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켐은,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을 크게 세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 그리고 아노미적 자살이라 분류하고 있는데, 이기적 자살은 '사회집단에 강력하게 융화되지 않는 사람들이 행하는 자살로, 사회적 유대가 끊어져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지지기반을 잃게됨으로써, 고립감과 소외감에 빠진 상태에서의 자살하는 것을 말한다. 이타적 자살은, 사회집단과 지나치게 융화돼서 사회를 위해 자살하는 경우를 주로 말하고, 아노미적 자살은 사회에 적응 또는 융화되는 것이 차단되거나 와해됨으로써 행동의 일상적 기준을 상실했을 때, 또는 개인적 요구와 사회집단적 양심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에 나타나는 자살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사람의 자살 같은 것이 그런 예가 된다.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건 물론 이 책이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들의 자살에 초점을 맞춘다기 보다는 그들의 죽음으로 그들과 연관된 생자들의 삶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세세히 그리고 있다.
섣달 그믐날밤, 세노인은 호텔방에서 엽총으로 자살을 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남겨진 자들의 생활에 변화가 오는데 끊겼던가족들이 다시 이어지고 낯선사람끼리 메일을 주고받고 , 새로운 인연이 생기기도 한다.
'자살한 세명의 노인들은 생자들의 기억방식에 따라 소환되기도 한다. 우선 세노인이 과거를 추억하며 보내는 마지막 시간, 그리고 남은 유족 및 다양한 경로로 고인들과 인연을 맺었던 관련자들의 일상이 번갈아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아들 딸 손녀 손자 옛동료, 부하직원, 제자등 개개인의 기억하는 방식에 따라 고인들의 인생도 다각도로 떠오르고, 남은 이들은 가눌수 없는 슬픔과 원망, 자책,감사, 그 외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역시 저마다의 방식대로 현실을 마주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조금씩 원래의 일상을 되찾아가는데, 이것은 마치 체념과도 같은 먹먹함과 그리움을 간직한채'이다.
그 과정중에 새로운 만남도 생겨나고 소원했던 관계도 회복되고, 치유와 납득의 과정을 거쳐 안정을 찾아가는 이들의모습에서 낯설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결국 죽음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며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모든 것을 알수는 없다는 것, 그만큼 고독하고 비밀스러운 것이며, 따라서 하나의 죽음을 받아 들이는 방식도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일깨운다.
에쿠니 가오리 <혼자서 종이 우산을 쓰고 가다>소담출판사, 2022
‘갖고싶은것도, 가고싶은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이 처연한 외로움속엔 일종의 해방감마저 엿보인다.그들은 더 이상 외로움도 안타까운 관계의 모순도 없는 ‘그세상’을 향해 죽음을 앞당긴것이라 할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그들의 죽음은 뒤르켐의 세가지 자살중 어느것에 속할까, 하는 답은 독자 저마다의 몫으로 남기는게 타당하리라 본다.
그러나 이렇게 소설 줄거리를 요약하기가 어려울만큼 이야기는 마치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것처럼 마구잡이식으로 전개된다는 것도 솔직한 인상이다. 뚜렷한 임팩트없이 이야기는 산만하고 무질서하게 흘러가 도중에 읽기를 포기한게 여러번이다. 이런류의 소설을 읽을 때 필요한게 아마도 인물관계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런식의 이야기전개는 다분히 독자를 극도의 혼란과 피로감속으로 몰고가 가독성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사건이나 상황도 작가 스스로 흥분한다거나 애써 임팩트를 주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사건과 상황자체가 ‘스스로를 말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심리적 테러리스트’로서의 안데르센을 언급함으로서 죽음이 생자들에게 주는 테러적 측면만은 간과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죽음이 선택에 의한 자살일 경우.
“이미 충분히 살았습니다”라는 유서가 말하듯, 세노인의 자살의 선택은 크나큰 삶의 파고끝의 결론이라기 보다는 삶의 연장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스펙트럼속에 이루어져 더욱 충격적이다.
애써 담담하게 세노인의 자살을 받아들이려 하고 생전 그들의 삶을 반추하려고 하는 자체가 이미 심리적 충격과 고통을 받은 생자들의 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할수 있다.
가오리는 이 작품의 배경을 펜데믹 시대로 잡았고 그것은 죽음이 결코 멀거나 추상적이지 않다는 것, 개인의 고립의 문제가 결국 어떤 양상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일종의 경고로 읽히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저자 가오리는 ‘여자 하루키’로 불릴 정도로 일본에선 세련되고 감성적 화법으로 책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