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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Jul 31. 2023

소설 <문밖의 남자>

수연은 잘못 온듯한 규원의 메시지를 다시 읽는다.

"걔가 안잊혀...하지만 연락을 할수가 없어 내가 너무 잘못한게 많거든"


수연은 둘 사이가 끝난 뒤에도 연락처며 메시지창을 삭제하거나 닫지 못한채 3년을 흘려보냈다.그동안 두어번의 짧은 만남들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마법처럼 관계는 해소되고 헤어지곤 했다.

그에 반해 규원과는 같이 살기까지 했고 주위에서는 다들 결혼까지 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규원이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뒤부터 둘의 사이는 냉각기에 접어들었고 급기야는 돈 얘기가 떠오르면서 그 짐을 수연에게 지우려는 규원과 수연은 하루가 멀다하고 다투다 결국 결별을 택했고 바로 그날 저녁, 퇴근한 수연은 방에서 규원의 짐들이 말끔히 치워진걸 목격했다



그리고는 3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따금씩 메시지창에 들어가봤지만 규원으로부터는 마침표, 쉼표 하나의 소식도, 언급도 없었고 그런 규원이 야속해 수연은 몇번씩이나 문장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기만 할뿐 보내기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규원의 손때가 잔뜩 묻어있는 그의 게이밍 의자를 내다버렸다.



수연이 잘못 온듯한 규원의 메시지를 곱씹으며 되풀이해서 읽고 있는데 추가 메시지가 날아왔다.

"아이구. 내가 잘못  보냈네. 친구한테 보낸다는걸..."

"걔"가 자기일것 같다는 생각에 수연의 가슴이 쿵쾅거린다. 3년 동안 규원은 자기를 기억하고 그리워했다는 말이지 싶다...

해서 그녀는 망설이다 용기를 내서 답문을 작성한다.

"잘 지냈어?"

그러자 한동안 뜸을 들인뒤 규원으로부터 답문이 왔다.

"결혼은 했구?"



둘은 예전에 자주 가던 홍대 근처 그 까페에서 보기로 했다. 수연은 들어온 온라인 주문들을 서둘러 처리하고 택시를 잡아 타고 홍대로 향한다. 점멸하는 초저녁 도심의 불빛들이 수연을 몽롱한 환각속에 빠트린다. 규원은 많이 변했을까?


"왜 여태 혼자야? "

직원이 까페라떼를 놓고 가자 한모금을 들이킨뒤 규원이 내뱉은 첫마디가 이랬다.

"그냥...마땅한 사람도 없고"

"연애는 했구?"

그 질문에 수연은 대답대신 커피잔을 두손으로 살짝 감싸쥔다.

"연애는 했구나..."

"지금 뭐해?"

"응...아는 선배가 조그맣게 무역회사를 해. 거기서 그냥...이것저것. "

"좋아보인다...그때보다는"

" 그땐 내가 넘 어렸어. 엉망이었고. 나같은 놈이 무슨 사업을 하겠다고"


수연은 규원의 달라진 헤어스타일에 눈이 간다. 그는 전과 달리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다.

"머리는 왜 그렇게 짧게 자른거야?"

그말에 규원이 대답대신 빙긋이 웃는다. 

"잘 봐..."하면서 그가 자기 얼굴을 수연 앞으로 바싹 들이댄다. 순간 수연은 움찔한다. 뭘 보라는 말인가...

"머리 벗겨지고 있잖아.."하며 규원이 쑥스러워한다.

우리가 서른을 넘어섰구나 벌써.

그런 생각을 하자 수연은 철없었던 둘의 만남과 짧았던 동거가 아득한 꿈처럼 여겨진다. 더이상 애증이나 앙금따위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자기 사업하고 싶지 않아?"

"이젠 그냥 밥만 굶지 않고 살면 된다는 생각이야...

 미안했다 그때 돈타령을 해서...

 너도 힘들었는데"


그러는 규원의 어깨가 축 늘어져있는걸  수연은 뒤늦게 깨닫는다. 

"우리 어디 가서 저녁 먹을까?"

규원의 제안에 수연은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그날 이후로 수연은 주문품을 확인하고 발주를 하면서도 내내 규원의 연락을 기다린다. 둘이 해후한 지도 일주일이 넘어가는데 규원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없다. 어쩐지 그렇게 끊어져서는 안되는 사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자기 쪽에서 먼저 다시 보자는 말은 죽어도 하기가 싫었다. 그러면서도 이 갈급함은...




그러고 있는데 이틀후 새벽, 에릭사티의 짐노페디 컬러링이 감미롭게, 몽환적으로, 자는 수연의 고막을 자극한다. 그녀는 거의 반사적으로 눈이 떠지고 혹시,  하면서 얼른 폰 액정을 들여다본다. 역시 규원이었다. 그는 술을 좀 마신듯 했다. 3년전 그렇게 헤어지고 너를 하루도 잊은 적이 없노라며 그는 울먹이기까지 햇다.

"어디야?"

"니 집앞"


맨발로 원룸 건물 앞으로 뛰쳐나오는 수연을 어둠속의 규원이 끌어다 강하게 입을 맞춘다. 널 이렇게 안고싶었다며...



사흘후, 규원은 만기가 다 된 자기 셋방을 비우고 전처럼 수연의 방으로 짐을 들인다.  

"이젠 헤어지지 마 우리"

그날밤 규원의 품에서 수연은 울면서 속삭인다.


부산 출장이 급히 잡혀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규원의 전화를 받고 수연은 속옷이라도 챙겨다주고 싶다.하지만 그 마음을 먼저 알아차린 규원이 혹시 몰라 사무실에 간단한 속옷은 비치해놨다며 그런 수고는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런 그의 준비성이 수연은 조금 야속하기도 하지만 1박 2일의 일정이라니 하루만 규원없이  지내면 되는 것이어서 참기로 한다.



규원은 밤이 다돼 도착한 부산 밤바다 사진을 여러장 폰으로 전송했다. 

예전에도 규원은 이렇게 먼곳에 가게 되면 꼭 풍광을 폰으로 보내주곤 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니가 같이 왔어야 하는데...


다음날 저녁 귀가한 규원은 풀이 죽어 저녁도 먹는둥 마는 둥했다

'갔던 일이 잘 안됐어?"

"그게 아니고 차가..."

"차?'


그러고보니, 며칠전 규원과 함께 동대문 밤쇼핑을 가던길에 탔던 규원의 경차가 고물차 수준의 굉음을 내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규원이 했던 말도 떠오른다. 이거 팔면 50준다는데....


"차가 왜..."

"짜부러졌지 뭐. 그래도 다행이야. 서울 올라와서 그렇게 됐으니..."

"그럼 어떡해?"

"없는대로 사는거지. 아님 회사차 쓰거나.."


하지만 규원은 그날 이후로 꺼떡하면 새 차 타령을 했다. 꼭 신차가 아니어도 좋으니 중고라도 쓸만한게 필요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자기 적금 만기 되면 사면 되겠네"

수연이 이렇게 거들면

"그게 언젠데..그때까지 어떻게 차없이 지내냐"라며 타박을 하곤 했다.

그러더니 밤새워 중고차 사이트를 드나들며 이것저것 캡처를 하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수연은 자못 불안해진다. 3년전, 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수연에게 돈을 마련해달라고 떼를 쓰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이번에도 그러는게 아닌가 싶어 가능하면 차 이야기는 피해가며 대화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떤 말끝에도 결론은 "차"로 귀결되곤 했다. 규원은 자그만 suv하나만 있으면, 하고 아예 노래를 부르다시피 했다.

" suv는 아무리 싸도 최소, "

"알지. 내 주제에 무슨 suv. 경차도 감지덕지지"

그리고는 한동안 끊었던 소주며 담배를 다시 하기 시작하는 그를 보며 수연은 아득해진다...한번 내뱉은 말은 어떻게든 충족시키려고 하는 규원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해서 어느날 밤, 그녀는 술에 취해 골아 떨어진 규원의 옆에서 취침등을 켜고 폰으로 중고차 사이트를 들어가 본다.

아무리 싸도 쓸만한건 돈1000에 가까운suv시세를 보며 큰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야, 우리 일단 이삼백하는 경차부터"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규원이 그녀의 말을 막는다.

"차 필요없어 두다리 멀쩡학고 낮에는 회사차로 이동하고 출퇴근은 대중교통 이용하면 되지"

그러고나서 규원은 한껏 풀이죽은 모습으로 넥타이를 두르며 출근길에 나선다.



"한 1,2년만 경차 타자. 그리고..."

"차 필요없다니까"

1주일째 수연의 몸엔 손도 안대온 규원은 귀찮다는 듯이 등을 보이고 누우며 이렇게 말한다.

"경차, 나중에 나 주고..나도 어차피 장사 하는데 차 없으면 불편하고."

그녀가 계속 경차를 언급하자 화가 난듯 규원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앉는다.

"바보야, 니가 차를 몰라서 그래. 서로 박치기라도 하면 경차는 흔적도 없어"

그말에 수연은 눈물이 그렁해진다.

"내가...내가 지금 돈이 안돼서 그래. 연말엔 좀 들어올거 같은데"

"내가 니 기둥서방이냐? 너한테 차를 내노라고 하게?"

그리고는 그는 파자마 차림으로 밖으로 나가버린다. 추울텐데...겨울바람이 쌩하니 수연의 가슴을 할퀴고 간다.



"어디서 이 돈을 마련했어?"

수연이 내놓은 돈다발에 규원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는다. 못믿겠나는 듯, 돈을 세어보면서, "이게 진짜 1000이야?"라고 되묻기까지 한다.

언니한테 좀 빌렸어..연말에 돈 들어오면 갚기로 하고.

수연의 언니 수진은 지방에서 작게 북까페를 하고 있다. 규원이 예전에 '처형'이라고 넉살좋게 부르던 그녀는 수연이 규원과 다시 살림을 합쳤다는 말에 처음엔 당황해하고 야단도 쳤지만 한번 끊어진 인연이 다시 만났으면 결혼으로 가나보다, 하는 심정으로 돈 1000을 준 것이리라.


차는 남도 어디쯤에 있는 걸로 떠있다.  딜러와 몇번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다음 결심이 섰는지 규원은 밤인데도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는다. 

"날 밝으면 내려가"

"안돼. 내 눈에 좋은건 남의 눈에도 좋은거야. 그러다 놓쳐"라며 그는 당장 내려갈 기세다.

"같이 갈까?"

"뭐할러? 자 더. 내려가서 전화할께"

"그래두...같이 가구 싶은데"

"자라니까.."

하고는 그는 코트를 걸치며 문밖으로 뛰쳐나간다. 그 열린 문틈으로 겨울 찬바람이 다시한번 휘몰아친다..



그렇게 규원이 남도로 차를 사겠다고 돈 1000을 갖고 내려간 지 이틀이 지나도록 그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다. 처음엔  일이 지연되나 보다 싶던 마음이 점차 의혹으로, 의심으로 커져가기만 한다. 수연은 그러다 주문서를 누락시켜 소비자로부터 항의 메시지까지 받아야 했다.


규원의 전화는 내내 꺼져있다는 ars만 흘러나온다. 메시지도 수십통을 보냈지만 읽히질 않는다. 돈 1000에 설마, 하는 마음은, 맞아 돈 1000때문에 날 다시 찾은거야 . 짐짓 메시지를 잘못 보낸척 하고, 로 바뀌고 급기야는 '사기'라는 단어까지 떠오른다. 수연은 벽에 자기 머리를 쾅쾅 찧고 싶어진다. 아니 , 그걸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혼후 딸과 까페하나 운영하며 힘들게 사는 언니 수진의 피같은 돈이 저렇게 속절없이 허무하게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는걸 도저히 인정할수도 하기도 싫었다. 



"언니 어떡해..."

울며 전화를 걸어온 수연에게 수진은 두어번의 깊은 한숨을 내쉰뒤

"할수없지 뭐. 자라"하고는 먼저 전화를 끊는다.

이제 언니마저 나를 안볼거라는 생각에 외로움은 천형처럼 수연의 뇌를 강타하고 겨울밤 속으로 사라져간다. 

그순간, 도어락 비번 누르는 소리가 들린듯하다. 수연은 튕겨져 나가듯 현관으로 향한다. 자기야? 하고는 문을 열어젖히지만 밖에는 아무도 없다. 지나가던 옆집 여자가 힐끔 그녀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고는 걸음을 재촉한다.

문을 닫은 수연은 그대로 문을 타고 스르륵 미끄러져 내린다. 현관바닥에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규원이 돌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였어.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니었어. 하고는 다시 문을 열자, 누군가 계단을 서둘러 뛰어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수연이 뒤따라 내려가지만, 앞서가던 발소리는 어느순간 딱 끊기고 만다...

이대로 여기서 굴렀으면...뇌가 파열돼 피범벅이 된 자신을 상상하며 그녀가 간신히 집앞으로 돌아올 즈음, 닫힌 문에 등을 기대고 서있는 규원의 실루엣이 어두운 복도를 뚫고 인광처럼 수연에게 포착된다.

"왔구나 자기.."

그말에 규원의 실루엣이 수연을 향해 다가선다.

"미안..."


그말에 수연은 그대로 규원의 목을 끌어안고 흐느낀다. 규원은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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