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처음 그날처럼>

니 사랑이 참 불쌍하다

by 박순영


승하에게선 일주일째 답이 없다. 아무리 늦어도 다음날이면 답문자를 보내오던 그여서 윤주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는 어디있는걸까, 분명 문자를 확인해놓고 왜 답을 않는걸까...그러고 있는데 구성작가 미경이 녹화일이 바뀌었다며 연락해온다. 매주 수요일에 녹화되던 연애심리 관련 예능이 이번주부터 금요일 오전으로 바뀌었다고...

승하를 처음 본건 그가 광고모델을 하던 시기였다. 메인 모델인 K의 인터뷰를 따러갔지만 K는 미리 집힌 약속임에도 한두마디를 하고는 다음 스케줄이 있다며 자리를 떴고 그렇게 푸대접을 받은 윤주가 어이없어하자 저만치서 보고 있던 승하가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 건네면서, 힘드시겠어요 하며 웃던게 둘의 처음 만남이었다.

그순간 윤주는 이미 승하가 멀지않아 메인급으로 부상할걸 예견했고 K대신 승하를 인터뷰해 그걸 기사로 썼다. 데스크에선 야단을 쳤지만 윤주는 기어코 잡지에 승하를 내보냈고 그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윤주에게 승하의 연락처를 묻는 방송관계자들의 전화가 계속됐고 얼마 지나지않아 승하는 저녁 일일극에서 주연급 조역을 따내 인기몰이에 들어갔다. 그렇게 되자 승하는 윤주에게 자주 연락을 해 어린 나이에 연예계생활을 하는 데 대한 조언을 구하면서 어떤날은 너무 힘들다며 고충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때마다 윤주는 이번만 넘기면 된다,면서 격려하고 그에게 힘을 얹었고 수시로 기사를 내주었다.


“제가 밥한번 살게요”

어느날 매니저가 아닌 승하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둘은 처음 데이트를 했다. 인터뷰를 핑계로 자주 보긴 했지만 사적인 만남은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적인 자리에서 승하는 털털하고 소박했다.

“결혼안하셨죠?” 승하가 뜬금없이 물어와 윤주는 잠깐 당황하다 “갔다왔어요”했다.


윤주는 CC였던 민석과 1년도 안되는 짧은 결혼생활을 한 끝에 결혼이란 제도에 피곤함을 느껴 먼저 이혼을 요구했고 민석은 까탈스럽게 굴지 않고 그에 응했다. 그후 민석은 직장 동료와 곧바로 재혼했고 지금 둘은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돼있다. 가까운 친구들조차 윤주가 자존심 때문에 그런척 한다고 하지만 윤주는 실제로 민석에게 큰 악감정같은게 없었고 민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한번 갔다왔다는 말에 승하는 ,그렇게 안보여요, 하며 놀란다. 무슨뜻이예요? 하자, 나이가...한다. 윤주는 쿡 웃음이 나왔고 내가 그쪽보다 다섯 살 많아요, 하자 아, 누나구나,하며 승하가 당황했다. 이후로 승하는 누나누나 하며 따랐고 그러면 윤주는 너 자꾸 그럴래? 하며 면박을 주곤 했다.

승하는 계속 잘 풀렸고 4부작 특집극에서 주연을 맡더니 이내 미니시리즈 공동주연을 따냈다. 그 소식을 승하는 윤주에게 제일 먼저 알려줘 윤주는 특종을 따낼수 있었다. 둘의 사이가 연예계에서 퍼지자 윤주에게 여기저기서 방송출연 섭외가 밀려들었지만 윤주는 그중 하나인 지금의 연애 심리프로만 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고정 패널로 출연하게 됐다.


그 이야기를 윤주역시 승하에게 제일 먼저 알리자, 누나 일냈네?하며 그가 좋아했다.

어쩌다 방송국 복도에서라도 마주치면 둘은 남의 눈 따위는 아랑곳없이 서로 허그를 하며 반겼고, 그러면 곧바로 둘의 기사가 인터넷에 뜨곤 했지만 둘다 신경쓰지 않았다.

미니시리즈가 해외로케가 많아 한달 이상을 떨어져있을 때 승하는 밤이면 국제전화를 걸어와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시차가 안맞는다. 음식이 안맞는다고 하면서 투덜댔고 그런 승하의 응석을 윤주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이거 누나 주려고”하며 해외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승하가 윤주에게 보석 케이스 하나를 내민다. 윤주가 당황해서 케이스를 열지 못하자, 바보, 하며 승하가 그 안에서 팔찌를 하나 꺼낸다. 그리고는 윤주의 손목에 채워주며, 이제 어디 못가, 누나 내거...


그랬던 승하가 이렇게 오래 연락이 안한적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자 윤주는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전화를 해도 문자를 해도 이메일을 보내도 그는 열어만 볼뿐 답이 없다...


대박조짐을 보이던 미니시리즈는 시청률 3프로도 안나와 결국 조기종영을 했고 그렇게 승하는 짧은 전성기를 지나 하강세에 접어들었다. 그전까지 쇄도하던 러브콜도 하나둘씩 줄어들었다.

“누나, 나 이제 못할거 같아”

승하가 어느날 어깨를 들썩이며 윤주앞에서 흐느꼈다.

“겨우 하나 망했다고 이럼 어떡해”

윤주가 그를 다독였지만 승하는 은퇴까지 언급했다.

“니가 뭘 했다고 은퇴씩이나?” 윤주가 비아냥대자 승하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렇지, 나 이거 그만두면 누나도 못보겠네....그가 말했다. 그날밤 둘은 윤주의 오피스텔에서 함께 밤을 보냈다. 다음날 새벽, 그를 배웅하던 윤주에게, 누나, 나 한번 더 해보려구. 했던 승하.

하지만 승하의 재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게다가 여배우 G와의 스캔들로 그의 청춘스타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그 전말을 알기에 윤주는 애가 탔지만 내놓고 윤주를 두둔하는 기사를 낼수도 없었다. 승하와 G는 거의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어쩌다 소속사 단체 회식에서 인사를 나눈 정도였는데 G가 당시 출연하던 드라마에 광고를 대던 재벌3세와 연애를 하기 시작했고 그가 유부남이었던게 문제가 돼 결국은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이됐고 그게 승하였다. 소속사대표의 간청을 물리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승하는 전혀 마음에도 없는 G와 연애 스캔들을 인정하는 기사까지 내야했고 윤주도 그렇게 써야했다. 그 기사를 낸 날 밤, 승하가 오피스텔로 찾아와 한참을 울었다. 그런 승하에게 윤주는 그래도 참아야 한다고 했든가....

그렇게 이미지 타격을 입은 승하는 이후로 줄곧 내리막길을 탔고 급기야 케이블 2부 특집극에서조차 오디션을 요구했다. 윤주는 그걸 잡으라고 승하의 등을 떠밀고 승하는 이미 유명세를 탄 뒤에 다시 신인으로 돌아가 오디션을 보는 굴욕을 감내했지만 캐스팅 되지 않았다. 그러고 나자 승하쪽에서 먼저 연락을 끊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승하 부모님이 운영한다는 춘천 막국숫집을 찾은 윤주는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서빙중인 승하를 마주하게 된다.

“너 여기서 뭐해”하자 승하는 그저 씩 웃기만 한다. 우리집 맛있어,하며 승하가 직접 국수 한그릇을 가져다 준다.

“너 이러고 살래 진짜?”하자, 이러면 누나랑도 끝인거지? 승하가 애써 웃어보이며, 누나 우리 그만해, 했다. 그날 소양댐까지 가서 그를 설득했지만 승하는 은퇴기사를 써달라고 부탁할뿐이었다. 그렇게 둘은 처음 헤어졌지만 윤주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는 기자들이 그녀에게 아무리 승하에 대해 물어와도 윤주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니 사랑이 참 불쌍하다...”

전남편 민석이 윤주와 저녁을 함께 하며 던진 말이다...




“내가? 내가 뭐가 불쌍해?”하자, 좀 쉬운 사랑을 해,라고 그가 위로했다.


이렇게 끝낼수 없다고 생각한 윤주는 고심 끝에 다시 승하를 찾았고 “여자가 자존심도 없이”라며 그는 그런 윤주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그날 윤주의 차를 타고 승하는 춘천을 떠나 다시 서울로 왔고 윤주는 평소 친분있던 연극 감독을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승하는 조용히, 그러나 소신있게 다시 연기를 시작했고 윤주는 열심히 그의 기사를 내주었다. 그러다 미니시리즈 조연 제의가 들어왔고 그날 승하는 윤주에게 청혼했다. 이제 누나없는 생은 꿈꿀수가 없다며.


승하의 부모는 한번 다녀왔다는 연상녀 윤주를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승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둘의 결혼은 미니시리즈 종방에서 발표하기로 얘기가 되었다. 비록 조연이긴 하지만 승하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빛이 났고 다시 팬덤이 형성되고 그의 sns는 열혈팬으로 넘쳐났다. 그럴수록 승하는 윤주에게 더더욱 의지했고 촬영이 비는 날은 윤주는 데스크 눈치를 보면서 휴가를 내 승하와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바다 수영씬에서 승하가 심장마지를 일으킨 것이다. 그 소식을 매니저로부터 전해들은 윤주는 쓰던 기사를 팽개치고 차를 몰아 대천으로 향했다. 죽지마, 죽음 안돼...라며 그녀는 울면서 차를 몰았고 그녀가 다급히 병실에 들어섰을 때 승하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녀를 보고 웃었다. 나 어릴때부터 심장이 나빴어. 라며 자기 품을 파고드는 윤주를 어미새가 아기새를 품듯 품어주었다.

그렇게 승하의 사고소식으로 드라마는 자연히 입소문을 타서 중박정도의 시청률을 내고 종영하고 승하는 다음 드라마 제의까지 받게 된다. 그러나 왠지 승하는 그닥 반기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미 변덕스럽고 인간시장이나 다름없는 연예계에 지쳐버린것이리라 그녀는 생각한다.

“너 또 은퇴 어쩌구 하는거 아니지?” 윤주가 걱정돼서 묻자 “나 이거 안하믄 나 안봐?”라고 그가 말한다. 미니시리즈 종영과 함께 결혼발표를 하려했던걸 막은건 윤주였다. 그때 이미 다음 드라마 제의가 들어와있던터라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건 안하고 싶었다. 대신 둘만의 언약식을 했고 반지를 나눠끼었다.

“우리 혼인신고하자”승하가 먼저 제의했다. 그말에 윤주는 “이번 작품까지만 하고”라고 다시 결혼을 연기했다...괜히 그랬다는 생각이 들자 윤주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승하를 찾아 춘천에도 가봤지만 부모도 그의 행방을 몰랐다. 그리고는 베트남에서, 미국에서 그를 봤다는 SNS글들이 올라와 이런저런 루머를 뿌렸고 윤주의 마음은 답답했다.


“다시 잘 생각해봐”

민석이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한다. 승하와의 결혼을 다시 생각하라고...

그렇게 그를 못보는 시간이 멀어지면서 처음엔 미칠 것 같던 윤주의 마음도 차차 안정을 찾아가고 어떤날은 한번도 승하의 생각을 하지 않은채 지나가기도 했다. 오피스텔에서 밤새 기사를 작성하던 윤주는 예전 승하와 주고받은 이메일이며 문자, SNS메시지들을 다시 한번 훑어본다. 그리고는 그의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예전 사진들이며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승하는 늘 밝게 웃고 있고 아이처럼 해맑다.


그래, 이렇게 놔누자, 그녀는 다짐한다. 그러면서 승하가 어쩌면 자기를 피하고 있는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자신이 짐이 된다는 생각에 그녀는 우울해진다. 그리고는 마지막 메시지를 그에게 보낸다. 넌 잘될거야, 믿어, 누나촉이야. 믿어도 돼.,라고...

그렇게 메시지를 보낸뒤 윤주는 밤새 운다. 그렇게 두눈이 퉁퉁 부운채로 줄근하자 다들 쳐다본다. 부운눈을 가리기 위해 일부러 눈화장을 짙게 했어도 티가 났나보다... 점심때 신인 배우J 와의 인터뷰가 잡혀 미리 관련자료들을 체크하던 그녀의 눈에 남도 어디선가 승하가 목격되었다는 기사가 띈다. 친분이 있는 기자라 그녀는 재빨리 그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자 자신도 제보를 받고 쓴 기사라고 한다. 남도...남도 어디....하던 그녀는 인터뷰가 잡혀있던 J에게 전화를 걸어 이틀뒤로 인터뷰를 미룬다.

데스크는 못마땅해 한소리 하지만 그녀는 게의치 않고 사무실을 뛰쳐나가 차 시동을 건다. 그렇게 그녀는 분명 그가 있을거라는 확신속에 남도를 네비게이션에 찍고 달리기 시작한다. 다시만나 이별을 확정한다 해도 마지막으로 얼굴은 봐야겠다는 생각에...


.처음 그날처럼_나윤권,MC스나이퍼, 더 치얼스(MBC뮤직_MM초이스)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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