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눈물

by 박순영

전화기 너머 영민의 목소리를 들어본게 얼마만인가, 수지는 수없이 그와 통화하고 만나는 상상을 해왔으면서도 정작 그의 전화를 받자 경직되고만다.

"잘지냈지?"

그의 물음에 그녀는 가타부타 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자 영민은 조금 주저하는 톤으로

"누구랑 같이 있나?"라고 물어왔다.

"건 아니고.."라고 수지는 답을 하지만 뭔가 그를 거부하는 느낌을 준거 같아 여간 후회되는게 아니다.

그렇게 둘의 대화는 이어졌다 끊기기를 몇번 반복하다 영민의 "그냥 잘 지내나 궁금했어"라는 맺음말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통화가 허망하게 끝나자 수지는 자신이 너무도 위선적이고 못나게 여겨진다. 만나자고, 보고싶었다고 왜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까, 여간 후회되는게 아니다. 그러고는 다시 전화를 해볼까 하고는 최근 통화내역을 클릭하려다 그녀는 맥없이 전화기를 떨구고 만다.



6개월전 영민과 헤어질때도 그는 한사코 이별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걸 수지쪽에서 강경하게 밀고나가 둘은 결국 헤어졌다. 그러나 그렇게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수지는 여러번 뒤를 돌아보았다. . 혹시나 영민이 따라오진 않나해서...

그런데 이상한것은 둘이 헤어진 뒤 수지는 막혔던 일들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배급사까지 정해지면 연락주겠노라 하고 한없이 질질 끌던 영화제작사에서 수지의 시나리오로 드디어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며 연락을 해온것이다. 그렇게해서 영화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일이 그렇게 풀려나가자 수지는 영민과는 연이 아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 후반작업만 놔두고 악재가 터졌다. 바로 남주인 t가 성스캔들에 연루되었다는 보도가 쏟아져나왔고 이어서 마약에 연루되었다는 이야기도 떠돌었다.

그렇게 해서 후반작업은 기약없이 뒤로 미뤄지고 설사 완료된다해도 개봉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그러자 일에 쏟던 시간이며 정신이 온통 다시 영민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포털에서 확인한 영민의 근황역시 굴곡을 겪고있었다. 어렵게 투자를 받아 무대에 올린 뮤지컬이 표절시비에 휘말려 여론의 질타와 함께 막을 내려야했다. 그런 그의 삶의 흐름을 보면서 영민도 그 순간 자신을 그리워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한번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전화기를 다시 내려놓은게 한두번이 아니다...



이렇게 자신의 시나리오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 물거품이 됐는가 하면 영민도 온갖 고생을 다하며 준비해온 뮤지컬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제작자인 영민은 잔뜩 빚을 지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수지는 자신의 일인양 가슴이 아팠다. 그럴수록 그는 더더욱 그녀 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도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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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는 언젠가 그의 원룸근처로 그를 만나러 가기도 하였다. 그때 마침 좁은 골목길을 영민의 경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순간 그녀는 죄라도 지은양 담벼락에 몸을 숨겼고 영민은 그녀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갔다. 그렇게 그들의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뒤 집에 돌아온 수지는 이러다 진짜 영이별하는게 아닌가 조마조마했다. 그러고 있는데 요란하게 컬러링이 울려댔다. 기적처럼, 거짓말처럼 영민의 전화였다.

"나야..."

"궁금해서"

"잘지내 난..."

그러고 둘 사이엔 또다시 침묵이 끼어든다. 수지는 이 전화를 이대로 끊었다가는 평생 후회할거 같다는 생각에 만나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말은 말이 되지 못한다.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누구..생겼니 그동안?"

그런 그의 물음에 수지는 당장 "아니"라고 대답해야 함을 알면서도 아무말도 나오질 않아 발버둥을 친다. 성대에 이상이 생기지 않고서야...그러자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예술게 중학을 나온 그녀는 일반고로 진학한 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이렇게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학기초라 교복이 채 준비되지 않은 학생들은 중학때 교복을 당분간 입어도 된다고 해서 그녀는 누가 봐도 '튀는' 중학교 교복을 입고 다녀 안그래도 무언의 질타를 받았는데 반 아이들 전체가 주시하는 상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그러자 안됐는지 담임 선생이 그만 들어가라고 해서 그녀는 자리로 돌아갔었다.


수지가 그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는 동안 영민은 "그렇구나.."하고는 잘지내라며 전화를 끊는다. 그제서야 수지는 소리를 되찾고 엉엉 울었다.


둘다 힘든 시기인만큼 둘이 재결합할 여지도, 확률도 많았다. 동병상련이라고 이것도 기회라면 기회였다. 그럼에도 번번이 어긋나기만 하는걸 보면서 수지는 다시한번 영민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의 관계는 늘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강대강이 만난걸까, 서로 지지 않으려고 서로를 할퀴고 비난하다 결국엔 돌아서곤 하였다. 그래놓고는 자학과 비탄에 빠져들어 사경을 헤매곤 하였다. 하지만 이미 '이별'을 말해버린 뒤라 관계를 되돌린다는게 웬만한 굽힘과 용기가 없으면 안되는 것이었고, 그럼에도 잊혀지질 않았다.


수지는 영민을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는 이틀전에 받은 흰색 격자퀼팅 패딩을 걸치고 나가다 아차 싶어 다시 거울앞에 선다. 그리고는 긴 생머리에 웨이브를 넣는다. 그러고나니 아예 화장을 하고 싶어 화장대 스툴을 가져다 그위에 앉아서 정성스레 화장을 한다. 그렇게 하다보니 한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제는 됐겠지,하면서 그녀는 다시 그 흰색 패딩을 걸치고 집을 나가는데 전화 컬러링이 들려온다. 뭐지? 하고 백에 넣어놓은 휴대전화를 꺼내는데 컬러링이 뚝 끊기고 만다. 발신자는 영민이었다. 수지의 온몸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나간다. 만나러 가려고 했잖아.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우리 만나는거였잖아.

그러고 있는데 띠링, 문자 알람이 울린다.

"나 남도 간다."

영민은 딱 그말만 찍어 보냈다. 그러고보니 이맘때면 그가 고향인 남도에 내려가 갯바위 낚시를 한다는 생각이 수지를 스친다. 그러면서 둘이 함께 했던 그해 초겨울의 남도가 아스라이 떠오른다...거짓말처럼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고 갈매기가 떼지어 날던 눈부신 햇살이 내리 꽂히던 그 남해...



그 바다를 복기하다보니 수지는 속이 먹먹해온다. 또 어긋났어...하고는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을 부르려면 말이 나오질 않고 그를 만나러 가려하면 그가 다른곳으로 가버리고...우린 왜 이렇게 어긋나기만 하는걸까, 이번엔 정말 헤어진걸까...

한참을 울다보니 공들여 한 화장이 엉망이 다 되었다. 수지는 어릿광대같은 자신의 얼굴을 거울너머로 물끄러미 보다 결심이 선듯 저만치 놓여있는 자신의 배낭에 세면도구며 화장품, 실내복을 되는대로 쑤셔박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영민이 어느 곳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수지는 그해 초겨울 그 갯바위를 기억으로 더듬어 찾아간다. 서울에서 ktx를 잡아타고 3시간 넘게 달려 이곳 남도에 오는 동안 수지는 딱 한가지만 바랐다. 만나서 재이별한다 해도 꼭 한번은 그를 봐야 한다는...

그렇게 여기저기 영민의 이름을 부르며 갯바위를 헤매는 수지의 등뒤로 기척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그녀를 돌려세우는 손길이 느껴진다. 수지는 슬로우 모션이라도 걸린것처럼 서서히 고개를 돌린다. 바다위의 햇살이 너무나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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