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읽기 곤혹스러운 소설을 접할때가있다. 실비 제르맹의 이 소설 la pleurante des rues de Prague 이 그런류가 아닌가 한다.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연상시키는 몽환적이고 상상적인 것을 일종의 산문시의 형태로 쓴 경장편 분량이다.
이렇게 말하면 꽤나 난해하고 읽기전부터 주눅이 들수 있으나 막상 읽기 시작하면 난해하다는 느낌은 차츰 수그러든다.
작품을 이해하기위해 일단, 프라하, 나아가서 체코의 역사를 잠깐 들여다 보기로 한다.
체코는 유럽 중서부에 위치해있고 30년전쟁이후 비기독교인들은 혹독한 박해를 받는다. 이에 보헤미아 민족주의가 일어나고 독립을 추구하는 정당들이 생겨난다. 그러다 1차 대전후, 보헤미아 –모라비아- 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이 탄생한다. 2차대전중 1944년 체코 슬로바키아는 소련에 의해 해방되고 체코 공산당은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1989년 소련 고르바초프에서 시작된 개혁의 바람이 유럽전역을 뒤덮고 체코슬로바이아 역시 극변한다. 이후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하벨이 새 정부 대통령으로 취임해 개혁을 주도하고, 상대적 소외감을 느낀 슬로바키아에서 민족주의가 싹터 독립의 열풍이 일고 92년 실시된 총선을 기점으로 연방해체의 가능성이 높아져 결국 그해 6월 분리독립에 합의, 1992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독립한다.
이런 체코의 수도가 프라하고 프라하는 이러한 역사적 굴곡과 변혁을 겪으며 지금에 이르는데,블타바강이 프라하 중앙을 흐르고 도시 전체가 로마네스크, 신고전주의풍의 건물들로 가득하며 문학의 도시, 음악의 도시로도 불리고 이책에서도 언급된 프란츠 카프카의 나라이기도 하며 공용어는 체코어다.
실비제르맹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문학동네, 2006
이런 프라하의 거리에 다리를 저는 한 거인 여자가 걸어다닌다는 메타포로 가득한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1780년 보불전쟁 이후 20세기 중엽의 알제리 전쟁, 그리고 동구의 스탈린 체제 이르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역사를 "진흙속에 뒹구는 개털같이 구역질나는 영혼들의 악취가 진동하는 것'이라 정의내린다.
절름발이 슬픈 거인인 '그녀'는 동유럽이 겪어낸 이런 숱한 전쟁, 죽음, 광기, 악, 그리고 인간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실연, 이별등에 대해 넋두리하듯, 자신의 온몸으로 암시하며 배회한다.
그녀는 ‘아주 가버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역사속, 문명속에 사라진, 살고 있는 수천, 수만의 이름들이기도 하며 역사와 부조리한 삶에 지친 공허, 권태, 무명 無名.들의 총화이기도 하다.
온통 서러운 꿈같은 문장들이 마침내 방점을 찍는 지점이 있으니 그것은 실연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할때다 .
"우리의 사랑을 버리고 가버린 남자 혹은 여자의 이름 뒤에 비참하게 , 핏발선 눈으로 올라타고 앉는다. 버림받는 것이란 그런것어서, 배반이란 그렇게도 참혹한 것이어서, 그건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뿌리뽑아 지푸라기처럼 땅바닥에서 들어올린다. 타자의 몸이 우리의 몸에서 아주 멀리 달아나고...죽음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렬하게, 기겁할 정도로 당당하고, 심각하게 창백한 맨발바닥 위에서 외친다...이 땅위의 그 어떤 체류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의 종착지인 ‘이별’을 이렇게 요약하는데
“부모 자식간이든, 형제간 혹은 연인간이든 모든 사랑은 어느날 그 사랑을 타격했던 이별의 자취를 영원히 간직하고 그 이별의 상처를 언제까지나 생생하게 지니고 있는 법이다. 비록 사랑하던 사람, 떠나간 사람이 다시 돌아와 사랑의 관계를 다시 잇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렇듯 소설 전체가 다층적, 심상적 이미지와 메타포로 가득해 독자는 어느정도의 고통속에서 읽게 되고 다 읽고 난 뒤, 한바탕 조용한 전쟁을 치른 기분에 빠져들 수 있다.
sylvie germain 1954-
이런 묘한 소설을 쓴 실비 제르맹 sylvie germain1954-
은 공무원이었던 부친을 따라 이곳저곳을 옮기며 생활하고 프라하에서 일정기간 체류한다. 이 소설은 물론 그때의 기억, 추억들을 소환했으리라 짐작된다. 1985년 <밤의 색>으로 명성을 얻는데 그녀의 문장들은 몽환적, 신비적, 영적 언어들로 충만하다. 이런 '그노시스(gnosis 신비적 직관이나 영적인 인식)풍의 형상들, 불꽃같은 이미지들, 고통스러운 시각적환영들의 소환'같은 무모한? 도전을 그녀는 멈추지 않고, 그러다 보면, ‘저 깊은 진실밑에서의 읍소’같은 형태를 띄며 궁극엔 자기고백이자 구원을 갈구하는 기도처럼 와닿는다.
독자가 어떤 소설을 읽는지는 전적으로 개인적 취향에 따른다고 본다. 그러나 조금은 직업적으로, 강제적으로 읽어야 하는 입장이 되면, 내키지 않아도 읽어내야 하는 것이 있고 내게 이 소설은 조금은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읽어내고 나서는' 잠시 즐거운 상상에 빠져드는데 , 아직 미독 상태인 크리스티앙 보뱅 christian bobin 1951-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투명하고 맑고 신비적인 보뱅과 프라하 거리를 다리를 절며 걷는 슬픈 거인 그녀 제르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