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참여문학의 시작점으로 알려지는 알베르토 모라비아 (1907-1990)의 작품은 실존주의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이중의식을 그려낸다. 반파시스트 문학을 지향해 탄압받은 작가의 문학관과 그 세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순응주의자>를 꼽을 수 있다
현대 이탈리아 소설에는 산업화와 전쟁이 끼친 영향이 잘 드러난다. 즉, 자연주의와 실존주의라는 두가지 흐름이 탄생하고 여기서 바로 네오리얼리즘문학이 나온다. 그것은 전쟁후 가치관의 변화를 겪은 현대인들의 소외감과 자아상실 ,그로인한 관계의 결여와 뒤틀림을 그려내고, 그 주역들은 인간성의 회복과 영혼의 구원, 역사에 대한 질문을 끝없이 던진다.
모라비아 작품속 주요인물은 영리하지만 실존적불안을 나타내는 무능한 부르주아 지식인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기존 체제에 적응하기 위한 헛된 노력을 계속하면서도 권태와 무관심을 드러낸다.
모라비아는 발자크, 도스토옙스키등의 19세기 작가들에서 영향받았고 그의 작품은 인물의 심리적 상태를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가고 그 인물에게 명확한 선택보다는 내적 동요와 갈등을 늘 유지하는 애매함을 부여함으로서 거기서 기인하는 관계의 모호함을 드러낸다. 즉, 인물의 무관심, 권태 고독등은 숙명적으로 개인의 불행을 낳고 도덕적 체계의 붕괴로 이어진다. 이것은 성과 재물로 요약된다. 이 두가지는 모라비아에게 있어 인간을 해부하는 매스역할을 한다. 모라비아는성적 행위를 통해 다른 삶(인간)에 몰입하며 그로서 인간은 단절감과 고독에서 벗어난다. 이러한 성은 도덕성과 금기사항, 위선과 보수주의로부터의 자유를 상징한다.
모라비아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매춘부들은 추상적이거나 감상적이지않고 평화롭고 달콤하며 냉정하고 상냥하며 이것은 <순응주의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도덕적인 카테고리와 등장인물과 상황은 윤리적 도식에 따른 서술구조라 할 수 있다. 이는 ’복종, 경멸, 권태, 주의‘등 추상명사를 나열한 그의 작품 제목들에서도 나타난다. 한편 그는 사회적 윤리주의자로서 그당시 마르크시즘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비판했고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며 당대의 현실을 그려냈다.
<순응주의자>는 1951년출간된 파시즘에 관한 작품이다. 생존을 위해 무조건 체제에 순응하는것이 옳은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이라 할수 있다. 정상궤도를 벗어난 순응은 비정상적 결과만을 낳는것을 보여준다.모라비아는 주인공 마르첼로를 통해 ’정상성‘에 대한 강박때문에 비정상적 세계로 빠지게 되는 속성을 보여준다. 비정상적 상황에서 정상을 찾기 위해 오히려 비정상적인 수단과 방법을 추구하다보면 정상은 언제나 비정상에 의해 구축된다는 복잡하면서도 이해가능한 개인의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
’순응주의자‘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놓인 처지에 아무 의심도 품지않고 틀에 박힌 사고와 태도로 일관하는 태도를 말하고 이것은 관습이 규정한 '정상적인것'을 추구하고 그안에 스며들려고 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순응주의자>에서 모라비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파시즘이 지적이고 영적인 생각의 자유를 박탈하고 시민들로 하여금 하나의 진실만 추구하도록 억압하고 그것을 선포한 무솔리니는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즉 작가가 체험한 파시즘 특유의 정치적, 윤리적 타락을 그려냈다 할수 있다.
비록 모라비아는 프로이트를 외면했지만 프로이트의 예술관을 경시할순 없다. 프로이트에 있어서 예술작품은, 인간의 무의식속에 어떤 금기나 체제로도 억압되지 않은 리비도의 존재가 의식의 검열행위로 말미암아 직접적으로 표출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리비도가 대리만족 혹은 우회과정을 거친끝에 나오는 결과물을 뜻한다.이것은 모라비아가 다루는 주요테마인 현대인의 성관념, 사회적 소외, 실존주의적 고뇌와 어찌보면 닮아있다 할수 있다.
주인공 마르첼로의 삶은 자아 정체성이 확립되지않은 사춘기, 정상임을 증명하려는 청년기, 평범해 보이는 중년기로 나뉜다.
alberto moravia (1907-1990)
아무리 어려도 인간속엔 폭력성이 잠재함을 이렇게 쓰고있다.
“그의 폭력은 꽃과 초목에서 동물로 넘어갔다.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특별히 감지하지는 못했다. ’
그리고 어린 마르첼로는 아직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파악하기도 전에 체제가 가르치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따르는데,”그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흠을 들춰내고자신의 비정상성을 확인시키는 친구에게 충동적으로 분노를 느꼈다“
그렇게 자신을 공허한 잣대로 가늠하며 어린 나이에 이미 권태에 빠진다.
”그는 놀랍게도 자신에게 이런 처벌이 내려지기를 바랐다. 이러한 갈망에서 드러나는 것은 사랑이 부족하고 무질서한 가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되는 권태였다.권태는 부모의 응징을 더욱 바라게 했다“
그런 마르첼로에게 짜릿한 유혹이 바로 권총을 주겠다는 성인 리노였다.
”이번에는 리노가 마르첼로를 앞서가지않고 그 옆으로 와 허리에 가볍게 팔을 두르며 물었다.
권총이 그토록 갖고싶니?
네 "
하지만 마르첼로는 비정상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기성을 혐오한다. “그는 거의 금욕적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리노를 왜 싫어하는지 깨달을수 있었다. 그것은 위선이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표정에는 사기성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중에서도 무엇보다 입에서 이러한 기만이 감지되는 것 같았다. 첫눈에는 얇고 메마른 입술이 냉소적이고 정숙해 보이지만, 미소를 지으며 입을 벌리면 입속 점막에서 불가사의한 욕망의 침이 반짝이는게 보였다.”
그런 어린 마르첼로를 리노는 성추행하려한다.
"바로 그때 리노는 그를 거칠게 뒤로 밀쳤다. 그리고 고양이나 개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올려 던져버리는 듯 침실로 던져넣었다...
남자에게는 관용과 엄격함, 회개와 정욕이 혐오스럽게 뒤섞여있었다..그순간만큼 그를 증오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두렵지만, 남자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자각한 마르첼로는 결국 방아쇠를 당겼다.”
이런 마르첼로는 이제 30살 청년이 돼있다. 그는 아직도 군중의 행동을 모방하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하지만 그의 마지막 동작은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의도된 모방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러면서 제멋대로 역사를 재단하는데, “그는 지난 몇 년간 더욱 분명해지고 영향력을 발휘한 사건들 가운데 이러한 대칭을 읽은듯했다. 먼저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출현한 다음 독일로 이어졌고, 그 다음에는 에티오피아 내전, 그리고 또 그다음에는 스페인 내전이 벌어졌다...그는 다른 많은 사람처럼 프랑코 편이었다...단지 본능적이고 거의 생리학적인 상태,즉 다른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신념과 연결돼있다는점을...”
그는 세계가 '규범'이라 정해놓은것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그는 급하다거나 초조하다거나 관공서의 질서와 규정을 참을수 없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질서와 규정이 마음에 들었다. 더 큰 범주에서 일반화된 질서와 규정까지도 기꺼이 따를수 있을 것 같은 징후처럼 생각했다. 그는 매우 차분하고 냉정했다.”
그러기에 늘 타인의 눈치를 보는 삶을 살아갈수밖에 없다.
“그는 반감을 갖고 모든사람을 몰래 관찰했다..그는 같은 감정, 같은 생각,같은 목적으로 모여있는 대규모의 군대같은 군중을 상상할때면 다른 모든이처럼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일부가 되는 것은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군중이 개개인으로 분리되는 순간 그의 다수와 군중, 체제에 대한 신념은 여지없이 깨져버린다.
“그러나 사람들이 군중밖으로 나오자마자 정상성에 대한 환상은 다양성이라는 현실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그는 그들 사이에 있는 자신이 모습을 전혀 인정할수 없었고 혐오와 거리감을 느꼈다...혐오와 연민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서 작은국가라 할수 있는 공직자의 타락한 실체를 엿보게 된다.
“그가 방금 목격한 것은 난봉꾼으로서의 장관의 명성을 확인시켜주었다...마르첼로는 세속적이고 여자를 밝히는 장관에게 ‘공감’을 느끼지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그가 싫었다. "
그럼에도 그는 체제에 순응하는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데 ,
”그는 실제로 체제에 관해 특별히 싫어하는 점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본래부터 그가 지향하는 방향이었고 그는 계속해서 체제에 충성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회의주의자로 보이는 노인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그 노인이 그랬다. 그는 노인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수 있으며, 실제로 죽이고 싶다고까지 생각했다. 이유가 뭘까? 그는 아마도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회의주의자의 표정이 그 불그스레한 얼굴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정상에서 이탈했을때의 불안감에 기인한다.”마르첼로는 약혼녀 줄리아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았다...친밀함이 깊어질수록 자신이 그렇게 애써 떨쳐버리고자 했던 무질서와 비정상성이 다시 자신의 삶에 들어올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당시 파시스트체제가 보여주는 대중 통제방식이 그려진다.
"사제가 고위층의 명령으로 신도의 정치적 성향을 확인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처럼 여겨졌다"
'정상'만을 인정하는 마르첼로에게 반파시스트는 혐오의 대상이 될수밖에 없다.
“마르첼로는 콰드리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콰드리가 반파시스트임을 알고 있었다. 그의 정치적 입장, 소심하고 호전적이지 않은 성격, 병약함과 추한 외모, 학식과 책들,즉 사실 그의 모든 것이 부정적이고 무능한 지식인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당이 계속해서 경멸하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마르첼로의 신념을 뒤집는 일이 벌어진다. 약혼녀 줄리아와 콰드리의 아내 리나의 동성애장면이 눈앞에 펼쳐진것이다.
“넓은 흰색 치마가 원형으로 펼쳐진채 줄리아의 발치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사람은 리나였다. 줄리아의 무릎에 이마를 대고 가슴을 줄리아의 정강이에 댄 채 두팔로 다리를 감싸 안은 모습이었다”
이어서 자기가 그토록 신뢰하는 '정상으로 가득찬 삶'의 무의미성, 공허함이 그려지는데, “무슨 반대명령 말입니까? 작전을 보류하라는 반대 명령도 못받았습니다. 분명 너무 늦게 보낸 것 같습니다...그 모든 수고, 두사람의 죽음, 그게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실 역효과를 낳았죠” 즉, 죽일 필요가 없는 콰드리를 죽이고 만것이다.
이제 마르첼로는 중년이 되었고, 파시스트의 몰락을 경험한다. "마당들과 창들을 바라보면 누구도 전쟁이 4년동안 계속되었고, 20년동안 지속된 정부가 오늘 쓰러졌다고는 짐작도 못할 것이다..열어놓은 창문에서는 보통 축구 경기를 중계할때의 숨가쁘고 승리에 도취한 말투로 파시스트정부의 몰락을 설명하는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갑자기 라디오에서 열광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나운서는 이제 의기양양한 말과 들뜬 목소리로 국왕에게 박수를 보내기 위해 엄청난 군중이 도시 거리에 모여들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전까지 파시스트에 열광하던 군중이 이젠 파시스트를 몰아낸 국왕에게로 돌아선 모습이다.
"어제까진 무솔리니를 향해 손뼉을 쳤죠. 며칠전에는 폭격으로부터 구해주길 바라면서 교황에게 박수를 보냈고요. 오늘은 무솔리니를 쫗아낸 국왕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군요”
그리고는 어릴적 자기가 죽인줄 알고 있던 리노가 실은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난, 내가 당신을 죽인줄 알았는데
그들이 날 살렸다는걸 자네가 알아내길 바랐네 , 마르첼로.
리노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서 리노는 정상이란 순수성의 상실이란 묘한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마르첼로, 우린 모두 순수했어. 나도 순수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순수성을 잃지 . 그게 정상이야...
그말속에는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한 심판이 응축되어 있다고 마르첼로는 생각했다. 그가 그때까지 한 일은 가상의 죄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리노를 만난 날 이후 추구해온 기만적인 신기루가 아니라 이미 원죄로 얼룩진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려 하는 숨가쁘고 헛된 열망이 정상이었다.”
이쯤되면 애써 부인해온 마르첼로의 '정상성'은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할수 있다.
그만큼, 리노를 죽였다는 어린시절의 기억은 중년에 이르기까지 그를 끈질기게 괴롭혔고 강박적 정상성을 요구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볼수 있다.
”리노와의 만남은 매우 유용했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에 대해 되는대로 내뱉은 몇마디 말 때문에 20년동안 잘못된 길을 고집해왔지만, 이제는 그길을 버리고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당화하고 소통할 필요가 없을거라고 그는 생각했고, 자신이 실제로 저지른 범죄,즉 콰드리에 대한 범죄로 인해 정화와 정상성을 추구하느라 고통받으면서 자신을 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리노에 대한 자책에서 벗어나지만 평생을 파시스트로 살아온 마르첼로는 결국 아내와 딸을 폭격으로 잃고 자신도 죽어가는것으로 작품은 끝난다.
알베르토 모라비아 <순응주의자>문학과지성사,2021
작가 모라비아는 로마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베니스 출신의 유대인이었다. 1929년 첫 소설 『무관심한 사람들』에서 부르주아 여인을 신랄하게 비판해 물의를 일으키면서, 동시에 평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1930년대에는 기자로 수많은 탐방 기사를 쓰다가 1939년 파시스트 정부의 유대인을 배척하는 급진사회주의법이 제정되면서 기자활동을 접는다. 1947년부터 다시 기자로 활동을 시작하고 수많은 이탈리아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같은 해 『로마의 여인』을 발표하여 상업적으로 첫 성공을 거둔다. 1953년 문학잡지 《누오보 아르고만티》를 창간하고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도 참여해서 서로 절친이 된다. 이듬해엔 『경멸』을 쓴다. 1955년에는 《에스프레소지誌》의 영화란을 담당한다. 많은 그의 소설들이 영화로 각색되는데 <순응주의자>에도 그의 영화적 문장이 빈번히 드러난다. “여자들의 대화에서 배제된다고 생각한 마르첼로는 거의 기계적으로 눈을 들어 콰드리의 등뒤에 걸려있는 거울을 보았다. 오를란드의 정직하고 성격좋아 보이는 얼굴이 아직 거기에 있었는데, 머리가 잘렸지만 살아있는 모습으로 허공에 매달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