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방비도시>

널 놓칠까봐,라는 말만 기정은 계속 한다.

by 박순영


“아마 잘못 발송된 문자같네요. 합격자 명단에 이지현씨는 없는데”

그말에 지현은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다시 한번 확인해 달라는 말에 여직원은 피곤하다는 인상을 지으며 명단을 다시 확인하고 고개를 젓는다.

지현은 5년을 외국계 은행 출납계원으로 평탄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사내엔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그렇게 퇴직금 명분으로 일정금액을 받고 은행을 나오게 됐다. 영어 하나는 자신 있다 생각돼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모두가 불황탓을 하며 티오가 없다는 대답만 해올 뿐이었다.

그렇게 외국계 무역회사 K를 나서는데 유난히 올여름이 덥다고 지현은 느낀다. 여름이 더운거야 당연하지만 습도가 한몫해 그야말로 불쾌지수는 하늘을 찌를듯했다.

첫출근이라고 입고나온 몸에 꽉 끼는 투피스 정장은 그녀를 땀 범벅으로 만든다. 한참을 아스팔트 아지랑이에 시선을 두던 지현은 뭐라도 좀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근처를 둘러보지만 도심 한복판에 마트같은게 있을리 없어 한참을 땡볕속을 헤매다 저만치 자그만 편의점을 찾게 된다.


“전 이게 전부라니까요”

지현은 자신이 편의점 냉장고에서 꺼내온 캔음료 한 개를 카운터에 내밀며 다시 어필하지만 스무살 정도의 아르바이트생은 굳이 지현의 백을 보자고 한다. 지현은 화가 치밀고 나를 도둑취급하지 말라며 항의하지만 그때 마침 연락을 받은 편의점 주인이 들어선다 “정 그러심 경찰에 연락하겠다”며 그는 으름장을 놓는다.

할수 없이 지현은 비상 생리대까지 들어있는 자신의 솔더백 내용물을 다 꺼낸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아,하는 비명이 새어나온다. 그안에 전혀 기억이 없는 삼각김밥이 섞여있는 것이다.

“저 정말 안 그랬어요”라고 지현은 결백을 호소하지만 주인의 굳어진 얼굴은 다시 펴지지 않는다. “멀쩡한 분이 이럼 안되죠”라며 주인은 삼각김밥을 매대 원래 위치에 갖다 놓는다. 온몸의 힘이 빠진 지현은 더 이상 아무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 cc tv”좀 보죠, 라는 말에 아르바이트 생이 조소를 흘리며 대답한다. 그러다 진짜 경찰서 간다며.

한번만 봐준다는 편의점 주인의 말을 뒷통수에 꽂으며 지현이 편의점을 나서는데 왼쪽 골목에서 스쿠터 한 대가 막 커브를 틀다 그녀를 치듯 스치고 간다. 놀란 지현은 그대로 아스팔트위에 주저앉는다. 겨우 가슴을 진정시킨 지현이 절뚝거리며 일어나는 순간 그녀의 기억을 스치는게 있다. 편의점 안에서 10대로 보이는 남학생 하나가 계속 자기 곁을 맴돌던...그놈이 그랬구나, 하곤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서려 하다 그녀는 포기한다. 도대체 일면식도 없는 나한테 왜 그런짓을 했을까, 그게 의문으로 남는다. 내가 가한 해가 없는데 왜 나를 절도범으로 몰아가게 했는지 그 이유없는 ‘악의’에 그녀는 아연실색한다. 그러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내가 좀 급해서 그러는데 500만 안될까?”

2년 넘게 연락이 없던 주영은 만나자마자 대뜸 돈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돈이 어딨다고”

지현은 주영이 맘대로 주문한 비싼 생과일 쥬스를 홀짝이며 한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말한다.

“너...퇴직금 있잖아”

주영의 그말에 지현은 들고 있던 주스잔이라도 끼얹고싶다는 쌩각을 한다.

“그게 얼마라고...나 그리고 지금 직장도 없어. 구할때까지 그걸로 견뎌야 해” 라고 지현이 아무리 말을 해도 주영은 끈질기다.

“그럼 300만” 하며 주영은 금액을 낮춰서 , 마치 자기돈인양 내놓으라는 식이었다. 그런 주영을 떨쳐내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못났다고 생각하면서도 지현은 결국 돈300만원을 현장에서 주영의 계좌에 이체하게 된다.

“기집애,이건 내가 낼게”라며 주영은 돈을 받자마자 쥬스값도 계산하지 않고 까페를 나간다.

유리벽 너머로 멀어지는 주영을 보다, 지현은 그가 보고 싶어진다. 기정.2년전 은행 동료 G.의소개로 알게 된 사별남이었다. 아내가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떴다고 했다. 아이는? 지현이 물었으나 그것까진 모르겠다며 직접 물어보라고 G는 대답했다.

기정은 삽화가라고 했다. 그 전엔 고득학교 미술선생이다가 아내가 죽자 퇴직하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사별남이라는 이야기에 지현은 적잖이 망설였다. 그러다 자기 나이도 적지않음을 깨닫고, 사람 하나 괜찮으면 된다,고 마음먹고 그와의 만남을 결심했다.


“유밤암 3기였어요. 너무 늦게 발견했죠”라며 기정은 죽은 아내 이야기를 꺼냈다. 미술을 한 사람답게 전체적으로 실루엣이 섬세하고 여리다는 인상을 지현은 받았다. 지현이 조심스레 , 아이는 없냐고 묻자 기정은 대답대신 애매한 미소한 흘린다. 있으면 있다고 할텐데 아마 없나보다,생각한 지현은 아이없는 사별남,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날저녁 한정식 값을 기정이 계산하면서 다음엔 그냥 라면 먹어요, 내가 돈이 없어서,라며 씩 웃었다. 그의 미소가 해맑다고 지현은 느꼈다.

그이후로 지현과 기정은 가랑비에 옷젖듯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들고 기정은 갈 데가 있다며 지현을 끌고 서울 근교로 차를 돌렸다. 어디 가는거냐는 지현의 물음에 기정은 가보면 안다고만 했다.

그렇게 둘이 도착한 곳은 근교 아담한 납골당이었다. 그곳에서 지현은 암으로 세상을 떴다는 기정의 전처를 만나게 된다. 납골함 속 그녀는 헤어밴드를 하고 있었고 치아가 가지런한 미인이었다.

“부인이 미인이셨네요” 하자 기정은 그런가요? 하며 두눈을 꾹꾹 눌렀다. “애기가 있었으면 이뻤을텐데”라고 지현이 말을 잇자 기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없는게 확실하다고 지현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렇게 2년동안 기정과 지현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만남을 이어갔다. 기정의 방은 온통 그림으로 가득했다. 화가의 방, 이 맞다고 지현은 생각한다. 문학이니 미술 따위엔 조금도 관심없이 지내온 자신의 각박함을 되새기는 그런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정의 방에서는 라벤더 향이 은은히 풍겨나왔다. 요란하지 않은 향이라 좋다며 기정은 여기저기 라벤더 방향제를 놓아두었다. 창가, 식탁, 침대 머리맡에 까지...그렇게 둘은 라벤더향에 취해 한몸이 되었다. 그리고는, 첫 섹스를 끝낸뒤 기정은 말했다. 우리 끝까지 이렇게 살자,라고.


그렇게 둘의 2년은 큰 파란없이 흘러갔고 이따금 기정은 점심 무렵 직접 싼 도시락을 갖고 지현의 은행을 찾곤 했다. 둘은 근린 공원에서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 언제 이런걸 다 쌌어? 지현이 좋아하면 기정은 백수가 이런거나 하는거지,라며 짐짓 으스대곤 하였다.

기정은 남자손이라 할수 없을만큼 요리에 능했다. 특히 흐트러짐 하나 없는 완자를 볼때면 지현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러는데 어느날 기정이 아산에 계신 부모님을 뵙자고 했다. 둘의 관계가 무르익었을때라 지현은 큰 거부감이 없었지만 지현의 부모는 안된다고 반대했다. 차라리 이혼이 낫지 사별은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며. 예전 배우자에 대한 그리움이 내면 가득하다면서, 왜 그런 남자를 만나냐는게 그 이유였다. 그런 부모가 걸려 지현은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말에 기정은 처음엔 낯빛이 어두웠지만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러자고 했다. 고마운 사람,이라고 지현은 생각했다.



잘못 날아온 합격문자며 편의점에서 절도범으로 몰린일, 그리고 편의점 앞에서 스쿠터에 치일뻔하고 친구 주영에게 돈300만을 떼었다는 이야기에 기정이 슬며시 웃는다.

“그런 날인가 보네” 라며 자리를 옮겨 지현 옆에 와서 앉는다.

“우리 2주만인거 알어?” 기정이 부드럽게 지현의 어깨를 한팔로 안아준다. 그랬다. 이 남자의 품은 언제나 포근했고 그래서 지현은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안전할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다 털어버려. 내일 무쟈게 좋을라고 그런거니까”라며 기정이 그녀를 다독인다. 그러면서 “우리 언제 해?”라고 물어온다. 지현은 무슨 말인가 싶어 응?하고 되묻고, 언제까지 이렇게 만나기만 할거냐,고 기정은 짐짓 툴툴대는 시늉을 한다.

아, 결혼이야기구나, 지현은 그제야 깨닫고, 그냥 하지 뭐,라고 나이브하게 대답한다. 그말에 기정의 얼굴이 일순 밝아지며, 그럼 누구좀 만나볼래?라고 물어온다. 누구? 지현이 되묻자 있어 누구,라며 기정이 대답한다.

그렇게 까페를 나온뒤 지현은 기정이 끄는대로 따라간다. 기정은 그날따라 조심해서 차를 몬다. 왜 그래? 귀한 분이잖아 자기,라며 기정은 빙긋이 웃어보인다. 그렇게 도심을 벗어난 차는 인천으로 향한다. 경인 고속도로를 타는 지현은 바다라도 보러가는 줄 안다. 물 보러 가는거야? 라고 묻자 기정은 물도 보면 좋지,라며 말끝을 흐린다. 그렇게 차는 계속 달려 어느 유치원 앞에 멈춘다.

여긴 왜? 지현이 묻자, 잠깐만, 하며 기정이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간다. 무슨 일일까, 하며 지현도 내려 주위를 둘어보는데 잠시후 기정이 웬 아이 손을 잡고 걸어나온다. 순간 지현은 뒷걸음친다. 아이가 있었구나...

“우리 막내. 민이”라며 기정은 지현에게 막내 민.을 소개시킨다. 지현은 애써 당황한 빛을 감추려 애쓰지만 이미 기정은 그런 지현의 속내를 알았다는 듯이 시선을 돌린다.

“안녕” 애써 마음을 추스린 지현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이는 처음엔 낯을 가렸지만 이내 지현이 내민 손을 잡아온다. 작고 통통한 아기손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러면서 민.에게서 영정속의 그녀를 찾아본다. 뚜렷한 눈매며 시원한 입매가 영락없는 모자간이라고 결론내린다.

‘“민이 이쁘네” 하자 민이는 금방 마음을 열어 안아 달라고 지현에게 두팔을 벌린다. 지현은 그렇게 기정의 아이를 품에 안는다. 아이는 지현의 목에 작은팔을 두른다. 그렇게 한낮의 열기 속에 둘은 밀착한 채로 한참을 있는다.

“ 아줌마 더워”“하며 기정이 아이를 지현으로부터 떼어놓자 아이는 다시 지현의 손을 잡으며 , 우리집에 가자,며 지현의 손을 끈다. 그말에 기정은 잠시 좌불안석이 된다. 그틈을 놓치지 않은 지현이 물어온다. 왜 ,냐고.

그렇게 민.을 키워주고 있다는 외가에 가게 된 지현은 거기서 완.이라는 기정의 둘째와 마주하게 된다. 완.과 어설프게 악수를 나눈 지현은 더 있을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기정의 전 장모가 내어주는 수정과를 반쯤 마셨을 때 밖에서 ’학교 다녀왔습니다‘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자아이였다. 순간 지현의 가슴은 무너져내린다. 희.라고 기정은 아이를 지현에게 소개한다. 우리 첫째.


지현은 저녁까지 먹고 가라는 아이들 외조모의 간청을 뿌리치고 초저녁 그 집을 나선다.

”화났어?“ 기정이 뒤따라 나오며 물어온다.

10여분을 아무말 없이 허공을 바라보던 지현이 말한다.

”아이 얘기 왜 안했어요? 내가 여러번 물었는데“

그러자 기정은 , 너를 놓칠까봐 그랬다며 아이들은 계속 외가에서 키워주기로 했다,며 어설프게 변명한다. 그러면서 지현을 안으려고 한다. 그런 기정을 밀쳐내고 지현은 마침 지나가던 택시 한 대를 불러세운다.

같이 가자는 기정을 뒤로 하고 지현은 그렇게 서울로 향한다..


그리곤 다늦게 집앞에 도착했을땐 어느새 기정이 먼저 와 있는게 보인다. 택시비를 치르려고 하자 기정이 와서 대신 내준다. 그렇게 인천 택시는 밤을 가르며 방향을 돌려 단지를 나간다. 아이 얘기 안한건 미안했어,라며 기정이 와락 지현을 안는다. 그순간 지현의 눈에선 참았던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널 놓칠까봐,라는 말만 기정은 계속 한다.

그러자,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지현을 스쳐간다. 애가 하나면 어떻고 셋이면 어떠랴,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 애엄마가 힘들었겠다. 셋이나 놔두고, 라고 울먹인다. 그러자 기정은 발끈해서 , 그련여자가 지 목숨을 지가 끊어?라고 화를 낸다.

이건 또 무슨 얘긴가 싶어 지현은 기정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암이었다며...하자 기정은 더 이상 수습할수 없음을 깨닫고, 자포자기한 얼굴로 그녀가 약물중독으로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지현은 자기가 딛고 있는 땅이 밑으로 꺼지지 않는다는게 신기할 정도로 충격에 싸인다. 기정은 이젠 끝났다고 판단했는지, 결혼생활 동안 자기가 했던 계속된 외도 이야기까지 한다. 그래서 학교까지 잘렸다며. 지현은 차마 더 이상 들을수 없어 그를 남겨두고 아파트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남편의 외도로 자살을 택한 그녀의 해맑은 미소,라는 모순된 이미지가 그녀를 마구 흔들어댔다. 사기 아닌게 없어...



그리고는 승강기 버튼을 눌렀으나 기계는 고장 났는지 꼼짝도 앉는다. 할수 없이 힘이 풀린 두다리로 10층 자기집까지 걸어 올라간 지현은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도어락 숫자를 누른다. 이제 문이 열리면 모든걸 잊고 시원한 샤워를 하리라는 생각만 한다. 그런데 문은 열리지 않는다. 비밀번호를 착각 했나 싶어 이것저것 눌러봐도 기계는 계속 ”삑“소리만 내며 그녀를 거부했다.

오래 쓰셨네, 하며 열쇠기사는 도어락을 살피며 말한다. 이것도 다 수명이 있어요. 바꾸셔야겠네, 라며 알아서 준비해온 카탈로그를 펴보인다. 지현의 눈엔 죄다 비슷해보였고 그것들 차이를 분별해낼 힘도 없었다. 그냥 중간거로 해주세요. 라고 하자 기사는그것마저 이미 알고 왔는지 가방에서 새 도어락을 꺼낸다. 일단 이거부터 뜯구요, 하며 전동기기로 기존 도어락을 요란하게 뜯어낸다. 지현은 그 소리마저 피곤해 저만치 복도 난간으로 가서 바깥 풍경에 눈을 준다. 그러다 생각난 듯 아래를 내려다보면 더 이상 기정의 차는 보이지 않는다. 온 도시가 자기를 공격했던 하루였다 생각한다.

그순간 이정도 높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그녀를 스친다. 실패할 확률은 없는것이다.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고 난간밖으로 몸을 내민다.

그순간,다 됐다는 기사의 목소리 구원처럼 들려온다. 지현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현관 센서등이 커져 집안은 환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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