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모디아노 소설 <메모리 레인>리뷰
기억과 그리움의 문제
모디아노는 흔히 기억의 작가로 불린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사라져가는 것들을 아련하게 복원해낸다.그의 작품세계는 우수와 서정으로 가득차있다. 기억은 주인공의 정체성 찾기와 관계있다.
그는 1945년 2차 대전당시 독일의 프랑스 점령이 끝난뒤에 태어났다. 독일 점령기를 겪지는않았지만 그의글은 그 시대와 독특하게 연결돼있다.그리고 유대인이었던 아버지와 ,그의 미덥지 못하고 수상했던 신분과 여러 행적은 그의 글쓰기를 유발시켰고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방치 상태에서 보낸 유년시절은 그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왔다.
모디아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뿌리뽑힌 유대인이거나 은밀한 거래에 가담한 사기꾼이거나 가짜 신분으로 살아가고, 위기에 놓여있거나, 아들을 버리거나, 사회적 도리를 져버린 자로 그려진다. 어머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정하고 냉혹하며 자식을 돌보지 않거나 보호자 역할을 거부한다.
그래서인지 모디아노 소설의 주인공들은 청소년기를 막 벗어나 성인이 되어 ‘이정표도 없는 넓고 막막한 대지처럼 보이는 삶속에 내던져진 듯이 외로운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에게 청춘시절은 ’모든것의 언저리에서 미결인 상태로 불안정했던 시기이며, 절망과 고독속에서 누군가의 따스한 손과 목소리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고 그런 청춘시절을 회상하는 작품중 하나가 바로 <메모리 레인>이다.
1981년 발표된 이 소설의 화자는 청춘시절에 만났던 그룹과 그 멤버 사이에 일어났던 신비로운 ’화학작용‘을 이야기한다. 모디아노 특유의 감성과 우수가 담긴 문체가 돋보이는 기억미학의 결정체라 할수 있다.
이렇듯 모디아노의 소설에서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이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그와 맺어가는 관계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만남은 대부분 방황하는 젊은 남녀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상대를 만나거나, 손윗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그려진다. <메모리레인>은 이렇듯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줬던 ’소그룹‘과 함께 나누었던 시간과 감정, 그런 시간으로 채워졌던 공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차있다.
Patrick Modiano <메모리 레인> 이숲, 2021
이 소설의 화자는 옆 사무실에서 일하는 ‘벨륀’이라는 인물과 친분을 맺는다. 그리고 그의 중개로 나이와 직업과 과거가 매우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소그룹에 합류한다. 그 모임에서 화자에게 「메모리 레인」이라는 노래를 가르쳐준 미국인 더그도 만난다.
화자는 기억속 소그룹과 그들과 함께 했던 그 공간들을 이렇게 추억하는데,“그들은 시월말부터 이듬해 유월까지 비에르종 근처에 있는 그로부아에서 주말을 보내며 나를 그리고 초대했다. 그로부아는 야릇한 건축물이었다. 건물 정면은 희고, 두 개의 로마네스크 양식 지붕은 뾰족했으며, 창마다 차양이 달려있었다. 집을 둘러싼 삼단 벽돌 계단이 버딤돌 역할을 했다. 외관이 솔로뉴 풍경에는 어울리지 않는 집이었다”
그리고 노래 <메모리레인>을 가르쳐준 미국인 더그도 그립다. “어느날밤, 더그는 기타를 치며 우리에게 그의 고향 켄터키의 연가들을 불러줬다...이 노래는 새벽에 지나가는 것을 보았으나 돌아오지 않은 말에 관해 이야기...” 지나가는것을 보았지만 돌아오지 않는게 우리의 인생은 아닐까?
작가 모디아노에게 늘 부재의 존재였던 아버지라는 인물을 그는 콩투르에게서 찾게 되는데,“콩투르는 내게 체스와 브리지 게임을 가르쳐주려 애썼고,나를 테니스 클럽과 뇌이유의 승마연습장에 등록시킬 정도로 마음을 써줬다.그는 내가 댄스도 배우고 운전면허증도 발급받기를 원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닦달할 수는 없었다. 그는 무신경한 내 옷차림에도 심란해했다.어느 가을날 오후 그는 콜리세 거리에 있는 그의 단골 양복점에 나를 데려가 직접 천을 고르고 내게 양복 두벌을 사줬다...나는 그가 나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감동했다.”
그런가하면 미완으로 끝난 정사에 관한 아쉬움도 나타난다.“나는... 나른한듯한 그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았다.어느 오후,나는 그녀를 품에 안았고 그녀의 금발이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폴과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도착하면서 그녀와 나는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아쉽게도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렇게 미완으로 끝난 사랑의 회한은 계속된다. “그녀는 내가 처음부터 자신에게 연정을 품었고,그 점에 감동했다고 말했다...그 오후의 그녀는 기껏해야 서른살쯤으로 보였다. 지금 내가 후회하는 한가지 사실은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폴 콩투르가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이차이? 나이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들렌과 나는 아주 멋진 커플이 될수도 있었다”
그리고는 미국인 더그가 가르쳐준 노래 <메모리 레인>의 가사를 알려준다.
“메모리 레인
말들은 오직 한번만 메모리 레인을 지나가지,
그렇지만 말발굽 자국은 남아있지..”
이렇듯 결국엔 흔적만 남는게 삶임을 모디아노는 이국 (미국)의 노래를 빌어 그려내고 있다.
운명처럼 따라붙는 외로움때문에 사람들은 타인을 필요로 하고 일정기간 그들과 행동을 같이 하지만 결국엔 개개인의 삶속으로 돌아간다. 그렇듯 허망한 삶은 책속에서 이렇게 표현된다.“사람들이 떠나버린 해변에 우리가 모두 남아있었던 그 오후는 우리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존재가 우연히 서로 만나 소그룹을 이룬다. 그랬다가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세월이 흐른뒤 돌아보는 특정시기가 우리에게 주는 우울한 서정과 회한, 그리움은 이렇게 그려진다. “10년 넘게 프랑스를 떠나 있다가 돌아왔을 때 나는 그들 각자의 소식을 전해줄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그들이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알아봤다. 좋지 않은 소식들, 세월이 흘렀음을 절감하게 한 소식들이었다. 남들이 늙어가는 모습을 자주 지켜봤던 나는 이제 내 차례가 돼 청춘시절이 끝났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했다.”
즉, 영원할거 같던 특정 순간도 모두 변화와 퇴행을 겪을수밖에 없다.“그 사이에 ‘소그룹’도 변화를 겪었다. 더그는 심장마비의 희생자가 됐다..어느날밤 , 아무도 모르게 부르동도 떠났다. 어떤 면에서 그는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불확실했던 삶을 완성한 셈이었다...”
모디아노가 기억을 기술할때 그 서정성은 대단하다. 응집된 그리움과 노스탈지아가 한데 어우러져 강하게 분출되는것을 볼수 있다. "가을은 노르웨이 거위의 이동과 함께 왔고 그들은 소일거리를 찾아야했다. 대서양의 바람이 부는 동안, 모래가 텅빈 거리를 서서히 뒤덮는 동안 그들은 ‘마부에’의 거실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체스를 두거나 마디의 음반을 들었다.”
특정순간이 아무리 아름답다한들, 결국엔 죄다 소멸하고 우리의 기억속에, 그리움속에 파편들로 향유될뿐이다.그 아픔을 줄이기 위해 우리 모두 애써 아름다운 순간을 잊으려 하는건 아닐까? 그뒤에 오는 처연한 슬픔의 시간에 대비해?
“우리 중에서는 프랑수아즈가 가장 크게 성공했다...그녀와 나, 우리는 스무살을 함께 맞았다.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아름다웠던 날들을 떠올릴 유일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을 원할까? 때로 우리는인생의 첫 시기를 지배했던 사람들의 소그룹을 잊으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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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k Modiano (1945-)
이렇듯 화자는 그들의 운명을 닮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온정과 허무를 동시에 느낀다. 존재했던 흔적은 누군가의 기억에만, 그들이 머물렀던 공간에만 어렴풋하게 남는다는 것을, 모디아노는 특유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잠시 서로 위로가 되지만 결국은 혼자 남아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말하고 그래서 기억은 곧 그리움으로 치환될수 있는것이다.
모디아노를 처음 접한건 <더 먼곳에서 돌아오는 여자>로 번역된 <잃어버린 거리 (원제)>를 읽었을때다. 계속,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묻고 다니던 극중 화자의 외로움, 불안에 공감하면서 , 참 아득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모디아노의 신간이 나올때면 나름 챙겨 읽은 기억이 있다.
2014년 노벨문학상을 타면서 이제 모디아노는 소수의 매니아층을 넘어 폭넓은 독자층을 갖게 되었다 .
우리가 점점 잊어가는 기억의 문제, 노스탈지아와 회한, 만나고 헤어짐의 서정적 아픔의 문제를 노작가는 아직도 고집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고 그것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