없는 날을 기다렸다 날이 밝자마자 K읍으로 향한다. 비가 마구잡이르로 퍼붓는 그런 날이다. 그녀가 여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K읍에 도착한 민혁은 그 강가에 차를 세운다. 그러나 비가 와선지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뿌연 물안개만 자욱하다.

그 안갯속을 민혁은 그녀의 이름 "진"을 부르며 헤맨다. 오랜만에 불러보는 그녀 진.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없다..한참을 그렇게 해맨뒤 만신창이가 다 된 민혁은 젖은 몸으로 자기차에 오른다. 그녀는 어디갔을까..집도 외조모도 모두 잃었던 그녀는 지금은 어디 살고 있을까...


”어제 시신으로 발견됐대 그 여자“ 서진이 어느 환자 차트를 훑으며 건조하게 대답한다. 비가 내리기 직전 그녀는 강에 뛰어든 것이다 . 그 오랜시간 그를 기다리다 마침내 그 기다림을 죽음으로 마감한 것이다. 민혁은 서진이 보내는 의아한 눈길을 외면하고 병원을 나선다.

비는 여전히 퍼붓고 있다. 그녀가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었다.마음은 있는대로 찢기고 동정하는 이 하나 없는 각박한 삶을 그녀는 울면서 보냈으리라. 자신이 돌아올것만 기다리며..그런데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았을까, 하고 순간 궁금해진다.

하지만 흐른 세월이 얼만가...라며 민혁은 자신이 배반하고 잊어버린 그녀를 뒤늦게 추모한다. 그리고는 그녀가 늘 앉아있던 그 자리에 똑같이 두 다리를 반으로접어 세우고 두팔로 다리를 감싸고 앉는다. 내리는 비가 민혁을 흠뻑 적신다. 물안개는 왜 저리도 고울까,,, 민혁은 순간 복받치는 설음을 감당치 못해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지나가던 경차 한 대가 잠시가 멈추더니 어느 여자가 우산을 받고 차에서 나와 흐느끼는듯한 저만치 강둑 아래 한 남자의 뒷모습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는 조금 다가오는 듯 하다 다시 돌아서 자기 차에 올라 가던길을 계속 간다.



hommage to John Galsworthy 's "Apple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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