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카지노베이비> 숨은 노스탈지아
지음이 흔들린다 랜드가 무너진다.
탄광지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는 데서 난 대학신입생때 원서로 버벅대며 읽었던 d.h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을 떠올렸다. 섬세하고 심약한 둘째 아들 폴이 남긴 인상이 그만큼 짙었다는 이야기다. 영문학도라면 잊을수 없는 이 명작에서 폴은 어머니의 억압적 애정에 괴로워하고 영적인 사랑만을 중시하는 연인 미리엄 때문에 갈등한다.
아마 이런류의 노스탈지아에 젖어, 성장소설정도의 작품이려니 하면서 <카지노 베이비>를 읽기 시작한거같다. 조금은 미시적이면서도 심리의 세계를 파헤친.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한 이작품은 조금은 다른색의 이야기였다. 이야기전체를 통틀어보면 물론 향수나 성장소설류에 든다해도 그보다는 지음과 인근도시의 척박한 역사와 변모, 그리고 ‘버려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세계’라는 도식적 형태를 띄고 있었다. <아들과 연인>정도의 작품을 기대했던 내가 조금은 오버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대목이다.
이야기는 “동하늘”이라는 열 살쯤 된 소년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하늘은 오래전 전당포에 맡겨진 (그러리라 추축되는)아이고 자기를 맡은 전당포집 가족을 친가족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할머니 엄마 삼촌까지..소설은 카지노와 리조트 단지로 바뀐 과거 탄광촌 "지음"의 이야기로, 과거와 현재, 토박이와 외지인들이 뒤섞인 곳이다. 랜드가 있는 지장산 기슭은 “웨스트부다스”, 지음교회를 중심으로 한 읍내는 “이스트 지저스”로 불리는 곳이며 그 사이에 슬립시티가 존재하는데 그곳은 모텔촌과 전당포가 밀집해있다.
강성봉 <카지노 베이비>한겨레출판, 2022이곳에서 10여년을 살아온 “하늘”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 정체성등을 풍문처럼 들어 알게 되면서 천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사랑해...사랑해...'
처음에 난 엄마가 나를 내려다보며 하는 말인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 냄새가 아니었다. 내 파자마와 똑같은 옅은 갈색 체크 무늬 옷을 입고서, 남자는 말을 멈추고 흐릿하게 웃었다...남자가 입은 갈색 체크무늬 파자마의 색이 점점 진해지더니 자주색 가죽 재킷으로 변했다...여자는 자살하고 남자는 사라지고 아기는 버려지고,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남자...”
이렇게 하늘은 비몽사몽 친부에 대한 애증을 드러낸다.
소설 상당부분이 지음과 인근의 변모돼온 시대상과 그 안의 인간군상에 할애되고 있어마치 대하소설을 읽는 는 느낌마저 준다. 그만큼 콕집어주는 포인트가 부족하다는 뜻도 되리라.
소설 후미에 가면, 지음 생활력의 상징이었던 “동영진 (하늘의 할머니)"의 죽음이 그려지는데, 하늘은 비로소 할머니의 입을 빌어 탄광촌에서 카지노 특구가 된 지음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듣게 된다. 새마을기간, 올림픽 기간, 그리고 월드컵 기간까지 지음의 다양한 변모속에 할머니는 다방에서 전당포로 업종을 바꿔가면서까지 억척스레 생을 이어온 것이 밝혀진다. 돈에 눈 멀었다는 딸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음의 변모는 할머니 생의 변모와 궤를 같이 했다 할수 있고 그런 할머니는 조그만 땅을 유산으로 남기고 죽는다. 남은 가족들이 할머니의 그 땅을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서는걸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개발과 투기가 뒤범벅돼 돈의 노예들이 우글거리는 카지노랜드는 결국 붕괴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그것을 슬퍼하거나 뒤돌아볼 여력이 없다. 생은 계속돼야 하므로 하늘네처럼 그 어딘가에 있을 희망(의 땅)을 찾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소설은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다. 이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며 메리트라고 할수 있는데 그 어떤 경천동지할 사건도 호들갑떨거나 과장하지 않고 , 마치 얽힌 실타래를 풀 듯이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과소법understatement에 가깝게.
그러나 이것은 소설자체의 흡인력이나 읽기 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야기에 ’힘‘이 너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역동적인 이야기마저 톤다운된 내러티브와 볼륨으로 풀어내다보니 지루함이 곁들여진다. 물론 이것은 나 개인의 소감일 뿐이다.
<카지노베이비> 작가 강성봉
작가의 말을 빌면 ’이 소설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가운데 주식과 부동산, 비트코인 투자 광풍이 휘몰아치던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쓰여졌고, 지음은 탄광 위의 도박장, 그러니까 산업화 시대의 기반 산업 위에 올라탄 투기와 유흥 산업의 기이한 구조, 침체된 상황에서도 투자 활기만 넘쳐나던 팬데믹 당시의 사회 분위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승일로의 위태로움을 반영하는 동시에 환기하려고 만든 공간‘이며 그런 것을 비판하기 보다는 , 그럼에도 끈질기게 이어나가는 생명력을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하늘이와 지음이라는 땅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비록 세계적 고전인 <아들과 연인>에 미치는 탁월한 심리묘사나 인간욕망과 억압기제에 대한 통찰은 부족해도,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인간이 땅을 어떻게 피폐화 시키고, 그런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자신이 낳은 아이마저 전당포에 맡기는 패륜을 낳는다는 깊은 페시미즘 위에 뿌리를 둔 조심스런 낙관론적 이야기라 할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소설의 메리트라 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