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crazy>

왜 나를 살렸어요

by 박순영

달리는 영민의 차에 웬 여자가 뛰어든다. 그가 놀라서 브레이크를 밟았을땐 여자는 이미 쓰러져있다.어느새 행인들이 모여든다.

“이봐요, 정신차려요!” 영민이 쓰러진 여자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려도 여자의 감긴눈은 떠지질 않는다. 얼른 병원으로 옮기라는 누군가의 말에 영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화버튼을 누른다.

일단 정밀 검사를 했으니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응급실 담당의가 식은 땀을 흘리는 영민에게 말한다. 여자가 영민의 차에 뛰어든 것을 보았고 부딪치지 않은채 그대로 쓰러졌다고 진술해준 행인덕분에 영민은 경찰 조사를 피할수 있었다.


“지금으로 봐선 큰 외상은 없고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은거 같다”고 담당의는 말한다. 이 여자는 왜 그랬을까...하며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여자를 영민은 물끄러비 본다..그러다 퍼뜩 스치는 생각이 난다. 윤서의 연주회가 거의 끝나갈 즈음이라고 영민은 생각하고 서둘러 응급실을 나가다 문득 멈춘다. 저 여자를 그냥 혼자 내버려두고 나갈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윤서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끝내자 커튼콜이 쏟아진다. 이 순간을 위해 윤서는 2년을 기다려왔다. 윤서는 쇼팽 한곡을 더 연주하고 무대를 나온다. 두리번거리지만 영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왜지?하며 소은이 전화를 확인하자 영민에게서 문자가 와있다. 미안, 급한 미팅이 잡혀서 오늘 못갔다고. 윤서는 내내 서운해하며 홀 밖의 자기 차로 간다. 영민에게 전화를 걸지만 영민의 전화가 꺼져있다는 자동안내만 흘러 나온다. 정말 급한 미팅인가보다, 하며 윤서는 연주복 차림으로 시동을 건다.

여자는 새벽녘에 눈을 뜬다.

“이제 좀 정신이 나요?” 영민이 걱정스레 물어온다.

여자는 잠깐 주위를 살피더니 “왜 나를 살렸어요”라며 흐느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럼 못써요”라며 영민이 아이를 야단치듯 그녀를 꾸짖는다.

여자는 계속, 갔어야 하는데...라며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때 담당의가 와서 검사 결과 큰 이상은 없다며 좀 쉬다가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남기고 간다.


싫다는 여자를 기어코 자기 차에 태운 영민은 그녀의 집을 묻는다. 하지만 여자는 아무말도 않고 텅빈 눈길을 창밖으로 던진다. 이 여자, 버림받은 것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다시한번 여자가 말한다. 왜 날 구했냐고....

어디가서 뭘좀 먹자고 영민이 제안한다. 그리고는 마침 눈에 들어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앞에 차를 세운다. 여자는 의외로 순순히 따라내린다.


디저트로 나온 커피를 마시며 영민이 조심스레 묻는다. 자기가 생각하는 그런게 맞냐고. 그러자 여자가 커피 한모급을 마신뒤 대답한다. 가정이 있는 남자라고. 지독한 연애를 했겠구나, 영민은 생각한다. 정말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다시 묻자 여자는 감사하다며 그만 가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여자가 일어나려고 하자 영민이 이소은씨! 하며 부른다. 제이름은 어떻게?라는 표정을 소은이 짓자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료진이 그녀의 휴대전화를 열어봤다는 것이다. 그때 이름을 알았다고...그녀는 뚫어지게 영민을 쳐다본다. 또다시 왜 자기를 살렸냐고 그녀는 원망하고 있다고 영민은 생각한다.

“뭐야, 꼭 온다구 약속해놓구”라며 윤서는 영민에게 눈을 흘긴다. 미안, 급했어...무슨 바이어가 사전 약속도 없이...하다, 자기 딴짓하고 거짓말 하는거면 알아서 해,라며 윤서는 영민의 목에 자기 팔을 두른다. 그러는 윤서의 입술에 영민은 짧게 입맞춤을 한다.


이소은...이라고 영민은 계속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쓰고 있다..그러다 알아차리고는 내가 뭔짓을 하는거지?하고는 종이를 구겨버린다. 그녀의 전화번호도 아는데 전화 한통 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번 소은은 허름한 골목 입구에서 내려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 어디쯤이 소은의 집이라고 생각돼 인터넷으로 다시한번 그 동네를 검색하다 영민은 그녀의 말을 떠올린다. 가정이 있는 남자였다는. 영민은 일면식도 없는 ‘그놈’에게 질투를 느낀다.


소은이 다 낡은 철대문을 열고 나온다. 잘있었어요? 라며 영민이 사온 과일바구니를 내민다. 소은은 얼떨떨해한다. 왜 여기는...하며 그녀는 어정쩡해하며 과일을 받아든다. 이제 좀 나아졌어요? 영민이 묻자 소은은 들어와서 차 한잔 하시겠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소은은 커피를 한잔만 타서 영민에게 내밀고 삐딱하게 사선으로 앉는다. 내가 실례된건 아닌가요? 물으면서도 영민은 대단한 결례라는걸 느낀다. 그럼에도 자기 차 앞에서 소은이 쓰러진 이후 그녀가 계속 눈에 밟혀 도통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비로소 소은은, 그날은 고마웠습니다.라며 조심스레 영민과 눈을 맞춘다. 그녀의 눈두덩이 부어있다. 영민이 조심스레 말한다. 잊으라고. 곧 좋은 사람 생길거라고. 그러자 소은은 민망해한다.

윤서의 부모는 12월이 어떻냐고 영민에게 물어온다. 윤서가 겨울 결혼을 원한다며 추울텐데,라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12월이라면 몇 개월 남지 않았다고 영민은 그저 막연히 생각한다. 윤서는 대학 선배 J가 소개해서 만났다. 예술 중고를 졸업하고 유학을 갔다왔다고. 윤서는 첫날 단아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이 여자면 된다,라는 생각에 영민은 그날 바로 청혼했고, 나 잘 알아요?라며 윤서는 살짝 비아냥거리면서도 싫지 않은 눈치였고 그렇게 둘은 만난 첫날 함께 밤을 보냈다.

다음날 윤서가 강의한다는 G대학 앞에 윤서를 내려주고, 손 흔들며 교정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둘이 딸을 낳으면 이쁘겠다는 생각을 영민은 했다.


윤서와 드레스를 함께 보러 가기로 한 저녁, 영민은 잔업을 처리하다 문득 소은 생각이 난다.그녀는 정말 괜찮은걸까...그리고는 윤서가 하이넥 드레스로 최종 결정하자, 회사 일이 남았다며 그녀와 헤어져 소은의 동네로 향한다. 왜 이여자는 잊히지 않는걸까..왜 ‘그놈’을 난 질투하는걸까....예의 그 언덕길을 다 올라 그녀의 철대문이 가까워졌을 때 영민은 소은과 한남자가 마주 서 있는게 보인다. 영민은 자기도 모르게 담벼락 사이로 몸을 숨긴다. 아마 저놈인가 보다,영민은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불도 붙이지 않고 입에 문다.


소은과 남자는 서로 다투고 있었다. 그러다 소은이 남자를 붙들고 애원하는 모습이 영민의 눈에 포착된다. 하지만 남자의 태도는 냉랭하기만 하다. 영민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퉤 내뱉고 둘에게 재빨리 걸어간다.

뒤늦게 영민을 본 소은은 놀란 얼굴이 되고 그런 소은의 표정에서 심상찮음을 느낀 남자가 고개를 돌려 영민을 본다.

나쁜자식,하며 영민이 주먹을 날린다. 영문도 모른채 가격당한 남자는 그대로 나동그라지고 소은은 순간 사납게 표정을 바꾸며 영민을 쏘아본다.. 그리고는 쓰러진 남자를 부축하며 괜찮아요?라고 한다. 씨발....하며 남자가 소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다.

너 뭐야? 하고 남자가 영민 가까이 선다. 남자는 입가가 터져 피가 흐르고 있다. 피부터 닦아, 하면서 소은이 남자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려한다. 그 모습에 발끈한 영민이 남자 들으라고 , 소은이 자기 차에 뛰어들었던 이야기를 한다.




남자는 그 사실을 몰랐는지 정말이냐는 표정으로 소은을 바라본다.. 그말에 소은은 ,들을 필요없어, 하고는 남자를 끌고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영민앞에서 철대문이 무심하게 닫혀버린다.



예물을 고르면서도 영민의 마음은 온통 소은에게 가있다. 자기 왜 그래? 라고 여러번 윤서가 묻지만 영민은 차마 소은의 이야기를 할수 없다. 족히 1억원어치는 되는 예물 고르기가 끝난자 윤서는 두달전 둘이 같이 계약했던 그 집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집은 강남 한복판의 고급 빌라였다. 둘은 그렇게 그 집으로 차를 몬다. 그러면서도 영민은 윤서에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무슨 일 있어?라며 윤서가 묻는다. 좀 피곤한 일이 있어...라며 윤서를 보자 윤서의 얼굴이 금방 어두워진다. 빈집은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중이라 어수선했고 영민은 어서 빨리 혼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왜 자꾸 오시는 거죠?”소은이 불쾌해하며 영민을 나무란다. 하지만 딱히 대답할 말이 없는 영민은 무조건 그녀의 손을 끈다. 어디 가는데요? 소은은 계속 묻지만 영민은 아무말 않고 그렇게 언덕을 내려간다.

강제로 차에 태워지다시피 한 소은은 계속 어디 가는거냐고, 왜 이러냐고 물어온다. 그말에 영민은 바람이나 쐬자,며 시동을 건다. 소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달리는 차 문을 열려고 한다. 영민은 그런 그녀를 가까스로 제어한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거예요!" 하고 소은이 소리친다.

“모르겠어”하고 영민은 낮게 웅얼거린다. 자기도 모르겠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그놈 잊어요 그만”하고 영민이 그녀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한다. 댁이 뭔데?라며 소은이 발끈하자 , 다 지나가게 돼있다.고 영민은 말한다. 결혼하셨나요? 라며 소은이 묻자, 아직, 이라고 대답하면서 영민은 윤서에게 왠지 미안해진다. 둘의 결혼이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영민은 이 결혼을 물리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신 유부남하고 얽히지 말아요. ”라며 영민은 친구 혁기를 떠올랐다. 혁기는 부하직원과 외도하고 무참하게 버린걸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양 떠벌렸다.

“유부남들 쉽게 이혼하지 않아요”라고 영민은 덧붙인다. 그말에 소은은 점점 더 기가 막힌 얼굴이 돼간다. 그렇게 목적지도 없이 한참을 달리다 영민이 소은에게 말한다. 당신 사랑합니다. 그말에 소은은 고개를 돌려버린다.


“자기 요즘 계속 이상해”라는 윤서의 말에 영민은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좀 피곤한 일이 있었다고 늘 하는 대답만 한다. 글쎄 그 피곤한게 뭔지 내가 알면 안돼?라고 윤서가 물어온다. 영민은 그냥...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대답한다. 그런 영민의 대답에 윤서의 얼굴이 굳어지며 ,자기 여자 있어?라고 묻는다.


그렇게 소은에게 고백한 뒤 영민은 차를 갓길에 세웠다 .그리고는 그녀를 안으려 했다. 저항하던 소은은 포기했는지 영민이 하는대로 두었다.널 좋아해. 나도 뭔지 모르겠는데 너한테 자꾸 끌려, 영민은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그러자 소은이 이야기했다. 원래 자기남자였다고. 그러다 어느날 자기 몰래 결혼을 해버렸다고..이혼하기로 하고 다시 만났는데 와이프가 둘째를 임신했다며 헤어지자고 한다고...소은이 와이프를 만나겠다고 하자 하루가 멀다하고 집으로 와서 자기를 설득하는 거라며 그녀는 흐느낀다. 그런 소은의 안으로 영민은 깊숙이 들어간다.


“그런 일이 있었어?"윤서는 어떤 여자가 영민의 차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자기 놀랐겠다,하며 그녀는 테이블위 영민의 손을 잡는다. 영민은 지금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여자 어뜩해,하며 소은이 스테이크를 썬다. 윤서야, 하고 그가 힘들게 입을 연다. 응? 하며 윤서는 천진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영민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완파된 차안에서 싸늘하게 시신으로 변해버린 윤서를 끄집어내며 경찰이 묻는다. 마지막 통화자가 영민이었다며 둘이 무슨 사이였냐고.


소은의 이야기를 하며 헤어지자는 영민의 말에 윤서는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레스토랑을 나갔다. 영민은 못할짓을 했다는 죄책감과 이제 소은에게 갈수 있다는 기대감 사이에서 갈등하다 소은에게 전화를 했다. 가겠다고. 지금 가겠다고. 그말에 소은은 대답대신 울먹거리기만 했다. 그렇게 소은에게로 향하던 영민의 전화가 도중에 요란하게 울려댔다. 낯선 번호에 영민은 순간 불안해진다.


영민은 경찰에게 약혼한 사이였다고 대답한다. 경찰은 더 이상 영민을 의심하지 않고 젊은여자가 왜 ...하며 시신을 시트로 덮어 꽁꽁 싸맨다. 마주 오던 대형 트럭을 정면으로 들이받고 윤서는 갔다고 한다. 다행히 트럭 운전수는 무사하다며 경찰은 영민에게 동행을 요청한다. 영민은 그렇게 앰뷸런스에 윤서와 나란히 태워지고 차는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으로 향한다. 그 소리를 들으며 영민은 무언가 윤서에게 할말이 있다고 생각 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말이 되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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