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소프트 락 그룹 MLTR의 노래 “that's why you go away”를 들어보면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넌 만족을 못했지. 그러더니 이젠 내게 안녕을 고하는구나”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토록 사랑은 자기 위주의 변덕스런 게임은 아닐는지.
이 <새벽거리에서>역시 어떻게 보면 사랑의 변덕을 다루고 있다 할수 있다. 도입부에서 화자가 불륜에 대해 이런저런 상념을 늘어놓는 것역시 기존사랑에서 일탈하고픈 변덕의 일종일것이다. 그만큼 사랑은 한사람을 소유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의해 이루어진 뒤 그 감정이 다 하면 또 다른 상태를 찾아 나서는 지극히 이기적인 변덕의 반복적 행위라 할수 있다.
41세 평범한 유부남 샐러리맨 와타나베는 어느날 임시직으로 들어온 젊은 여성 아키하에게 반하게 되고 처음의 다짐과는 달리 끝내는 그녀와 깊고 긴 불륜 행각에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가정만은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아키하 역시 그가 이혼하는걸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어쩌면 15년전 자기 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용의자일수 있다는 전제가 생겨나면서부터 아키하는 와타나베에게 무섭게 집착하고 은근 이혼을 종용하기도 한다.
내연녀와 가정 사이에서 방황하는 와타나베는 어쩜 자신의 새로운 선택이 “살인자”일수 있다는 혼란에 빠지는데...그렇게 이 소설은 불륜과 치정을 깔고 가는 미스터리의 형태를 띄고 있다. 여타의 게이고의 작품들처럼 이 작품 역시 쉽고 섬세하게 그 과정을 그려나가고 후반엔 물론 반전이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주요에피소드는 역시 불륜, 즉 치정이고 이것은 어떻게 보면 빗나간 사랑의 또다른 행태일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기만과 이기심, 잔인성을 이 작품은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다. 게이고 작품 최고의 덕목은 가독성일 것이다. 제 아무리 매력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라 해도 첫문장부터 읽히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것이다. 게이고는 작품을 두껍게 쓰는 편인데 아무리 두꺼워도, 나처럼 게으른 독자도 이틀이면 완독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노련하고 팬서비스가 좋은 작가라 할수 있다.
물론 이런 작품들이 갖는 한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문학이 그 안에 꼭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나 사회적 스펙트럼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 ‘내러티브’가 1순위인 장르라면 그런 의미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최적의 작가라 할수 있을 것이다.
불륜에 빠진 남자들의 초기 심리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불륜에 빠진 남자에게 겨울은 고통의 계절이다. 크리스마스이브를 겨우 넘겼는가 싶으면 곧 설날이 다가온다.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할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는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온다.”
정말 큰 문제는 대부분의 ‘아내’들이 남편의 외도를 알아차린다는게 아닐까?
“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에 보았을 때 산타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내가 아키하와 만나는 동안,...산타가 모조리 부서진 것 아닐까? 유미코가 자신이 정성 들여 만든 산타를 하나하나 찌그러뜨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럼에도 배우자 (특이 아내들)는 가능하면 내색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파멸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 될까 봐서”라고 와타나베는 생각한다.
이 작품은 50대 이상 중년남성으로 구성된 일본 그룹 “서던 올 스타스”의 곡 "love affair“에서 그 힌트를 얻은 작품이라고 한다.
"새벽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은
달의 잔해와 어제의 나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경계를 넘은 후
아아, 나의 쓰라린 가슴
뒤돌아 볼 때마다 안타까운 건
내 등 뒤를 향한 너의 시선
너와 함께할 수 없는, 황혼에 물든 귀로 "
히가시노 게이고<새벽 거리에서> 2022 (12쇄)재인
소설의 전반은 아름다운 요코하마 항구를 배경으로 와타나베와 아키하의 불장난같은 사랑이 그려지고 후반은 살인에 대한 미스터리가 추측되고 풀려나가는 형태를 취하는 이분법적 구성이라 할수 있다.
게이고 작품속 사랑은 크게 두가지로 집약되는데 하나는 지고지순한 사랑, 그리고 또하나는 어두운 그림자를 가진 상대에게 운명적으로 끌리는 사랑, 이렇게 나뉠수 있고 이 작품은 후자라 할수 있겠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뒤 힘들게 추리소설로 데뷔해 다작을 하는 현재 한국내 최고의 인기 일본작가이기도 하다. 하루키가 다소 관념적이고 사변적이라면 게이고는 가능한한 쉬운 내러티브 코드를 따라 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업작가로서의 대중성과 미학성, 작품성을 골고루 갖춘 몇 안되는 우리 시대 작가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