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차를타고 남도를 지나간 적이 있다. 드문드문 떠있는 섬들,바다에 떨어지던 햇살, 부표,그리고 오랫동안의 잔상.
그렇다면 북구의 다도해, 그중에서도 스웨덴의 다도해는 어떨까? 이 책을 선택한 가장 큰 계기는 ‘스웨덴의 다도해를 배경으로’라는 구절이었던걸로 기억된다.
그당시 헤닝만켈이 누군지조차 모르던때였고, 그래서 호기심 반, 기대반이었던 거 같다. 쿠르트 발란데르 경감시리즈로 이미 전세계적인 팬을 거느린 작가라는데 난 완전 초면이었다.
그렇게 만켈과의 첫대면으로 ”이탈리아 구두“를 택했고 다소 많은 분량이라는거 외에는 음울하고 서정적인 작품의 전체 분위기가 딱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후 만켈의 다른 작품 서넛을 더 읽은 기억이 난다. 아직도 발란데르는 안 읽고 있지만.
스웨덴을 대표하는 작가 헤닝만켈 (henning mankell 1948-2015) 은 어릴 때 모친이 집을 나가버린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다. 이후 그는 파리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 귀국, 극단일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로 어느정도 삶의 기반을 잡은 후에는 아프리카 인권에 관심을 가져 스웨덴과 모잠비크를 오가며 생활, 모잠비크에선 극단을 꾸려 아프리카의 열악한 상황과 인권을 외부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
말년에, ‘죽지는 않는 불치병’판정을 받고 고심, 결국 죽음을 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탈리아 구두>의 주인공 프레드리크 벨린은 인정받는 외과의사의 삶을 살다 12년 전의 의료과실로 인해 스웨덴 다도해지역의 한 섬에 칩거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날, 40여년전 자신이 배반한, 암판정을 받은 옛연인 하리에트와 재회하고, 둘 사이에 딸 루이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하리에트는 40년전에 했던 ‘숲속 연못’에 대한 약속을 지키라고 부탁하고 그 연못을 향해 그녀와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얼마후 그녀는 죽고, 자신의 실수로 엉뚱한 팔을 절단당한 여자 앙네스와 만나게 되는데, 12년간 외롭게 살아온 탓에 그녀를 강제로 안으려다 거부당하고 괴로워한다. 그렇게 앙네스와도 헤어지고 그녀와 함께 살던 시마라는 소녀도 자신의 집에서 자살하고 기르던 개도 죽는다. 그일로 그는 인생무상을 다시한번 경험하지만 딸 루이제의 선물로 1년만에 받은 이탈리아 구두덕에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완전한 삶은 불가능해도 최선은 다할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혼자서 스스로를 가둔채 살아가던 벨린은 하리에트, 루이제, 앙네스등을 통해 관계의 의미와 결속력을 새삼 확인하는 전기를 맞는것이다. 즉 40년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지못해 떠난 여행이 결과적으로 그를 삶속으로 돌아오게 하는 출구가 된 셈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늘 끌고 다니던’ 개미집을 집밖으로 퍼냄으로서 평생 끌고 다니던 슬픔이나 불안과 이제 결별하라고 나직이 조언한다.
henning mankell (1948-2015)
12년전 의료과실로 의사를 그만둔뒤 다도해 한 섬에 틀어박혀 지내는 벨린에게 집배원 얀손은 유일하게 대면하는 인물임에도 둘 사이엔 정신적 교류가 전혀없다. ”난 사실 얀손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다. 이름이 투레이고 집배원이라는것밖에는. 나는 그를 모르고 그도 나를 모르지만, “
인간의 감성을 홀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비시키기도 하는 외로운 다도해의 정경이 자주 묘사되는데,”성탄절이 지나고 12월 31일도 지나갔다.
1월 3일, 핀란드 만에서 다도해로 눈보라가 불어왔다. ”
40년전 자기가 버린 여자 하리에트가 꿈처럼 ,기적처럼 얼음장을 지나 자기에게로 오는걸 목격한다.
”저편 얼음장 위에 사람이 서 있었다.
천지가 온통 하얀 풍경 속에 서 있는 검은 물체. 태양은 바로 수평선 바로 위에 놓여있었다. 누구인지 보려고 눈을 한번 감았다떴다. 여자였다. 자전거에 기대어 서 있는듯했으나, 자세히 보니 보행 보조기였다.“
그녀와의 행복했던 1966년 봄을 회상한다 ”1966년 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도시는 끓어 넘칠 듯 했다. 뭔가 일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우리 세대는 거대한 둑을 허물어 사회의 문을 열어 젖혔으며, 변화를 요구했다. 그 무렵 하리에트와 나는 해질녘에 시내를 쏘다니기 좋아했다“
그러나 벨린은 결국 그녀를 버리고 사라졌다.”나는 그녀에게 작별인사조차 하지않고 그냥 사라졌다.미국에 있는 동안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생활에 대해서도 물론 알지 못했다. 알고싶지 않았다. 그녀가 자살하는 꿈을 꾸다가 깨는 날도 있었다.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나는 언제나 양심을 마비싴켰다.그녀의 모습이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40년만에 다시 만난 하리에트는 그때 했던 약속을 지키라고 당부하는데,”‘비난하려는게 아니야, 약속을 지키라고 부탁하러 왔어’
나는 그게 무슨뜻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숲속 연못“
그래서 벨린은 결국 그 연못을 찾기위해 하리에트와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당신을 숲속 연못으로 데리고 갈게. 약속을 지키겠어. 낡은 내 자동차로 거기까지 가려면 아마 이틀은 걸릴거야....
숲속 연못과 다시 만날 기대감이 솟기 시작했다. 이제 하리에트와 했던 약속을 지키는 일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도 즐거워지겠구나...“
그러면서 그는 문득 그동안 자신이 치졸하게 살아온걸 느낀다.”‘보고싶었지. 하지만 그리움은 나를 나약하게 만들뿐이야. 난 그리움이 두려워’“
그것은 어쩌면 어린시절 버려짐에 대한 공포에서 오는걸지도 모른다.
”나는 한없이 길게 느껴지던, 그러나 사실은 분명히 아주 짧은 시간이었을 그순간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아버지가 나를 버리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존재의 외로움을, 궁극적으로는 혼자 남게 될것임을 이렇게 토로한다.”‘아버지가 혼자 숲속 연못에서 헤엄을 친다. 나는 벌거벗은 채 나무들 사이에 서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우리는 서로에게 속해있긴 하지만 이미 헤어진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서로 가까이 있는 이유는 헤어지기 위해서야. 그 이유 말고는 없어“
눈앞에 연못이 나타나자 하리에트는 그간 참았던 원망과 울분을 쏟아낸다.”당신 때문에 난 지옥같은 고통을 겪었어. 당신을 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잊지 못했어. 당신이 약속한 연못에 드디어 서고보니, 당신을 찾은게 후회가 되네...난 이제 곧 죽어.
침묵, 그리고 서로 피하는 눈길..소풍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하리에트로부터 둘사이의 딸인 루이제의 존재를 듣게 되고, 그는 12년의 은든생활에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이야기속에서...둘은 늘 연락을 하며 지냈지만 자주 싸웠고, 의견일치를 볼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서로 사랑했다. 나는 분노하기도 하지만 강한 사랑으로 묶여있는 가족을 얻었다“
딸 루이제는 이탈리아출신 구두장인 자코넬리의 상점으로 데려가 아버지의 구두를 맞춰주는데,”노인은 안경을 쓰고 있었고, 목덜미에 몇 올 남은 머리 카락만 빼고는 대머리였다.무척 마른 노인이었다. “ 그 구두는 1년 뒤에 완성된다는 말을 듣는다.
헤닝만켈 <이탈리아 구두> 뮤진트리, 2010
이렇게 가족을 이루고 나자, 비로소 그는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할수 있게 되고 자학에 이르기도 하는데,
”나는 배신당할까봐 두려워 내가 먼저 배신했다. 얽매이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 통제할수 없을만큼 강한 감정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나를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갑자기 나자신이 역겨워졌다. ”
고립을 택했던 자신에 대한 회환이 이어서 그려진다.
“...그러나 내가 결속대신 은신처를 찾는 사람이 된 이유는 뭘까? 왜 아이를 원하지 않았을까? 집에 탈출구를 여러개 만들어두는 여우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뭘까?”
의료과실은 그가 타인들로부터 숨는데 하나의 변명에 불과했음도 고백한다. 자기에게 잘못된 수술을 받고 불구가 된 앙네스를 다시 보자, 그는 그동안 참아온 성욕이 발동해 그녀를 덮치려 한다. 성적 욕구가 발동했다는건 그만큼 삶의 에너지를 되찾은 것으로 풀이할수 있고 그것은 ‘가족’을 이룸으로써 가능했다.
”앙네스의 방문이 무척 기다려졌다. 놀랍게도 나는 성적인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나는 일어나서 그녀를 잡았다. 그러나 키스하려고 하자 저항했다. 앙네스가 그만두라고 말했지만, 멈출수 없었다“
결국 성적 시도는 앙네스의 거절로 실패로 돌아가고 벨린은 계속 그녀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 찾아줄 것을 부탁한다. 도입부 우편집배원 얀손과의 무의미한 만남에서 그는 이제 타인을 갈구하는 정도까지 관계의 필요성을 절감한건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그는 드디어 1년만에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딸 루이제가 선물한 구두를 소포로 받게 되는데 “부엌에 앉아 소포를 풀었다. 보라색이 들어간 검은 구두 한 켤레였다. 발에 아주 잘 맞았다...이런 기쁨을 마지막으로 느낀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이나마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다짐하며 작품은 끝이 난다. ”더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다“
헤닝만켈이 스웨덴과 모잠비크를 오가며 활동한건, 인권운동에 대한 의지이면서 동시에 일찍 어머니를 잃어버린 (가출) 데서 오는 상실감에 의한 방황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심리는 이 작품에서도, 어릴적 아버지로부터 버려질거 같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것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물론 그는 탁월한 인권 운동가였으며 이슬람이 유럽에 끼친 영향을 무시하지 않는 지성인이었다. 역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 가던 국제 구호선의 승선자중 몇 명이 이스라엘 해병 특공대의 공격으로 사망, 만켈은 이 구호선에 탑승한 682명중 한사람'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