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옛날에 내가 죽은집> 서평

미러 인더 미러

by 박순영


히가시노 게이고 (1958-)는 한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일본 문학가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옛날에 내가 죽은집>은 여타의 작품들에 비해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게이고 작품중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한 추리기법, 그것이 담아낸 묵직한 메시지, 그리고 사랑과 결별이라는 연애코드가 한데 어우러진 걸작이라 생각한다.


이야기는 7년전 헤어진 ‘나’에게 옛연인 ‘사야카’가 전화를 걸어오면서 시작된다. 사야카는 작고한 부친이 남긴 ‘지도와 열쇠’를 내밀며 지도 속 ‘그 집을’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기묘한 제안에 ‘나’는 당황하면서도 결국 둘은 그 집을 찾아간다 .그리곤 그 집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는게 주요 줄거리다.


이 작품은 크게 두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집’의 의미와 ‘아동학대’다.


존재에게 ‘집’은 무슨 의미일까, 흔히들 안식과 위안을 주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집은 개인의 무덤일수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휴식과 안정의 공간이어야 하는 집이 개인을 억압하고 학대해 ‘존재의 무덤’으로 바뀔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미쿠리야 집안의 비극을 거의 완벽히 알아냈어. 미쿠리야 게이치로가 큰 아들인 마사카즈를 내치고 손자 유스케를 자식처럼 키웠어. 그 때문에 삐뚤어진 아사카즈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 유스케를 학대했고...“


계속 사법시험에 낙방하는 큰 아들을 학대하는 아버지는 그 아들의 아들을 자기 아들로 키우며 아들이 해내지 못한 ‘법관’이 될 것을 강요한다. 그렇게 손자 유스케는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대용품으로 자라고 그것은 또다른 학대의 유형이라 할수 있다.


이것은 어릴적 입양돼 키워진 내가 떠올리는 ‘집’으로 연결된다.


”그 사건이후로 나 역시 예전에 살던 집을 떠올리 일이 많아졌다. 키워준 부모와 함께 살던, 그 오래된 집을, 낳아준 어머니와 키워준 부모사이에서, 누구와 함께 살것인지 선택을 강요받았던 집 . 얌전하고 순종적인 집을 아들을 연기해야만 했던 집,인간은 모두 혼자라는걸 일깨웠던 집..“


그러면서 나역시 이미 그 집에서 ‘오래전에 죽은 존재’일지 모른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이렇게 안식처여야 할 ‘집’은 존재를 말살시키는 억압의 공간, 즉 ‘무덤’으로 귀결될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그리고 있는데,

“아동학대는 크게 네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신체적 학대, 보호의무 태만과 거부, 성적 학대, 심리적 학대, 폭력등 위해를 가하는 것...그 애 안울어. 맞아서 아플텐데도 꾹 참아. 아무말도 안하고 꼭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지나간다고? 뭐가? ‘폭풍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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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하면 학대하는 어머니의 45퍼센트가 학대받은 경험이 있다고도한다. 사랑받지 못했으므로 자식을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고 말한다. 딸을 학대한 사야카는 결국 시댁에 딸을 빼앗기고 손목을 그어야 했다. 이렇듯 어릴적 친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사야카는 정상적 성인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친부인 마사카즈로부터 계속 성추행을 당한 어린날의 기억으로 귀결되는데,


” 그방에서 그남자한테..그방, 꽃병이있고 녹색 커튼이 달린방. 거기서 그 남자한테...옷을 다 벗겼어. 그리고 도망치지 못하게 날 껴안았어. 그 침대에서. 그남자한테. 항상 술 냄새를 풍기던 그 남자한테....하지말라고 했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하지만 그 남자는 계속했어. 내편은 너밖에 없다. 그러니까 너까지 날 싫어하지 말라고. 너까지 날 무시하지 말라고. 그러면서 내몸을..구석구석 핧았어. 매일밤 그랬어. 늘 밤이 오는게 무서웠어“

그렇게 해서 오누이인 유스케와 히사미는 친부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결과는 유스케의 방화. 그렇게 유스케는 친부인 마사카즈를 죽이고 자기도 불길에 휩싸여 죽는다. 문제는, 그 자리에 또다른 아이가 있었다는 것. 즉, 그집 운전수와 가정부의 친딸, 진짜 사야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운전수의 딸을 죽게한 미쿠리야 집안은 선심쓰듯 자신들의 친손녀 히사미를 사야카로 키우라고 내어준다. 그들이 보인건 보상이었을까? 아님 중산층의 허위의식이었을까? 그렇게 해서 히사미는 사야카로 자라게 되고, 어릴적 잠깐 보았던 화재현장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작용해 어린시절 대부분의 기억을 잃게 된다.


이것은 사야카가‘나’와 찾아낸 ‘그 집’에 ‘그 방’만이 복원돼있지 않음으로 그려지는데,‘ 검은꽃병과 초록색커튼이 있는 방’만 빠진것이다.


죽은 사야카의 아버지가 미쿠리야 집안과 인연을 맺게 된것도 희한한데, 그는 도둑으로 이 집안에 들어왔다가 결국은 설득당해 착실한 운전수가 돼서 가정부와 결혼해 사야카를 낳았다. 그렇게 그를 받아들여 갱생시킨 마쿠리야 집안의 행위는 정상인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역시 중산층의 위선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사야카는 오랜 시간이 흐른후 ‘나’에게 고백한다. 그 옛날 자신이 떠난 진짜 이유를.

그건 서로가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너하고 있으면 편했어...주위의 모든걸 거부하며 단둘이서만 살아갈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대로는 둘다 엉망이 될 것 같았어....그 시절 우리는 비슷했어. 아니,, 서로 너무 닮아있었지. 널 보고 있으면 꼭 거울에 비친 내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 그게 너무 견디기 어려웠어“라고 사야카는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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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1958-)



이렇게 이 작품은 가부장적 폐해속에 존재에게 안식과 평안을 주어야 할 ‘집’이 ‘존재의 무덤’으로 치환되는 모습과, 그 속에 만연한 아동학대로 인해 성인이 돼서도 불완전하게 살아가야 하는 존재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이 일이 있은후 ‘나’는 사야카를 찾아나서지만 그녀에게선, ‘남편과 이혼후 딸은 남편이 키우기로 했다’는 짤막한 엽서가 도착할뿐이다. ‘나’역시 그로서 사야카를 완전히 단념하게 된다. 즉, 상처받은 영혼들의 가슴 아픈 결별이라는 러브스토리가 읽는이의 가슴을 적신다.


서로가 닮았기에 헤어졌다는 사야카의 말을 들으면서, 아르보 페르트의 mirro in the mirror 를 떠올리는건 좀 센치한 걸까?

https://youtu.be/UYjZI4Fj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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