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단편선 <질투의 끝>타인속 나의 투영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의 내면에 단 한치도 침투해 들어갈수 없기 때문이리라

by 박순영

불문학을 전공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문학이니 글쓰기의 끝자락을 늘 맴돌아 의당 읽어야 한다는 책들에 민감한 나지만,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몇 번이나 도전을 하다 몇장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곤 했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리라 보지만 어쨌든 조금은 부끄러운 고백이고, 이 리뷰를 올리는 <질투의 끝> 단편집 역시, 한번에 읽히진 않았다. 딱히 난해하다거나 과하게 심오한 그런게 아닌데도 왠지 프루스트에게 익숙해진다는건 쉬운게 아니라는걸 다시한번 체험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부끄러운건, 다 읽고나서, 이야기가 중편소설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물론 삶과 죽음, 회한과 슬픔, 고독과 망각등, 주제들은 연결되지만 그 나름의 단편성을 띄고 있다는것 또한 뒤의 해설부분의 도움을 받아 인지했다.



20세기 세계 문학사의 최대의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단초가 되었다는 이 작품집은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현대 문학, 아니, 문학 애호가라면 마땅히 읽어둬야 할 필독서라 하겠다.

프루스트는 의사인 부친과 유대계 명문가인 모친 사이에서 병약하게 태어났지만 평생을 글 쓰는일에 매진할수 있는 부유한 환경속에 살았다. 9살 때 처음 시작된 천식의 공포는 아마도 그를 죽음에의 불안과 환영에 평생을 시달리게 했으리라 짐작된다. 그것은 역으로 삶에의 집착을 병적으로 끌고 갔을것이다.



이 <질투의 끝>에 실린 네편의 단편은 그가 1896년 발간한 <쾌락과 나날들>이라는 첫 작품집에 수록되었다고 한다. 그 책은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들>빗대어, 노동외에 감각과 정신의 쾌락도 중요함을 설파한것이겠지만 그당시 노동계급의 부상과 리얼리즘 소설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정신에 그닥 어필하지 못해 프루스트는 소설이 아닌 영국 예술철학자 러스킨을 번역하고 비평하는 일로 정식 문단 이력을 시작한다.


marcel proust 1871-1922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과 <어느 아가씨의 고백>은 사교계 안에서 벌어지는 여주인공의 타락을 그린것이고 다른 두작품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픔>과 <질투의 끝>은 삶의 쾌락을 즐기면서도 영혼만큼은 포기하지 않은 감수성 예민한 남자의 사랑과 질투 그리고 죽음을 그리고 있다.

고통과 쾌락, 환희와 환멸, 삶과 죽음 등의 소재들은 프루스트의 문학속에 무한반복, 자기복제를 해나간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고통, 환멸, 죽음 같은 인간사의 부정적 측면은 어쩌면 인간이 진정 희구하고 갈구하는 절대자의 가까운 '이상적 존재의 부재'에 기인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머니의 부재는 나에게 더 많은 쓰라린 가르침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결국 부재에 익숙해진다는 사실, 또한 그렇게 부재로 인한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이야말로 스스로 가장 쪼그라드는 , 가장 모멸스럽게 고통스러운 순간이라는 가르침이었다.”(어느 아가씨의 고백, 중>


그런가하면 혹자는 , 이책의 또다른 주된 주제인 ‘질투’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근본적인 물음이 남는다.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왜 사랑하는 존재에게 극복할수 없는 (강박적)질투심을 품는걸까?...보다 근원적으로는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의 내면에 단 한치도 침투해 들어갈수 없기 때문이리라...제 아무리 빼어난 관찰자이더라도 스스로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사랑하는 상대편의 내면을 송두리째 파악할 수는 없다. ”



이렇듯 '프랑스문학의 강점이라할수 있는 인간탐구정신이 프루스트에겐 치밀하다 못해 병적으로까지 , 이른바 질투의 현상학으로 발전한 셈'이다,


그리고 프루트는 사교계나 드나드는 한량 (딜레땅뜨)으로 곧잘 폄하되었지만, 사교계야말로 피상적이고 인간의 허위의식이 그대로 드나드는 , 그래서 전반적인 인간성을 고찰할수 있는 공간이되지 않았나싶다.


이 작품은 분명 '병든자의 고백이며 갈구'다. '지나치게 건강한 우리로선 가 닿을수 없는 예리한 삶과 죽음이 오버랩되는 그 지점까지' 자신을 밀어부친 '갇힌자가 문을 열고자 하는 시도'였던것으로 보인다.


마르셀 르푸스트 <질투의 끝>표지, 민음사, 2022



비록 몇 번 시도 끝에 포기했지만 언젠가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를 다시 붙잡고 완독할 날이 오리라 생각하고 그렇게 다짐한다. 그 대작에 가려져, 이런 초기작들이 평가절하 되는 감이 없지 않고 사실 조악한 면이 없지 않지만 , <잃어버린...>의 맹아가 되었음이 분명한, 분명할 <질투의 끝> 단편선을 접한다는건 의식의 흐름 계열 소설읽기에 주요한 방향을 제시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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